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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어주는 사람들

홍동으로 가게 된 이유

by 유하

하늘은 늘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춘다. 꼭 필요한 순간에, 꼭 필요한 사람을 내 앞에 데려다준다. 너울도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오랜 해외살이를 잠시 멈추고, 한국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즈음, 인스타 피드에 강정마을에서 3박 4일 동안 평화 공동체를 체험할 수 있는 ‘섬띵위크’ 캠프 신청서가 떴다. 평소 제주도에서 평화운동을 하는 친구를 보며 막연히 그곳에 대한 동경을 품어온 터라,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너울을 만나게 되었다.


너울을 처음 본 것은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강정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서 있을 때였다. 귀에 피어싱을 잔뜩 매달고 있는 샤프한 인상의 사람이 자꾸 눈 안에 걸렸다. '멋있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저렇게 도도하게 생긴 사람이 나랑 친해질 리 없다고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선을 그었다. 그가 나와 같은 행선지에 갈것이라고는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 버스가 왔고 우리는 같은 버스를 탔다. 아니, 탈 수도 있었다. 교통카드에 잔액이 부족하지만 않았다면.. 나는 눈물을 머금고(?) 다시 편의점에 가서 교통카드를 충전한 뒤 버스를 타고 숙소에 갔다. 그곳에는 내가 아까 봤던 도도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너울은 엄청 뾰잉(귀염뽀짝)한 말투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매서운 눈매에 아기 말투라니.. 친해지고 싶지 않을 수 없잖아?! 우리는 한참 수다를 떨다가 음악을 틀어 놓고 코를 골며 낮잠을 잘 정도로 서로가 편안해졌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숙소에 도착하여 함께 소천지에 바다 수영을 하러 갔다. 일렁이는 파도에서 어푸어푸 오리발을 나눠 끼고 헤엄을 쳤다. 노을빛이 우리의 얼굴을 감쌀 때 즈음에 바다에서 나와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별을 보러 갔다. 다음 날에는 동네 사람들과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며 평화 운동을 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느꼈다. 지속가능한 시위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니라 즐기는 마음이라는 것을.


9월인데도 따가운 햇빛과 후끈한 습도 속에 숨이 막힐 듯 끓어올랐다. 사람들은 밥을 먹고는 강정천으로 내려가 물속에 몸을 담갔다. 나도 망설임 없이 그들을 따라 풍덩 뛰어들었다.

'앗 차가!!!' 사람들은 이 냉기를 느끼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이상한 걸까? 예상치 못한 물의 온도에 온몸이 굳었다. 뼛속까지 얼어붙을 듯 차가운 물이었다. 처음엔 견디기 힘들 만큼 차가워 금방이라도 나가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물속 깊숙이 잠수하고 있었다. 나 혼자 빠져나올 수는 없다는 이상한 의무감에, 나도 그 차가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참을 물속에 있다 보니, 오히려 그 냉기가 내 몸 안으로 스며들어 뿌리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 밖으로 나온 뒤에도 그 시원한 감각이 오랫동안 내 몸에 머물렀다. 덕분에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 속에서도 이상하게 아무렇지 않았다.

마치 강정마을처럼. 강정천의 냉기가 몸을 식혀주 듯, 강정마을의 평화는 마음을 식혀주었다.

사람들의 이기심이 만든 전쟁과 자본주의에 미쳐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사회. 그 안에 살며 답답했던 내 마음에, 강정마을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평화의 풍경은 말없이 스며들어 조급함을 가라앉혔다.


너울과 나 그리고 다른 참가자들은 곶자왈에서 나무를 안기도 하고 풀을 만지도 하며 자연과 가까워졌다. 밤에는 별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시원한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렇게 우리의 영혼도 한층 가까워졌다.

그다음 날에는 '공평해'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바람과 천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어.'

'공평해'에서는 꽃보다 남자에서 나온 명언(?)같이 전기 모터 없이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하여 다른 나라까지 갈 수 있는 배를 모는 법을 알려준다. 그 배로 바다를 건너 닿을 수 있는 나라에 가서 그들이 하고 있는 평화 운동을 지지해 주는 프로젝트였다.

