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으른 곰 Jun 19. 2024

순대와 향수병

다양한 국적의 마트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

순대였다.

내가 한국에 대한 향수병을 앓게 된 이유 말이다. 평범한 어느 날 ‘순대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고, 다시 가라앉지 않았다. 내 머릿속 넓은 바다엔 ‘순대’가 쓰여있는 작은 공이 끊임없이 표류했다. 공은 파도에 밀려 가까이 왔다가 다시 파도에 밀려 조금 멀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공은 해변으로 떠밀려왔고 모래 위에 자리 잡았다. 


우리 집 근처에는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Woolworths라는 마트가 있다. 원래 Countdown이었는데, 호주 기업 Woolworths가 작년에 그것을 인수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 동네에 있는 Woolworths는 그렇게 크지 않은 규모라 그런지 아직도 Countdown 간판을 걸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 년 동안 입에 붙어서인지, 나는 아직도 Countdown이라고 부르게 된다. 그쪽이 발음하기도 쉽다. 

처음 뉴질랜드에 온 우리는 당장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이 마트를 방문했다. 그 후로도 제일 자주 갔던 곳이다. 다른 매장에 비해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당연히 판매 물건의 다양성도 적었지만 집에서 가깝고 차 없는 우리 가족이 이용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처음엔 자연스럽게 이 마트에서 파는 것을 샀다. 빵과 치즈, 햄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아이들 도시락을 쌌고, 한국보다 저렴한 소고기와 양고기를 자주 요리했다. 매운 음식이 먹고 싶을 땐 신라면을 샀다. 감사하게도 뉴질랜드 마트에서도 신라면과 김을 판다. 

얼마 전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마오리족 인구와 아시아인 인구가 비슷해졌다는 기사를 봤다. 마오리 인구는 500만 명이 조금 넘는 뉴질랜드 인구 중 100만 명 정도라고 했다. 아시아 인구가 그만큼 많아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먹는 음식들을 뉴질랜드에서 파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산다는 말의 다른 의미는 다양한 음식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세계 각국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지만 대게는 한국식으로 재해석된 음식이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고 있는 나라에는 그 나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 그대로 파는 곳이 많다. 한국에서 자란 나는 햄버거나 빵, 스파게티보다는 쌀과 면요리를 더 좋아하는데, 운 좋게 뉴질랜드에는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식당이 있다. 게다가 중국 마트도 있다.(중국 마트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나온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이 사는데 가장 중요한 건 먹는 게 아닐까.


다시 순대 이야기로 돌아가, 나는 순대를 무척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도 순대는 자주 먹는 음식 중 하나였다. 향수병을 끙끙 앓다가 한국마트에 순대를 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마트로 향했다. 냉장 코너에 자리 잡은 순대를 보고 난 환호 했다. 소중한 순대를 안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찜기에 물을 올렸다. 조리가 끝나고 냄비 뚜껑을 열었을 때 내가 본 순대는 그렇게 먹고 싶었던 그 모습이었다. 한입 크기로 썰어 접시에 예쁘게 담았다. 한 조각을 입에 넣었고, 슬프게도 순대는 정말 맛이 없었다. 어떤 느낌이냐면, 유통기한이 지난 지 일 년 정도 지난 맛이라고 해야 할까. 신선한 느낌은 전혀 없는 퍽퍽한 맛이었다. 순대는 18달러였다. 

순대를 먹었지만 (제대로 된) 순대를 먹고 싶은 마음은 해소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먹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졌고 나는 한국이 그리웠다가 나중엔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어느 곳에서나 쉽게 살 수 있는 순대 때문에 이렇게 불행하다니. 타향살이가 힘든 이유는 음식 때문인 게 틀림없다. 몇십 년 동안 별생각 없이 당연하게 먹은 것들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다니. 평소에 그다지 내가 먹는 걸 즐긴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9,772km 떨어진 나라에서 나는 순대 때문에 우울했다.


