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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사람들은 모두 텃세를 부릴까?

20대 여자, 시골에 가서 살다!

by 유하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인터넷 노마드로 살아온 나는 짐을 최소한으로 싸는 데 꽤 익숙했다. 가방 하나에 삶을 접어 넣는 일쯤은 이제 능숙했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엄마가 직접 차로 내가 살 동네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 것이다. 나는 오래 눌러뒀던 사치를 허락받은 사람처럼, 트렁크와 뒷칸을 꽉 채워 짐을 넘치도록 쑤셔 넣었다. 노래라도 부르듯 마음은 가벼웠고, 차는 무거웠다.


두 시간 넘게 국도를 달려 도착한 그 마을은, 내가 상상하던 ‘공동체’와는 사뭇 달랐다. 유령이 나올 법한, 관리가 오래 끊긴 듯한 회색빛 건물. 한쪽 벽은 덩굴에게 완전히 점령당했고, 사람의 온기는 오래전에 휘발된 것처럼 공기가 차가웠다. 그 고요는 적막이 아니라, 외면받은 시간의 자국처럼 느껴졌다.

‘교무실’이라 적힌 문에서 나온 두 사람의 표정도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단호한 눈매의 단발머리 여성, 그리고 흰색과 검정이 뒤섞여 은빛처럼 보이는 머리칼을 가진 중년 남성. 그나마 남성 쪽이 말주변이 조금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기숙사로 안내했다.

기숙사는 엄마한테 보여주는 게 민망할 정도였다. 양쪽 구석에 서 있는 이층 침대 사이에는 내가 외로울 것을 걱정이라도 한 것인지 나의 마음을 지켜줄 애완 거미(?) 한 마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불 커버조차 덮여있지 않은, 벌거벗은 채로 놓여있는 매트리스는 학생에게 '이 정도는 네가 알아서 하라'는 선생님의 무관심으로 느껴졌다.

"전기장판 가져오길 잘했다!"

전기장판이 아니면 데워질 것 같지 않은 공기로 채워진 방 안. 거기에 몸을 맞대고 있는 엄마가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곳에서 살 수 있겠어?”

걱정에 가득 찬 목소리에, 나는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져 퉁명스레 대답을 내뱉었다.

“살아야지.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잖아.”

겉모습만 보고 내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 의심하는 엄마에게 괜스레 심통이 났다. 누군가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할 때, 응원 한마디 보태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걸까. 좋은 말에는 유난히 인색한 한국 사람들. 나는 해외에 살며 내면화되어버린 부정적인 말들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애써왔다. 그런 나의 노력에 보상하듯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서 만든 선택은 언제나 나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랬기에 걱정으로 뒤덮인 만류를 듣는 것은 이제 흘러 보내는 데 익숙한 줄 알았건만, '엄마'의 목소리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항상 크게만 들렸다.


‘이게 바로 농촌의 텃세인 걸까?’

도착한지 몇분만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너무 빠른 걸 알면서도 엄마의 불안에 전염된 나는 풍경도 사람도 낯설고 싸늘하게만 느껴졌다. 그 두려움이 더 커지기 전에 엄마를 떠나보내고, 나와 함께 유기농에 대해 공부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러 나섰다. 이번엔 새로운 젊은 남자 선생님이 나를 데리러 왔다.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맞이 하는 그를 보자 괜히 이곳을 섣부르게 판단한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그를 따라 산길을 걷자 내 몸과는 조금 멀리 있는 비닐하우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숙이니 내 바로 앞, 언덕 밑에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무 그늘 아래, 투박한 나무 테이블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참을 먹고 있었다. 나는 개인 사정으로 남들보다 일주일 늦게 도착했기에, 더 긴장되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머, 이제야 보게 되네요~ 조금 늦게 오신다길래 기다렸어요.”

“자, 제 옆에 앉아서 같이 먹어요.”

아까 느꼈던 낯섦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사람들은 따뜻했다. 마치 할머니가 나를 다정하게 ‘먹쭐(손주를 많이 먹여 먹을 것으로 혼쭐을 내다)’ 내는 것처럼, 이것저것 입에 넣어주며 내 배를 채워줌과 동시에 나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며 자신들의 호기심도 채웠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들의 이야기도 풀어놓기 시작했다. 농사일로 달라진 몸의 감각, 마을의 날씨, 각자의 고민까지.

햇빛 아래서 찬물에 발을 담근 듯, 그 시간들은 느긋하고 시원하게 흘렀다. 아까의 싸늘한 공기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무 아래의 웃음소리와 풀 냄새만이 감돌았다.


그제야 떠올랐다.

처음 가보는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낯선 감각은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새로운 장소는 언제나 익숙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하고, 때로는 그 겉모습만으로도 마음이 주춤하곤 한다. 하지만 그 잠깐의 낯섦을 두려움으로 단정짓지 않고 견뎌내면 예상치 못한 따뜻함이 그 너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껏 내가 지나온 모든 새로운 곳들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이곳의 따뜻함은 또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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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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