나는 이 프로젝트에 혹했다. 왜냐하면 내 어릴 적 꿈이 해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을 해치거나 약탈을 하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고, 그저 끝없는 바다 위에서 어디론가 항해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그래서 최근까지 '씨셰퍼드'라는 해양생물보호단체에서 하는 1년짜리 배 타는 과정에 신청도 해봤지만, 경력이 없던 나는 광탈했다. 그 이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던 내게 이건 또 다른 초대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에서는 3개월 동안 배를 다루는 법과 고치는 법 등 내가 필요한 것을 알려줄 뿐 아니라, 그 과정을 수료하면 3개월 동안 오키나와 대만 등 다른 나라로 항해를 할 수도 있다.

사실 '씨셰퍼드'에서 하는 프로젝트는 1년이라서 내가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도 했다. 그리고 환경문제를 알고 있으면서 지난 N년간 비행기를 타며 다른 나라로 여행을 한 것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해양생물을 사랑하는 나에게 배를 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은 사실 아니다. 배를 몰 때 사용하는 전기모터는 그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평해' 프로젝트는 친환경 에너지로 가기 때문에 그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 프로젝트는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되어 있던 길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다음 여정을 제주도로 정했다.


“같이 해요!” 너울이 말했다.

“너... 배 멀미하잖아?” 나는 웃으며 되물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요!”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너울의 말에 나도 피식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항해하는 프로젝트(공평해)를 하기로 했다. 프로젝트는 일 년에 두 번의 교육과정이 있었다. 4월부터 6월(상반기), 9월부터 11월(하반기) 너울은 공평해 프로젝트를 위해 자신의 고향인 충청도를 떠나 서울에 와서 돈을 벌정도로 진심이었다. 나도 그때까지 미국에서 영어도 공부하고 발리에서 요가 티처 자격증도 따며 시간을 보냈다.(한국에 머물려고 했지만 결국 또 해외에 나갔다!) 제주에 가기 이 개월 전에 나는 너울과 서울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울 살이는 어때?"

"일이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그래? 다행이다. 힘든 일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해 줘."

"네. 근데 유하.. 할 말이 있어요. 고향에 있는 제 고양이가 많이 아프대요. 그래서 4월에 제주에 못 갈지도 몰라요. 진짜 유하랑 같이 가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워요."

너울은 16년 전, 일곱 살에 고양이 ‘츄르’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직접 데려온 생명이기에 돌보는 책임은 온전히 자기 몫이라고 했다. 책임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을 나이에, 그 아이는 지금 츄르를 위해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고 있었다.츄르는 사료는커녕 액체 사료조차 삼키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지금은 가족이 함께 돌보고 있지만, 곧 농번기가 시작되면 가족들이 농사로 바빠져 너울이 직접 돌봐야 한다고 했다.

"그렇구나.. 나도 너울이랑 같이 가고 싶었는데 정말 아쉽네."

"그러게요.. 정말 정말 유하랑 같이 가고 싶었는데 말이죠.. 유하만 괜찮다면 혹시 9월까지 조금 기다려줄 수 있을까요?"

"음.. 나도 혼자 하는 것보다는 아는 누군가와 같이 하는 게 더 좋지! 그럼 9월까지 뭘 해야 할지 정해야 하긴 하지만.."

"앗, 그럼 저희 동네에 올래요? 여기에 '전공부'라고 유기농 농사를 가르쳐주는 곳이 있거든요. 여기 급식이 다 채식으로 나와요. 그리고 마을에서 비건 페스티벌도 하고, 비건 김장도 하고요! 매주 수요채식 밥상이라고 사람들이 각자 반찬을 해오면 나눠먹는 형식이라 다양한 유기농 채소 요리도 맛볼 수도 있고, 뜸방도 있어요!!"

비건인 나는 너울이 하는 모든 말에 귀가 쫑긋했다. 나는 정말 오랫동안 생태 공동체를 찾아 헤매고 있었고 너울이 이야기하는 그곳은 내가 상상했던 어딘가와 상당히 비슷했다. 사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내고 1년 동안 유럽에 있는 공동체를 경험할까?'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정확히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서 계획을 미루고 있었기에 너울의 제안이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2주 동안만 생각할 시간을 줘.'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미 그곳에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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