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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Jun 24. 2020

아내는 오늘 밤에 집에 온다고 했다.

아내에게 혼나고 내렸다가 재발행합니다

이 글을 발행한 지 10분,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나 안가.


내가 올린 글을 보고 화가 났던 것이다. 나름 뉘앙스를 조절해가며 썼는데, 부족한 배려가 화를 돋운 것이다. (어리석었지..)


삼고초려 끝에 아내는 돌아왔다.

역시나 즐거웠고 반가웠다. 삶에 활력이 돌았고 사람 사는 것 같은 - 엔트로피가 급격히 높아진 -집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가족은 함께여야 한다. 지나가 버린 에피소드에 대해 아내가 마음 좋게 허락해 주어 글을 다시 올리게 되었다. (아내에게 감사!)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밤 집에 오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자, 이내 지난 이틀간 즐거웠던 기억이 희뿌연 담배연기처럼 흩어 사라졌다.


오늘 밤도, 내일 밤도 음악을 들으며 야근과 밀린 집안일을 할 생각에 달 표면에서 처럼 발걸음이 가벼웠었는데, 다시 우주에서 내려와 중력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았다.



이틀 전, 2주간의 휴가가 끝나고 김포공항에 내려서 우리는 처갓집으로 향했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2주간 밀린 일을 핑계로 '쌩-' 부대로 향했다. 그렇게 휴가 마지막 날엔 부대에 들어와 즐겁게 일을 했었다.


아직 휴가 중임에도 야근까지 한 후 저녁 늦게 집으로 와 음악을 틀어놓고 치킨과 함께 밀린 집안일을 했었다. 2주간의 행복과 부담에서 벗어나 소박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벽 두 시까지 일을 했다.


그리고 어제도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밀린 '정비'를 했다. 아이들이 장난감과 학용품을 집어넣었던 공기청정기 1호, 2호를 뜯어 정비했고, 에어컨과 선풍기에 낀 먼지와 곰팡이를 닦고, 로봇청소기를 수리하고, 노트북 부품을 교체하고, 냉장고-테이블 일대에 전선을 정리했다.

냉장고에 남은 음식들을 파 먹고, 어항과 화분들을 정리하고, 휴가 다녀왔던 옷과 수영복을 빨고, 텃밭에 물을 주고, 텃밭에서 따온 식재료들을 씻어서 먹었다. 어제도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잘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있었으면 시도도 못했을 '밀린 일'들을 하나하나씩 해 나가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제 침대에 누워 자기 전 "내일은 화장대를 옮기고, 이불장을 정리하고, 베란다를 청소하고, 텃밭에 잡초를 제거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는데, 방금 전 아내가 온다는 소식에 어젯밤 계획은 저 멀리 다다음 달 즈음으로 달아나 버렸다.


아내와 아이들이 오는 게 좋다. 물론이다. 다만, 함께 생활하면서 할 수 없었던 일들이 만들어낸 엔트로피를 좀 낮추고자 했던 '기대'가 무산된 것이 약간의 헛헛함을 만들어냈다.


"아직도 집에는 할 일들이 여기저기서 손 들고 있고, 보고 싶은 책들은 길게 줄을 서있데." 라며 아쉬움이 고개를 들었지만, 더 생각해봤자 건강에 좋을 것이 없다.


다시 중력에 익숙해질 때 즈음이 되었다.


아내는 오늘 밤 집에 오겠다고 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맞이할 수 있게, 점심시간이 끝나면 다시 가열차게 일을 하고 정시에 퇴근해야겠다.


아내는 오늘 밤 집에 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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