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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Sep 07. 2020

달밤에 귀뚜라미

짝은 못 찾고 임자 제대로 만남



지난 새벽일이다.


가을밤을 알리는가 보다.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첫째 표현처럼 귀뚜라미도 '끼끼끼--끼끼-'하며 운다. "이런 ASMR이 없지"라고 생각하고 피곤했던 주말을 뒤로한 채, 아이들을 재우며 '스-르-륵' 잠에 빠져들었다.


달-콤한 새벽, 아내가 내 팔뚝을 때리며 호들갑이다.


"여보!!! 여보!!!!!!!! 어떡해!!!!!!!!!"


나는 꿈뻑 꿈뻑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며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졸리니 웬만하면 그냥 자자'라는 의사표현이었다.


"여보!!!!!!!!!!! 아 일어나 봐!!!!!!!!!!"


"왜 여보-"


"귀뚜라미야ㅠㅠㅠㅠ 집안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ㅠㅠㅠㅠ 빨리 잡아줘"


너무 달콤했던 잠의 나라에서 출국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꿈뻑꿈뻑하던 눈을 이내 감아 버렸다. 고작 귀뚜라미 때문에 일어날 수는 없다. 속으로 "듣기 좋구먼. 난리래"라고 하며 잠을 이어가려는 순간, 쌔-한 느낌이 뒤통수에 와서 꽂힌다.


아내는 삐지고 울먹이나 못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알았어- 오딘데-?"


"아 저기~ 베란다 쪽!!! 그러니까 내가 낮에 잡아달라고 했잖아!!!!!"


아, 그랬었다. 아내가 뒷베란다 창문 쪽에 귀뚜라미 있다며 잡아달라고 했었고, 나는 "창문 닫아 버려, 아니면 준돌이 한 테 잡으라고 하던가" 라며 방치해버렸다.


어찌 되었든, 시계를 보니 한시 반이 되었다. 아. 내일 또 당직근무라 밤새워야 하는데, 찌-끔 짜증이 나지만, 그래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 우리 착하고 귀여운 가을밤의 전령을 처. 단. 하러 간다.


가을밤을 노래했다는 이유로, 짝을 찾는다는 이유로 이런 대우를 받는다니. 가여운 귀뚜라미. 제발 내 눈에 띄지 말아라. 제 발로 나가려무나. 소리를 들어보니 충분히 크지도 않은 녀석 같은데 아이고.


그렇게 속마음을 가지고 한 참을 찾았다. 분명 부엌 어디에선가 고운 소리가 흘러나오는데, 잘 모르겠다.


"위쪽에서 나는 것 같긴 한데, 잘 안 보이네"


"잘 봐봐!! 그 위에!! 여기 후레시!!"


결국 커튼 봉까지 올라가 공연을 하고 있던 귀뚜라미 녀석을 찾았다. 손이 닿지 않는 높이다. 잘 못 잡으려 했다가는 또 어디로 튀어오를지 모르는 상황이다. 미안하지만 '다이슨'박사를 불러야겠다.


[휘-이-잉-]


"잡았어 여보. 청소기로 빨아들였어"


"확실히 해!! 먼지함 확인해봐"


"잘 안 보이는데? 음. 보자- 보자- 여기 있네 여기"


"그거 맞아? 아닌 것 같은데!!! 확실히 해!! 꺼내서 봐!!"


"알겠어- (먼지함을 열어 직접 보여주며) 자, 됐지? 이제 자러 가자"



그렇게, 가을밤을 노래하던 귀뚜라미는 갔다. 짝을 찾으려고 울었건만, 결국 마지막 길에 만난 건 벌레 잡는데 선수인 나였다. 날아가는 잠자리도, 모기도 손으로 잡는 민구 말이다. 풀숲이든 절벽이든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으면 뭐든 잡는 곤충계에 최고 사냥꾼 민구 말이다. 개구리 잡기 챌린지를 하면 개구리만 수십 마리를 잡아오는 그 민구 말이다. 뚜라미는 불쌍하게도 임자 제대로 만났다. 옆집으로 갔어야지. 102호로.


그렇게, 가여운 귀뚜라미를 생각하며 침대에 누우니 아내가 아주 듬직해하고 좋아한다. 편히 잘 수 있단다. 역시 금세 편히 주무신다. 그녀를 따라 나도 편히 자려다가, 브런치를 켜고 [달밤에 귀뚜라미]라는 제목만 적어놓고 작가에 서랍에 넣는다. "내일 점심시간에 써야지"

어느 가을밤.

짝은 못 찾고 임자 제대로 만난,

슬픈 귀뚜라미 이야기.


그리고 남편 잘 만난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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