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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곡도 Feb 06. 2023

구멍 (여덟)





여덟...          



     석준은 컴퓨터 화면 가까이에 바싹 들이대고 있던 얼굴을 돌려 벽에 걸린 네모난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시간은 밤 10시 40분을 넘기고 있었다. 그는 목을 길게 빼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강사들은 모두 퇴근한 뒤였고 단 두 명만이 남아 각자 책상에 머리를 수그린 채 무언가에 골몰해 있었다. 아마 그들은 근무시간에 미처 다 채점 하지 못했던 시험지를 끝내고 가려는 것이거나,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오기로 한 사람을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고 있을 것이다. 석준은 30분전에 미리 싸두었던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남은 강사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발소리를 죽이며 강사실을 빠져 나왔다. 

     천정과 벽이 온통 하얗게 페인트칠 되어있는 긴 복도는 텅 비어 있었다. 단지 규칙적으로 문 여닫는 소리가 복도의 어느 쯤에선가 들려오고 있었다. 야간 경비를 돌고 있는 경비원이 분명했다. 강의실에 남아 있는 학생이나 몰래 들어온 외부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문단속을 하는 것이 경비원의 큰 책임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 학원의 경비원은 일흔이 넘은 깡마르고 구부정한 노인이었다. 그가 정말 학원을 경비하고 있다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구색을 맞추기 위해 싼 값에 고용된 사람일 뿐이었다.  

     출구를 향해 복도를 가로지르던 그는 등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린 것 같아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경비원이 모퉁이에서 나타나는가 싶었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건물 전체에 메아리처럼 울리던 문 여닫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석준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적막해진 복도 한 가운데 무심코 멍하니 서 있었다. 창문 하나, 집기 하나 없는 복도의 하얀 벽과 천정, 진회색 바닥이 유난히도 기하학적이고 선명하게 드러났다. 매일 지나다니는 복도의 생경한 모습에 그는 아연해졌다. 그러나 군더더기 없는 선뜻한 선과 면이 그는 그리 싫지 않았다. 싫기는커녕 표백된 것 같은 이 기하학의 공간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온 세상이 이런 모습이어도 좋을 것이다. 그럼 언제까지나 그곳에 홀로 서 있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곧 오싹한 기분이 들어 석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잰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황급히 학원을 빠져 나왔다. 

     건물을 나서자마자 고막을 때리는 테크노풍의 음악 소리에 석준은 고개를 들었다. 토요일 밤거리는 달궈진 기름에 통째로 던져진 듯한 소란과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도시 전체가 주문이 밀린 거대한 중국집 주방 같았다. 그렇지. 이것이 바로 진짜 세상이었다. 불빛과 유리와 소음과 악취와 먼지가 뒤엉켜있는 곳 말이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앞 건물에 붙어있는 대형 화면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화면 안에서는 한 여자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나 예전의 그 금발머리 아가씨가 아닌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갈색머리 아가씨였다. 이번에 신차가 출시되면서 모델도 바뀌었던 것이다. 새파란 스포츠카 주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고 있는 갈색머리의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석준은 다시 가던 길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평소와는 달리 전철역 방향과는 반대쪽인 번화가로 향하고 있었다. 

     밤 11시가 다 된 번화가는 마구잡이로 뒤섞인 음악처럼 무질서한 생동감이 넘쳐흘렀다. 초여름 열대야로 인해 온도는 28도에 육박했고 땀 냄새, 향수 냄새, 노점에서 팔고 있는 음식 냄새, 한낮에 달구어졌던 아스팔트 냄새와 고무 타는 냄새가 사람들의 머리칼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그러나 매스껍기는커녕 화려한 간판과 쇼윈도 불빛에 눈이 먼 사람들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 

     가끔 쇼윈도 안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나누어 주는 전단지를 받기도 하면서 더디게 앞으로 나가던 석준은 이윽고 한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번화한 대로에서 돌아앉아 있는 그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카페며 호프집들이 늘어서있었다. 그는 골목을 따라 백 미터 정도 걷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얼핏 보면 무언가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힘들 만큼 좁고 허름한 골목이었지만 안쪽에는 아담한 2층 건물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건물 1층에는 과일, 꽃, 케이크 등의 플라스틱 모형을 파는 이미테이션 가게와 외국 잡지들을 수입해서 파는 책가게가 있고, 2층에는 [Box&Cox]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었다. 