한참 동안 뉴질랜드 마트에서 장을 보고 음식을 해 먹다가 김치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매운 게 필요했다. 평생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먹고 어른이 된 나는 순대는 못 먹을지언정 김치는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젠 더 이상 스테이크나 볶음밥, 스파게티나 샌드위치만 먹을 자신이 없었다. 김치라도 있어야 한다. 김치는 스테이크에도, 스파게티에도, 샌드위치에도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 않은가. 어느 화창한 날, 한국마트로 향했다.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도착한 한국마트는 천국이었다. 한국에서 먹던 모든 것들이 그곳에 있었다. 과자, 라면, 만두, 어묵, 김치 10kg, 절인 고추, 콩나물을 샀다. 콩나물이 8달러가 넘었지만 나는 콩나물 무침을 정말 좋아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했기에 김치를 10kg을 살까, 5kg을 살까 고민했다. 그리고 이왕 온 김에 한번 고생하자. 싶어 10kg을 골랐다. 나는 그 뒤로 한국마트에 가서 5kg 김치만 산다. 그날 김치를 안고 집에 가는 길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한국마트에 가서 꼭 사 오는 것 중 하나는 고기다. 뉴질랜드 마트에도 삼겹살이 있다. 몇 번 뉴질랜드 마트에서 고기를 사서 수육도 하고 구워 먹기도 했다. 그런데 뉴질랜드 삼겹살은 한국 삼겹살 맛이 안 난다. 조금 더 기름지고 느끼한 맛이다. 나는 식성이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다. 가리는 음식도 없고 남들은 느끼는 고기 잡내도 잘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적응이 안 되는 건, 뉴질랜드 삼겹살과 소시지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한국마트 정육코너에서 파는 삼겹살은 한국에서 먹던 삼겹살 맛이 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차이가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 그 고기도 뉴질랜드산일 텐데, 도대체 이유가 뭘까. 그냥 한국을 그리워하는 내 마음이 만들어 낸 상상일까?


순대로 시작된 무기력은 한동안 지속됐다. 침대에서 하루종일 누워 지내는 날이 늘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그렇게 하루를 보낸 것에 대한 죄책감에 또 무기력해졌다. 이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에서 나를 일어나게 한 것도 음식이었다. 올해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올 때 김치통에 가득 김치를 채워 가지고 왔다. 그걸 한 달 만에 다 먹어버렸고, 남편이 왔을 때 가지고 온 김치는 남편이 지내는 동안 다 없어져버렸다. 나는 한국에서보다 뉴질랜드에서 김치를 더 많이 먹는다. 무척 평화롭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심심한 이곳은 김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김치는 먹어야겠는데 사 오는 길이 너무 험난하니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김치 같은 어려운 음식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엄청난 성장이다.


나는 원래 요리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뉴질랜드에 와서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다. 물가가 비싼 뉴질랜드는 외식비가 높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마다 한 번씩 한국 식당에 가서 아귀찜을 사 먹는데, 중간 사이즈가 70달러이다. 아이 둘과 아귀찜, 칼국수, 막걸리까지 한 병 마시면 100달러가 훌쩍 넘는다. 그래서 나는 참고 참다가 요리를 시작했다. 처음 김치를 만들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냥 겉절이 김치였지만, 살면서 처음 혼자 김치를 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김치를 만드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엄마가 안 계시면 이제 김치는 어떻게 하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정확하게는 자신이 없었다. 김치를 만드는 건 너무 위대한 일 같았다. 한계를 정해놓고 사는 건 나이가 젊거나, 많거나 상관없는 문제다. 그런 내가 김치를 하다니. 스스로 대견해서 사진을 100장 찍어뒀다. 나는 이제 김치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한국 마트와 나의 급상승한 요리실력의 콜라보로 음식에 대한 욕구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고 있던 어느 날 둘째가

“엄마, 예전에 나 아팠을 때,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마늘종 있잖아. 빨간 거. 나 그거 먹고 싶다. 그때 얼마나 아팠는지 입맛이 하나도 없었는데, 엄마가 해준 쌀죽이랑 마늘종 먹으면서 입맛 살아났잖아.”

라고 말했다. 

마늘종이라니. 한국마트에서 마늘종을 본 기억이 없다. 아니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채소코너에 잘 가지 않는다. 한국 마트 채소 코너는 그렇게 크지도 않고 종류도 다양하지 않았다. 한국 무와 가끔 나오는 배추, 감자와 양파 등을 본 기억이 난다. 마늘종은 어디서 구해야 하지?


예전에 아는 분과 중국 마트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곳엔 채소가 많았던 기억이 났다. 그 후로 한 번도 중국 마트는 가지 않았지만 왠지 그곳에는 마늘종이 있을 것 같았다. 딱히 마늘종을 반드시 사야겠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마침 뉴질랜드 마켓과 한국 마켓에 흥미가 떨어지고 있었던 때다. 마트는 거의 비슷한 물건을 판다. 뉴질랜드 마트도 한국 마트도 갈 때마다 비슷한 풍경이다. 새로움을 찾아 이젠 중국 마트에 갈 때가 왔다.


