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o Jun 04. 2020

‘영화 은교’

시절 인연 그리고 저무는 노을의 청춘



우연히 다시 영화 은교, 이 영화는 뉴욕에서 아등바등 학교 다니며 매일이 지옥 같다고 불만 투성인채로 관광객이 제일 부러웠던 유학생 시절, 단비라 할수는 없지만 두눈을 집중시킬만한 한국에서 개봉한지 얼마 안된 영화를 능력자! 지인 언니가 보내줘서 노트북 작은창을 스크린 삼아 무심코 본 적이 있다. 사랑인가 욕망인가, 예술인지,또 외설인지 그 모호한 차이의 경계를 명확히 모르겠으나, 당시는 전체를 판단하기 보다는 시각적으로도 꽤나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페미니즘이 돋보이고 목소리를 내어 연대를 이어가는 요즘 같은 때, 영화를 그저 픽션이 가미된 허구의이야기로만 받아들이기 힘든 시대에 충분히 비판 받을수 있는 내용일수 있으나 비도덕적 로리타 영화라고 치부하기엔, 원작 소설이 꽤 비중이 이었고 중간중간 아름답지만 슬픈 영상미와 감정선 과 적절한 긴장감을 조절해 내며 자연스럽게 풀어진 복선 그리고 대사까지도 한몫한 것이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영화는 동시대와 사회 현상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종합 예술의 영역이라 하지 않는가.



주인공이 긴 세월을 관통하고 난 후, 살아갈 날 보다 살아온 날 들의 기억과 추억이 많은 나이가 되고, 돌아갈 수 없는 청춘을 은교를 통해 2인칭 시점에서 3인칭 시점으로 나타내고 있는듯 보였고, 젊음이란 이름으로 허용되고 한계 없을듯 보이는 청춘이란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들인지 다시 느끼게 했다. 결코 이 영화를 욕망이라 함부로 말할수 없는 지점이다. 사랑과 연민을 느끼지만 밖으로 드러내지 못할 마음 속 그 생각조차도 편히 할수 없음에, “시절 연인” 이란 말이 머릿속을 자꾸 맴돌았다. 같은 시절을 걷고 만날수 있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그래서 그게 바로 인연인 거라고.




나이가 든다는게 육체가 비루해져 늙더라도, 마음까지 낡아서 늙고 싶은것은 아닐 것이다. 살아온 나이 숫자 만큼에 근엄 과 품위 존경을 강요하는 인간 세상이지만, 누구에게나 시계 바늘은 공평하게 흐르고, 그 누구라도 늙어가며 결국 죽음을 맞이 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젊음이, 인생에 찬란한 선물 같은 시기 이지만 오만한 특권이 될 수는 없다고 말이다. 훌륭한 영화라고는 속시원히 말 못하겠으나 수년전 그 당시에도 이 대사 만큼은 쿵하고 뭔가 다가오더니 머릿속에 콱 각인되었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이전 04화 천하태평 나도 개인주의자 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