     석준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테이션 가게는 이미 닫혀 있었고 책방에서는 한 남자가 주섬주섬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석준은 들고 있던 몇 장의 전단지를 골목 구석에 던져 버리고는 유난히 삐걱대는 소리가 요란한 나무 층계를 통해 (그는 이 나무 층계가 낡아서 소리를 내는 건지, 아니면 운치를 주기 위해 일부러 소리가 나도록 설계한 건지 늘 궁금했다) 2층 카페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피부에 달라붙는 서늘한 공기에 그는 기분 좋게 어깨를 추켜세웠다. 에어컨을 얼마나 세게 틀어 놓았는지 몇 발자국 옮기지도 않아 뒷목에 배어있던 땀이 바싹 말라붙었다. 

     카페 내부는 부드러운 노란색 전등과 곳곳에 밝혀놓은 촛불들로 인해 아늑한 분위기였다. 촛불이 일렁일 때마다 벽을 타고 흔들리는 초점 없는 그림자가 겹겹의 나른함을 전해주었다. 그러나 실은 그것은 진짜 초가 아니라 리튬 건전지로 작동하는 가짜 초로, 진짜 촛불처럼 불빛이 깜빡이도록 되어 있었다. 석준은 익숙한 몸짓으로 실내를 쓱 둘러본 뒤 곧바로 창가에 있는 구석자리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분홍색 반팔 니트에 잔주름이 들어간 연두색 치마를 입은 한 여자가 턱을 괴고서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녀가 옅게 화장을 했다는 걸 그는 바로 알아차렸다.

     “윤주야, 내가 좀 늦었지?”

     건너편에 앉아 넥타이를 느슨하게 당기며 석준이 말했다. 윤주가 새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무어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짙은 남색 앞치마를 두른 20대 중반의 청년이 재빨리 주문서를 들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주문하시겠어요?”

     “아아, 잠시 만요. 메뉴를 좀 보구요.”

     윤주는 이 카페를 수없이 와봤으면서도 메뉴판을 들고 꼼꼼하게 훑어보기 시작했다. 석준은 주문을 받기위해 기다리고 있는 청년을 흘긋 쳐다보았다. 이 시간에는 보통 조금 통통하고 키가 큰 여자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사이에 아르바이트생이 바뀐 모양이었다. 나긋하고 굴곡 있는 여자의 것과는 달리 쭉 곧은 남자의 하체에 단단히 둘러져 있는 남색 앞치마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석준은 혹시 자신에게도 저런 복장이 어울릴 것인지 궁금해졌다. 지금은 좀 그렇지만 한 10년 전 쯤에는 썩 잘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그는 대학교에 재학하던 당시부터 과외로 돈을 벌었기 때문에 또래 친구들이 많이 했던 서빙일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었다. 과외 일은 그 나이 또래들의 아르바이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벌이가 좋았고, 그 덕에 그의 대학시절은 풍족한 편이었다. 그러나 젊을 때 한번쯤은 술집이나 카페에서 일해 봤으면 좋았을 거라고 그는 종종 생각했다. 너무 사무적이지도 너무 진심어리지도 않은 적당한 웃음을 입가에 띠고, 수많은 낯선 이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연들에 끊임없이 시험당해야 하는 이런 일이야말로 그 어떤 직업보다 프로답게 여겨졌다. 또 가끔은 깜짝 놀랄 정도로 재미있거나 심각한 일들이 일어날 것 같았다. 

