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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동윤 Oct 18. 2023

사랑을 잊은 당신에게

첫사랑 이야기 해주세요. 한 학생이 용기 내어 마법의 주문을 외친다. 수업이 중반쯤 올 무렵 손에 닿은 미모사처럼 잎사귀 끝부터 차례로 말리듯 책상에 고개를 떨구던 학생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이 마법의 주문은 효과가 좋아 모두의 정맥에 스테로이드를 꽂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웅크린 교실은 다시 활기찬 시장통이 되고. 옆자리 친구와 선생의 연애사를 유추해 보려는 학생, 달아오른 선생의 붉은 볼을 가리켜 히히덕거리는 학생, 안면조차 모르는 저들 선생의 연인을 떠올리며 저마다 자신이 그리는 청춘물에 그들을 배우로 꽂아 놓고는 새어 나오는 미소를 들키지 않으려 가까스로 참아내는 학생. 아이들의 얼굴에 호기심을 가장한 짓궂은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다. 얘들아 집중. 마법의 주문 덕에 발화되어 걷잡을 수 없이 거세진 교실 안의 열기가 정적으로 정점에 멈춘다. 모두들 숨 죽이고 선생이 내뱉는 첫 문장을 기다린다. 공부나 해 이것들아 진도 밀렸다. 보통 선생들은 질문에 회피하거나 수줍게 남은 잔상을 떠올리며 연재를 시작하는데 나는 한 번도 이야기의 끝을 들은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건 우리가 한 마음으로 쏟은 그 사랑의 호기심. 마법의 주문이 만든 거센 열기. 사랑 덩어리의 감정이다.


사랑은 신비는 모두가 한 번쯤 사랑이라는 감각을 갈망했을 정도로 커다란 보편성에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만물이 짝을 짓는다. 세상은 남과 여, 암컷과 수컷으로 나뉘어 있고 종의 생존에 크게 기능하는 번식을 위해 남과 여를 엮는다. 생존을 위한 호르몬이 진화해 인간을 사랑으로 이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전 세계 어느 이름 모를 국가의 원주민부터 베버리힐즈의 상류층까지. 사랑을 소비하지 않는 인간이 없다.


사랑을 해본 적 없어. 사랑 이야기를 할 때 한걸음 물러서 그러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나는 충격을 받는다. 그들은 이유를 이야기한다. 삶이 바빴다. 일이 많았다. 연애는 했지만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는 상대와 연애를 했다. 가장 최근 기억이 사랑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이기에 언젠가 비슷한 감정이라도 느껴보고 싶다고 말한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자신감에 차있는 사람들이 사랑을 이야기할 때면 얼굴에 불안을 띤다.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기억이라며. 어쩌면 평생을 갖기 어려운 감정이라며. 그들 마음에 공감한다. 그토록 어려운 게 사랑이다. 사랑을 하면서도 생겨나는 의문들에 고뇌하고 사랑을 했다고 단언하다가도 어느 날 불현듯 떠오른 파편을 씨앗으로 단숨에 역전된다. 새로 사귄 연인에게, “네가 내 첫사랑이야.”라고 말하는 건 틀린 게 아닐지도 모른다. 모두가 사랑을 알지만 같은 사랑을 가리키지 않는다. 추상적이고 다양한 얼굴을 가진 사랑 앞에서 나는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한다.


내가 떠올리는 사랑을 구분 짓기 전에 우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얼굴을 보라. 연인이 소홀한 것 같다며 툴툴거리는 여성도 그에게 전화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만의 언어로 사랑을 속삭인다. 사랑에 확신이 없다며 머뭇거리는 남성도 제 연인과 함께라면 세상 이완된 표정으로 존재한다. 연인의 대화는 사뭇 건조하고 일상적인 온도를 갖는데 관계를 지속한 일자가 길수록 그럴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 익숙한 일상성에서 사랑을 느낀다. 사랑이 발화할 때는, 선생의 첫사랑이 궁금한 학생처럼 불타오르다가도. 사랑이 정착하면 열기는 식지만 올림픽 성화처럼 가늘게 유지된다.


당신은 잊은 것이다.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게 아니다. 당신의 뇌는 저장고에 모든 기억을 보관하지 않는다. 특별하게 각인된 기억이 아니라면 오래된 폴라로이드처럼 색상부터 바래져 종국에는 형상만 남는다. 사랑을 잊은 사람들 모두 손에 색 바랜 폴라로이드 카드를 들고 있다.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나 담은 장면이 어떤 것인지 감히 유추조차 하기 어렵다. 떠올리고 싶다면 방법은 당신을 지금껏 지켜온 가까운 지인들에 있다. 당신이 잊은 사랑을 위해, 내 첫사랑을 소개한다.


첫사랑. 선생님의 첫사랑은 말이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훨씬 전 일이야. 그 당시 대전에서 다닌 유치원은 교외 활동이 많았던 곳이었는데 계절마다 산으로, 들로 나갔던 걸로 기억해. 여름이면 푸른 잎이 선명한 산장으로 피크닉을 가고 바닥에 커피색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이면 산에서 따온 밤과 고구마를 안고 들로 나가 모닥불에 구워 먹었지. 유치원 교복은 노란색이라 짝꿍과 이렬로 길게 늘어진 행렬이 기억나. 실내면 실내대로. 실외면 실외대로 뚜렷한 기호 없이 그저 좋았던 나날들이지만 지금 떠오르는 건 실외의 기억뿐이야. 아이들과의 관계도 선생님의 가르침도 지금은 물리적으로 기억나지 않아. 첫사랑을 그때로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부모님의 친절한 기억 덕분이지. 그들 맏이의 수줍은 첫사랑을 소중하게 품어준 탓에 나는 여덟 살도 안 된 나이의 기억을 갖게 되었어.


모두가 노란 교복을 입었는데 혼자서만 빨간 옷을 입은 아이가 있었어. 하얀 얼굴에 또렷한 이목구비. 눈이 깊은 아이. 딱 한 장 남은 사진 덕분에 그녀를 떠올릴 수 있어.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때 방식들이 있잖아. 소극적이라면 서투름에 괜히 머리통을 툭 건들고, 적극적이라면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초읽기에 다가가 알고 있는 가장 멋진 단어로 고백을 하겠지. 나는 그 아이 곁에 오래 머물렀대. 우리는 같은 성당에 다니는 가장 어린아이였는데 예배가 끝나고 아이의 부모님끼리 인사할 때 넌지시 그녀 옆으로 가 인사하고. 그룹을 지어하는 수업이라도 있을 때면 항상 그녀 옆에 있는 날 발견할 수 있었대. 엄마는 다정한 시선으로 본인 아이의 첫사랑을 느낀 거야. 한 장 남았다는 그 사진. 졸업식 전에 유치원 주변 텃밭에서 네댓 명이서 찍은 사진인데, 나는 그 아이 옆에 있어. 가끔 가톨릭 신도들이 입는 하얀 천에 덧댄 붉은 벨벳 장식처럼, 자신의 눈처럼 선명한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작은 꼬마 옆에. 홀로 옆에 우뚝 서 있기는 부끄러운 듯 동성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그럼에도 몸은 그녀에게로 기울어 있는.


이름도 모르고, 앞서 얘기한 엄마가 간직하던 몇 가지 정보 빼고는 기억조차 없는 그 아이가 내 첫사랑이야. 초등학교도 안 갔을 때 나는 사랑을 했어.


오늘은 조금 일찍 들어가. 부모님 잠들기 전에. 옆자리에 슬쩍 몸을 기우고 물어보는 건 어때. 당신이 기억하는 너의 첫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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