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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Sep 30. 2020

머리끈의 합당한 위치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깔끔한 성격은 아니다. 다만 강박이 몇 가지 있다.


물건이 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잔소리처럼(아니, 잔소리로) "쓰고 제자리"를 외치지만, 사용 후 갈길을 잃은 물건들은 여전히 집안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다.


손톱깎이나 계량컵 같은 것들이야 뭐 어디에 있든 자주 쓰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상관없다. 가끔 엉뚱한 곳에 있으면 치우면 그만이다.


하지만 머리끈처럼 매일처럼 사용하는 물건은 이야기가 다르다. 분명 치웠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서면 여기저기에서 머리끈들이 발견된다.



처음에는 치워봤다. 싹 걷어다가 화장대 서랍에다 넣었다. 그게 잘 안되어 주로 출몰하는 지역에 머리끈을 걸 수 있는 고리를 달아놨다. 하지만 특별히 개선되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냥 놔둔다.


한 동안 날부라져 있는 머리끈들을 두고 보다가 사진을 찍어댔다. 아내가 뜨끔한지 나에게 묻는다.


"왜 사진 찍어, 브런치에 글 쓰려고 하지?"

"응, 왜? 부끄럽? ㅎㅎ"

"사진 연출하지 마~ 거기에 머리끈 없었잖아-"

"보통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으니까. 지금 없더라도 머리끈 가져다 놓고 사진 좀 찍는 게 거짓말은 아니지ㅎㅎ"


그렇게, 사진을 찍고 글을 계획하게 되었다.

계획이랄 것도 없다. 냥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는데 머리끈이 눈에 들어왔고, [머리끈의 합당한 위치]가 어디일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내의 논리는 이렇다. 자주 쓰는 물건이기 때문에 손에 닿는 어디에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언제나 손에 닿을 수 있게 주방에도 두어 개, 식탁에도 두어 개, 책장에도, 침실에도, 특별히 화장실에는 네 개 정도 있어야 맞다.


다이소에서 구매할 때도 수십 개씩 매할 수 있으니, 여기저기 몇 개씩 두어도 전혀 문제없다. 그렇게 합당한 위치마다 준비된 머리끈들이, 언제든 아내의 헝클어진 머리를 위해 묶일 준비가 되어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아이들 장난감이 되기도 하고, 물건들을 모아둘 때 쓰이기도 한다.



합당하다.


나도 전역하거든 머리 장발로 길어서 머리끈 묶은 말총머리 하고서 지내봐야겠다. 그래야 아마 척추에서부터 올라오는 진심으로 '합당하다'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머리끈의 합당한 위치는. Everywhere.

오늘도 평화를 선택한, 진정한 평화주의자 민구.

내일도 지구와 국가와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지나가는 머리끈은 못 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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