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혹등고래 Oct 26. 2024

박사 포기, 결국 그 일이 벌어졌다.

정말 너무 속상하겠다.
아무리 괜찮다지만,
저 시간을 어떻게 버텨냈을까.
대단하다.


내게 이런 생각을 들게 했던 남 일이 내게도 일어났다. 기나긴 시간동안 노력을 쏟았던 일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일 말이다. 난 결국 한국 박사를 포기했다. 한국사회에서 박사과정을 밟는 것은 내게 꽤 지난한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알씁인잡> 심채경 박사님이 했던 말을 떠 올리며  '아, 역시 나는 대학원에 왔어야 했다.'라고 스스로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했었다.


내 젊은 날의 시간과 나의 모든 기회비용을 다 투자하고 희생할 만큼
내가 이것을 가치 있다고 판단 하느냐.


내 인생을 바치면서까지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자기표현'이었다. 처음부터 내 연구주제가 자기표현으로 정립된 것은 아니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아동청소년을 연구하면서, 내 발자취들이 사회구조와 개인의 자기표현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 된 것이었다. 문득, 이런 것들을 연구하는 나는 내 인생에서 자기표현을 잘 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박사를 하고 싶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국에서 교수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보상심리, 부모님께 빨리 교수직을 잡았다고 하고 싶은 인정욕구, 기나긴 학업을 끝나고 이것으로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것들에 집중하는 사이 내가 정말 박사논문을 끝내고 싶었던 이유를 간과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모든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볼 여유가 생겼던 계기는 가슴에서 커지고 있던 종양제거 수술이 계기가 되었다. 수술을 하고 회복하는 동안 내가 한국에서 박사논문을 끝내고 싶었던 진짜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애초부터 독일에 가고 싶어서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따려고 했었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따려고 했던 이유들은 그것과는 상반된 것들이었다.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은 오히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밟는데 크나 큰 장애물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2022년 처음 독일에서 한달 동안 지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독일이 마치 집 처럼 느껴지고, 독일에서 10여년 동안 살고 싶은 마음은 점차 확고해져 갔다. 석사를 마쳤을 때도 박사를 하게 된다면 반드시 해외에서 하겠다고 마음 먹었었는데, 나는 한국에서 왜 머뭇머뭇 살고 있었나 싶다. 석사 이후부터의 시간들. 5년의 시간을 머뭇 거리고 있었던 것 같다. 5년의 시간동안 해외에서 박사하고 싶다는 생각은 단한번도 바뀐적이 없는데 난 뭐에 그렇게 타협하면서 살았던 걸까. 뭐가 그렇게 나를 쉽게 흔들리게 만들었던 걸까.


한 순간도 열심히 살지 않은 적이 없는데. 난 뭐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걸까. 하는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에게 그 5년의 머뭇거림이 필요했었나 보다. 앞으로 반평생을 독일에서 살게 될 텐데, 그것에 비하면 5년의 시간은 내게 꼭 필요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예전 같았다면 나는 너무나도 쉽게 5년동안 나를 '묶어두었던' 우리 집 경제사정과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를 비판했겠지만 더이상은 아니다. 더 이상은 그런 촌스러운 태도를 가진 연구자이고 싶지 않다. 스스로 모든 것을 헤쳐나가고,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나고, 누구와 만나도 나를 지킬 수 있는 그 힘이 길러지는데 5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건가 싶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한 선택을 하는 방법도 배워온 것 같다. 난, 내가 인생을 바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아동청소년의 자기표현의 연구가치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연구할 수 있는 내 역량을 믿기로 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박사포기는 '한국에서의 박사포기'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다.  한국에서의 박사 포기. 이 사건이 내게 어떤 일을 가져와 줄까. 문 하나가 닫힌다면 문 하나가 열린다고 하는데. 내가 열고 싶은 문을 하나씩 선택해 가는 삶을 살 때가 된 것 같다. 무엇보다 나를 위한 선택을 하나씩 하면서 살면서 나다운 삶을 이제서야 살아가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진심으로,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모두를 응원한다. 

이전 06화 관계주의 속 자기결정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