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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 민구 Jul 16. 2020

모든 접시 위에서 느껴지는 너의 마음

남자는 애, 여자는 함구



그러게 말이다.


내가 볼맨 소리를 하면, 아내는 늘 "내가 너만 생각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복에 겨워서 그런 것인지 그때마다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기적 편협성에 갇혀서 "도대체 날 사랑한다면서 왜 의 사소한 불만조차 해결해주지 않는 거야"라 바보 같은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어제는 땀이 너무 많이 나서 퇴근해서 집에 오자마자 샤워를 했다. 잘 정리된 수건을 한 장 꺼내 머리를 말리니 이내 밥상이 차려졌다.


그리고 접시마다 담긴 아내의 마음을 보았다.


밥그릇에는 찰밥이, 국그릇에는 참치 미역국이 소복이 담겨있었다. 평소 현미밥에 들깨 미역국을 할 때마다 내가 투정을 부렸는데,  것만으로도 충분히 군침이 돌았다.

 

매콤 새콤하버무린 오이 무침과 기름을 충분히 두르고 튀기듯 부친 애호박전이 침샘을 열심히도 자극했다. 그리고 어떤 아쉬움을 달래듯 함박스테이크가 뒤늦게 김을 올려 세우며 남은  자릴 채웠다.


어느 하나 취향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모든 접시 위에서 아내가 장을 보고, 밥을 짓고, 요리하는 과정이 스쳐지나 보였고 나에 대한 사랑이 묻어 나왔다.


아내는 늘상 '나만 생각한다'라고 말했는데, 왜 그런지 그것을 몰라본 바보 같음에, '나도 나만 생각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나를 생각하고 나도 나만 생각하니, '아내는 누가 생각하나'라며 미안함이 솟아올라 맛있지만 민망한 식사가 되어버렸다.


남김 있을 수 없는 푸짐한 저녁밥상에 배는 부르고, 머리는 무겁고, 마음은 따듯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나만 생각한다던 아내는, 정말 나만 연구하는지 어떤 비난이나 질타, 눈총 없이도 나를 한 없이 한 끼 밥 만으로 작고 모지란 놈으로 만들었고


그 모지란 놈을 사랑해주는 유일한 여자가 되어 구원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남자는 애다. 다 커도 애다.

잘난 척 하지만, 한 끼 밥상에 당연한 것처럼 여겼던 당연하지 않은 무엇인가를 뒤늦게 깨닫는 애다.


나에게 늘 동의해주고 따라주는 것은 아내가 나를 세우고 이끌어가는 방법일 것이다.

아내가 싱거운 반찬을 내고 자기 전 맥주잔에 잔소리를 따라주는 것은 나를 살리는 방법일 것이다.


그러다 가끔 지쳐있을 나를 위해 실수로 소금을 쏟은 것처럼 간이 맞는 반찬과 쫀득한 찰밥, 들깨 없는 미역국을 내는 것은, 정말 나만 생각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렇게 오늘도

아직 덜 큰 서른넷 잘난 척 아저씨는

모든 접시 위에서 살아있는 마음을 느끼곤,


조금 더 컸나 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트롯 한 구절

남자는 애- 여자는 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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