     “망고 주스 1개, 아이스커피 1개 주문 받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청년은 들고 있던 볼펜을 앞치마 주머니에 꽂으며 말했다. 석준은 고맙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청년은 바쁘다는 듯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 버렸다. 

     “선생님하고 3주 만에 만나네요.”

     청년이 가고 나자 윤주가 조용히 속삭였다.

     “무슨. 학원에서 매일 보잖아.”

     “이렇게 만나는 거하고는 다르잖아요.”

     윤주는 옆머리를 두 어 번 쓸어 넘겼다. 

     “시험은 잘 봤어?”

     “그냥 그래요.”

     “2학년 때 등수를 올려놓아야 3학년 때 고생을 덜하지.”

     “알아요, 나도.”

     “과는 아직도 결정 못한 거야?”

     “예, 생각 중이에요.”

     윤주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학원 밖에서까지 학업에 대해 다그치는 석준의 태도는 늘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그러고 있으면 어떡해? 대충이라도 정해 놓아야지. 대학은 고3때 정하더라도 과 정도는 지금부터…….”

     “선생님, 그런 얘기 좀 안하면 안돼요?”

     결국 윤주는 날카롭게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마침 청년이 유리컵 두 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오는 바람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녀가 너무 급작스럽게 말을 끊었기 때문에 세 사람은 꽤나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다. 

     청년이 망고 주스와 아이스커피를 테이블에 놓고 돌아가자 그새 기분이 풀린 윤주는 학교에서 활동하고 있는 방송반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송반에서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열거하다가도 도중에 그녀의 친구라도 등장하면 어느새 친구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식이어서 얘기는 좀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모처럼 열심히 들어주려고 마음먹었던 석준도 금세 지루해지고 말았다.

     “미영이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사실 그 애는 목소리도 걸걸하고 얼굴도 영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그건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고 누군가 빨리 지적해줘야 되잖아요? 그런데 모두들 열심히 하면 잘 될 거라고 적당히 얘기하는 거예요. 자기 일이 아니니까 나 몰라라 하는 거죠. 정말 비겁하지 않아요? 미영이는 그게 또 진짜인 줄 알고 헤벌레 해서는…….” 

     석준은 윤주의 얘기를 적당히 흘려 넘기며,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유리컵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이 좀 짧기는 했지만 무척이나 보드라워 보였다. 만약 지금 저 손을 슬그머니 잡는다면 윤주는 저 재미없는 얘기를 그만두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석준은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가 귀 옆으로 가지런히 늘어진 윤주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 어린애들 특유의 무방비하게 웃는 표정과, 역시나 어린애들 특유의 냉담한 표정이 교차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꽤나 싫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지금은 그런 표정에서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바로 지금처럼 신나게 떠들던 그녀가 갑자기 생각에 잠겨 새끼손가락으로 턱을 문지를 때면, 그는 특별한 욕정도 없이 그녀를 넘어뜨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만약 석준이 원한다면 윤주는 그에게 섹스까지 허락할까? 과연 윤주의 마음이 그 정도로 진심일까? 아니, 그게 꼭 진심일 필요는 없었다.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도 자존심 때문에, 열등감 때문에, 조급한 마음에, 심지어 달리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섹스를 하기 마련이었다. 그가 만약 윤주에게 섹스를 하자고 제안한다면 과연 그녀는 무방비하게 웃을까 아니면 잔인한 미소를 지을까. 석준을 혐오하게 될까 아니면 더 사랑하게 될까.

     “선생님은 대학 때 무슨 동아리 활동 같은 거 안하셨어요?”

     “사진 동아리에 있었는데.”

     “와. 사진 찍으셨어요? 예술 사진 그런 거요?”

     “예술까지는 아니고, 그냥, 여러 가지. 풍경도 찍고, 인물도 찍고.”

     “언제 한번 사진 좀 보여주세요.”