오후 5시쯤, 둘째와 중국 마트로 향했다. 우리는 얼마 전에 드디어 차를 구입했다. 오후 5시라 이미 밖은 어두워졌지만 차가 생긴 우리에겐 문제도 아니다. 그동안 어떻게 버스를 갈아타며 마트를 다녔는지 모르겠다. 매번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갈아타야 할 곳을 미리 숙지하고 나갔는데 이제는 우리가 가고 싶을 때 출발하면 된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눈은 안 오지만) 문제는 하나도 없다.

중국 마트로 가는 길은 즐거웠다. 차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둘째와 나는 이 시간에 마트에 가는 게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조금 들떠있었다. 이제 저 앞에서 좌회전을 하면 길 반대편에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이 들렸다. 좌회전을 한 뒤 조금 후 마트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트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으로 차들이 줄을 서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도 뉴질랜드에서 마트를 가기 위해 줄을 서거나 기다린 적이 없었다. 심지어 뉴질랜드에 하나밖에 없는 코스트코를 갔을 때도 수월히 입장하고 주차했다. 그런데 중국 마트엔 줄이 있다. 세상에.


결국 우회전으로 마트 주차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 바퀴를 돌아 줄 제일 끝에 섰다. 마트 직원이 주차 정리를 하며 안내했기 때문에 긴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주차를 할 수 있었다. 힘들게 들어간 중국 마트는 신세계였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채소코너가 나오는데, 채소 종류가 정말 많았다. 한국에서 보던 채소들도 있고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채소들도 있었다. 그리고 많은 종류의 채소들 사이에 마늘종이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원하는 게 바로 있다니. 뉴질랜드에 살면서 없어서 참고, 못 구하니 포기하는 일이 일상이었는데 단번에 원하는 게 눈앞에 있는 건 처음이었다. 뉴질랜드의 행복은, 심심한 평화로움 속에 작은 기쁨을 큰 기쁨처럼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딱 그 말에 맞는 경험을 한 것이다. 


채소 코너 옆에 자리 잡은 정육 코너도 무척 컸다. 한국 마트의 몇 배는 돼 보였다. 전시된 고기만 수십 가지가 됐는데, 나는 부위에 대해 잘 몰라 한참을 쳐다만 보다 그냥 돌아왔다. 닭발, 돼지 꼬리 등 특수 부위도 판다. 그 옆에는 (아마도) 요리된 북경 오리를 판매하고 있었고 간단한 식사를 포장해 갈 수 있는 가게도 있었다. 그리고 중국 소스와 향신료들, 고수, 각종 냉동식품, 과자와 두부, 유부, 그 외에 내가 이름을 모르는 많은 식재료가 많았다. 그리고 사람도 많았다. 우리는 마늘종과 배추, 청경채, 공심채, 두부면, 치즈 불닭볶음면, 두부와 일본 카레를 샀다. 나는 다음 날 생애 두 번째 김치를 만들었고 마늘종 무침도 했다.


일본 마트도 있는데, 나는 주로 주전부리를 사러 간다. 내가 가는 일본 마트엔 채소 코너가 없고 고기도 팔지 않는다. 낫또와 냉동식품을 파는 냉장고, 음료수 코너, 일본 소스, 라면, 다양한 차, 그리고 한쪽엔 그릇과 생활용품을 파는 곳이 있다. 마트라기보다는 일본 편의점에 가까울 것 같다. 녹차를 주로 사 먹고 사케를 사 오기도 한다. 


뉴질랜드에 일 년 몇 개월 동안 살면서 제일 성장했다고 느끼는 분야가 요리다.(영어였으면 더 좋았을 테지만) 간편식과 배달이 발달한 한국에서 살면서 스스로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충분한 시간과 먹고 싶은 음식에 대한 열정과 욕구로 나는 무려 김치를 만들었다. 어쩌면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은 어렵고 힘들어서가 아니고 어렵고 힘들 것이라고 고정된 내 생각일지도 모른다. 없는 재료들을 다른 나라의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지금도 향수병을 앓고 있는 중일 것이다. 어쩌면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비행기를 끊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 냉동실엔 소꼬리 고기가 있다. 이런 부위의 고기를 내가 살 줄이야, 게다가 뉴질랜드에서 말이다. 아니, 뉴질랜드라 살 수 있었다. 마음이 준비된 어느 날 나는 소꼬리찜을 요리할 것이다. 그리고 그날은 내가 생애 처음으로 소꼬리 요리를 한 날로 내 일기장에 기록될 것이다. 나 이러다가 정말 나중에 식당 차리는 거 아니야? 

이전 17화 놀이터? 체험 학습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