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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미 Oct 21. 2023

생일날, 이집트 여행 마무리

물 만난 인어공주의 다합살이 끝

생일에 다합을 떠나다

‘6월 23일, 스물네 번째 생일’을 맞이한 날은 다합을 떠나야 하는 날을 의미했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익숙한 유럽 국가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언제 다시 여기를 와볼까?’하는 마음에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Cairo)를 들렀다 가기로 했다. 큰 결심이었다. 그리하여 나의 생일은 여행자들에게 쉽지 않은 여행지, 혼돈의 카오스라고 불리는 카이로에서 보내게 되었다. 사실 이번 해외에서 보내는 첫 기념일이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나라 헝가리에서 보내고 싶었다. 좋아하는 장소에서, 좋아하는 친구들과 소소한 생일파티를 하면서 잔잔히 하루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잔잔함과는 전혀 반대였던 도저히 가늠이 잡히지 않는 카이로에서 생일을 맞이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평범했지만, 피라미드가 곁들여진 생일이었기에. 내게 피라미드는 다합 여행의 덤이었을 뿐이다. 패키지 상품을 예를 든다면, 다합 여행이 주요 상품이고 피라미드가 선택 사항이었다랄까. 대다수가 이집트를 떠올리면 피라미드를 가장 먼저 말할 때, 나는 물 사랑꾼들에게 성지인 ‘다합’을 떠올렸으니 말이다.


카이로 공항 밖을 나서서, 그리웠던 한식을 먹으러 한식당으로 곧장 피하고 싶었다. 수많은 사람과 바다가 없어서인지 더 뜨겁게 느껴지는 날씨로부터 말이다. 얼른 익숙한 맛을 입에 넣고,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제 카이로 여행을 막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공항은 왜 이렇게 많고, 출구는 뭐가 이리 복잡한지 단순했던 샴엘 쉐이크 공항과 대조되었다. 이때, 약간의 경각심을 다시 갖고 가방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마음을 단단히 했다. 그리고 미리 불러둔 우버 기사님과 숨바꼭질 몇 판을 진행했다. 생각해 보니, 이집트의 수도였고 당연히 공항도 많고 복잡해야만 했던 곳이다. 순간 현실을 자각했다. ‘아, 여기는 다합이 아니지.’ 다합에서는 늘 생활 반경이 정해져 있었던 덕분에 늘 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무엇보다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혼자 이집트 여행을 하고 있다는 긴장감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카이로에 막 던져졌을 때, 배낭여행의 초창기를 다시 되새기며 긴장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더위와 긴장을 듬뿍 장착한 채, 어렵게 서로를 찾아 이집트 한식당으로 다행히 사기 없이 잘 이동했다. 이동하는 찰나에, 다합에서 만난 카이로 친구와 갑작스럽게 연락이 닿아 그날 오후 바로 피라미드를 함께 가기로 즉흥적인 만남을 잡았다. 현지인이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한식당에서 잠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떡볶이와 김밥, 군만두까지 천천히 나 홀로 생일 만찬을 즐겼다.


카이로에서 맞는 생일날, 이집트 한식당에서 첫끼를 먹었던 이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할 거 같다. 음식이 들어가고 나니까 짧은 시간에 먹은 더위가 조금씩 서서히 풀려나갔다. 정신을 차린 후, 최대한 늦게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서 본격적으로 카이로 여행을 하기 위해 나섰다. 기존에 가려고 했던 ‘그랜드 박물관’은 입구 컷을 당했다. 알고 보니, 온라인 사전 예약이 필수인 곳이고 오늘은 예약이 꽉 찼기 때문에 현장 구매도 할 수 없다는 말만 듣고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해가 너무 뜨거운 탓에, 최근에 지어진 박물관에서 해를 피하며 구경하고, 내부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시간 좀 보내야겠다는 계획만 가지고 왔는데 유일했던 계획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흠, 어쩌지?’ 피라미드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는 돈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에어컨 없는 택시를 다시 타고 싶지 않아서 고민을 시도했지만, 허허벌판의 도로에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은 친구와 함께 구경하기로 했던 피라미드로 먼저 향하는 것밖에 선택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유튜브 영상에서 하도 많이 본 피라미드 흥정꾼들을 어떻게 잘 대처해야 할까를 고민하며 피라미드로 향했다. 피라미드에 도착하기 5분 전, 길거리에서 갑자기 택시가 멈춰 섰다. 같은 한패인지 다른 상인이 갑자기 머리를 내밀고 차문 하나를 사이에 둔 채 피라미드 관광 관련하여 흥정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을 드디어 물리치고 생각을 잠시 수정했다. ‘피라미드가 잘 보이는 식당을 들어가자.’