     윤주는 어느새 주제를 바꾸어 수동 사진기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러나 질문의 형식을 하고 있을 뿐 여전히 혼자 떠드는 것에 다름없었다. 그는 대학 시절 시연에게 사진 인화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가 시연에게 잘난 채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사진뿐이었다. 붉은 불빛이 비추는 어두운 인화실에서, 지독한 화학 약품 냄새 속에서, 매달아 놓은 수십 장의 인물 사진들 틈에서 석준과 시연은 건조한 첫입맞춤을 했다. 그 이후로 그들은 천 번쯤 키스를 했고, 백 번쯤 섹스를 했다. 그렇게 평생을 함께 살아가겠거니 생각했던 그 여자는 이제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 수천 번쯤 섹스를 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문득 석준은 자신이 시연의 첫 남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딱히 그 점에 대해 서운함도 불만도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지금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석준은 다시 윤주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그녀는 처녀일 것이다. 어쩌면 아닐지도 모르지만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강사와 학생의 스캔들에 관한 짓궂은 농담을 떠올렸다. [인생도 가르쳐주는 훌륭한 선생님 아니냐.] 그는 다시 윤주를 바라보았다. 윤주는 걸쭉한 노란색 망고 주스를 빨대로 힘껏 빨아올리고 있었다. 정말 그가 그녀에게 인생을 가르쳐줄 수 있을까? 

     “이혼하신 부인하고는, 대학교 때 만났다고 하셨죠?”

     별안간 윤주가 던진 질문에 석준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윤주는 최대한 부드럽게 눈을 내리 깔고 있었지만 호기심과 도전적인 긴장으로 목소리 톤이 높아져 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부적절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녀는 가끔 그의 이혼이나 시연에 대해 묻곤 했다. 석준으로서는 왜 윤주가 그의 이혼에 관심을 갖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해두자면 그것은 질투 같은 감정은 결코 아니었다. 

     “음, 그랬지.”

     그는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조금이라도 동요를 보인다면 그것은 윤주에게 장단을 맞추는 꼴이 될 것이다. 

     “한눈에 반하신 거예요?”

     “글쎄, 그런가.”

     “그 분은 지금 어떻게 지내세요?”

     “글쎄. 서로 연락 안하니 잘 모르겠는데.”

     석준은 자칫 얼굴색이 변할 뻔한 것을 어금니를 깨물며 참아 넘겼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조만간 윤주와의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벌써 몇 번 째 인지 모르지만 다시 한 번 더 단단히 결심했다. 애당초 이런 버릇없고 분수 모르는 어린애를 상대한 것이 잘못이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처음에 그가 그녀에게 곁을 내어준 것도 그의 이혼과 관련이 있었다. 

     윤주에게 처음 고백을 들었을 때, 당연히 그는 단번에 거절하려고 했었다. 그 때까지 이름조차 모르던 그녀와 엮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필요하다면 호통이라도 쳐서 그가 그녀를 얼마나 얕보고 있는지 가르쳐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의 이혼 사실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혀 상관없다는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더 이상 그녀를 매몰차게 대할 수가 없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떠듬거리던 그는 결국 한 달에 두어 번 차를 마시는 정도라면 괜찮다는 약속을 해버리고 말았다. 윤주를 만날 때마다 매번 그녀를 떼어 낼 생각뿐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근데, 선생님 여름 타세요?”

     “아니, 왜?”

     “좀 피곤해 보여요.”

     “그래?”

    하지만 그건 더위 탓이 아니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죽은게이의사회’와 채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제도 밤을 새고 새벽 4시까지 채팅을 했던 것이다.

     “선생님, 몸 좀 챙기세요. 혼자 계시는데 몸까지 아프면 큰일이잖아요. 아, 맞다. 우리 다음에 삼계탕 먹으러 갈까요?”

     “삼계탕은 무슨…….”

     “여름에는 삼계탕만한 게 없데요. 예? 가요. 제가 맛있는 데를 알아요.”

     “그래, 그럼. 그러던지.”

     석준은 얼음이 다 녹은 커피를 빨대로 휘휘 저으며 최대한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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