대충 잘 보일 거 같은 바로 앞 식당에 들어가서 2층에 자리를 잡고, 아이스커피를 시킨 채 멍하니 우뚝 솟은 거대한 피라미드를 바라보았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그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얼굴이 빨갛게 익은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으로 이 식당으로 발을 들인 것이다. 만약, 현지인 친구와의 약속이 없었다면 이름 모를 이 식당에서 멍하니 유리 창밖으로 보이는 피라미드와 수 없이도 오가는 사람, 낙타, 말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공항 근처 스타벅스로 얼른 이동했을 테이다. 정성스레 만들어 주신 것 같았지만 달기만 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홀짝이면서, 어떻게 저곳을 효율적으로 구경하고 나올 수 있을까 나름 깊이 고민했다. 고맙게도 현지 친구의 찬스로, 사기 없이 입장권도 잘 구매하고 흥정도 많이 안 꼬이고 척척박사로 피라미드, 스핑크스들을 보며 안전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비행시간이 한참 남은 탓에 친구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친구에게 가볍게 생일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있잖아, 어쩌다 보니 생일에 카이로 여행을 하고 있어.’ 오늘 생일이라는 말에 엄청나게 놀라던 친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냉동실에서 만들어 둔 반죽을 꺼내더니 생일 쿠키를 여러 개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생일이 지나기 5분 전 밤, 카이로 친구가 만들어 준 수제 쿠키에 꽂힌 초를 불며 잊지 못할 이집트 여행을 마무리했다.


카이로에서 맞는 생일날, 이집트 한식당에서 첫끼를 먹었던 순간
하마터면 창밖으로 피라미드를 보는 것으로 만족할 뻔 했다.
열정적인 카이로 사진 작가님의 결과물
초를 불며 이집트 여행을 마무리 했다.


이집트 에필로그

백일이 넘는 첫 장기간의 여행을 하러 떠나기 전, ‘버지니아 울프’ 작가의 ‘자기만의 방’ 구절이 쓰인 엽서를 선물 받았다. ‘여행을 떠날까, 말까’ 한창 고민하고 있을 시기에 받은 이 엽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So long as you write what you wish to write, that is all that matters; And whether it matters for ages or only for hours, nobody can say.”
(네가 쓰고 싶은 걸 쓰기만 하면, 그것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나이 혹은 시간의 문제가 될지라도, 아무도 뭐라고 말할 수 없다.)  -Virginia Woolf, A room of one’s own-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에 확신이 서도록 도와주었던 이 엽서는 장기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다시 펼쳐보았다. 텅 비어있는 뒷장을 검은 글씨로 빼곡히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써 내려갔다. 이번 모험에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을 나라별로 작성해 보았다. 꿈이라고 해서 모두 거창한 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어느 나라에서는 현지인 친구들을 사귀어 근교 여행을 같이 가기, 미치도록 지중해에서 여름 즐기기’ 등을 나열하며 설렜다. 마치 이미 꿈을 이룬 듯, 머릿속에서 일어나지 않은 행복한 미래들이 벌써 그려졌다. 이 작은 엽서는 항상 어디를 가나 챙겨 다니는 일기장 맨 앞에 끼어두었고, 일기장을 펼칠 때마다 떨어지는 덕분에 계속해서 꿈을 상기시키며 여행할 수 있었다. 덕분에 거의 20가지 정도 되었던 소원을 대부분 이룰 수 있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이룬 버킷리스트는 하나씩 형광펜으로 그었고, 검은색이었던 글씨들이 초록색으로 뒤덮여 갔다.


이집트 여행 때는 조금 정신이 없던 탓에, 일기장을 들여다볼 여유도 없었다. 그러다 다합을 떠나는 즈음 열어본 일기장 사이로, 아직 칠해져 있지 않은 이집트 버킷리스트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집트 다합에서 물 만난 인어공주 살이 하기.’ 이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충분히 이룬 상태였다. 이집트 여행을 반추해 보면, 몸이 무너졌음에도 빠른 시일 내에 회복했고, 항상 바다와 그 근처에서 생활했다. 거의 매일 출석했던 다합 앞바다, 프리다이빙하러 또다시 앞바다,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블루홀, 아프기 전까지 즐겼던 호텔 수영장과 매직 호수에서의 수영까지 모두 다 다합이라는 한 땅에서 즐긴 일들이었다. 아플 때는 아파서 잘 못 즐겼다고 여기며 슬퍼했지만, 시간이 흘러 그때를 떠올리면, 늘 바다에서 치료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도 허락한 다합 바다에서 말이다. 이집트 다합에서 물 만난 인어공주 살이하러 왔던 나는 물 만난 인어공주가 되어 다합에 왔고, 그 덕분에 굉장히 맑고 예뻤던 물속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었다. 형광펜으로 이집트 버킷리스트를 찍 그었을 때, 몸과 마음, 말과 행동까지 모든 것이 민낯 그대로이고, 자유로웠던 물 만난 인어공주의 다합 살이가 정말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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