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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부자인 사람들의 마인드셋

돈에 대한 관점 바꾸기

by 유하

이십 대 초, 처음 회사에 들어가서 술을 배웠다. 사장님은 술을 정말 좋아하는 40대 후반 여자분이셨다. 얼마나 좋아했냐 하면, 회사 굿즈로 소주와 맥주를 완벽하게 섞어주는 ‘소맥탕탕이’까지 만들 정도였다. 그때 나는 양주, 소주, 맥주, 와인… 세상 술이라는 술은 다 마셔본 것 같다. 술잔을 부딪히는 소리, 얼음이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의 뜨겁고 쓰디쓴 맛. 어느 술집에서 어떤 조합으로 마셔야 맛있는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덕분에 회사에 다니던 시절 나는 술을 즐겨 마셨지만, 단 하나 막걸리만큼은 좋아하지 않았다. 첫 회식날, 막걸리를 마시다가 속이 뒤틀려 3초마다 방귀가 치밀어 오르던 악몽 같은 기억 때문이었다. 그 뒤로 막걸리는 나와 맞지 않는 술이라고 단정하며 6년을 외면했다.

그런데 홍동에 와서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마을 사람들이 직접 기른 쌀로 막걸리를 빚는 모습을 보고, 농사를 짓다가 참을 먹을 때 그 막걸리를 곁들이며 나눠 마시다 보니, 막걸리는 내게 어느새 가장 좋아하는 술이 되어 있었다.


최근 ‘막걸리의 친구들’에서 열리는 시음회에 초대받았다. 모임 장소에 들어서자 벽에는 ‘전통주 소믈리에’, ‘양조 기능사’ 같은 자격증이 다닥다닥 걸려 있었고, 커다란 테이블 위에는 김, 쑥개떡, 삶은 두릅 같은 정성스런 안주가 차려져 있었다. 탁한 빛깔의 막걸리들이 병마다 서로 다른 향을 품고 있었고, 한 모금씩 입에 머금으면 신맛, 구수한 맛, 묵직한 맛이 번갈아 가며 혀끝을 자극했다.

막걸리의 친구들은 각 막걸리를 마시고 어떻게 다른지 마시고 평가해 달라고 했다. 우리는 막걸리 평가도 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막걸리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술 마시는 것이 묘미였기에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한적하고 시골의 풀벌레 소리가 가득한 곳에 있는 아지트에서 직접 만든 술을 마신다는 것은 퍽 낭만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막걸리 친구들이 막걸리를 만들기 위한 쌀을 얻기 위해 솔이 트랙터를 온몸으로 막아선(?) 낭만적인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각 막걸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각자의 최근 관심사 등을 이야기 등을 이야기하며 시간은 무르익어갔다. 그러나 이야기의 끝은 언제나 현실로 향하듯, 결국 돈 이야기로 이어졌다.

“맞아… 시골에서 돈 벌기 힘들지. 그래도 월 백 정도 벌고 월세 내면 살 만한 것 같아. 음식은 농사지어 먹으면 되잖아.”

누군가 툭 던진 말에 방 안의 온도가 서서히 내려앉았다. 순간의 침묵을 깨고, 수수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나는 요즘 돈 진짜 많이 벌어! 얼마 버는 것 같아?”

우리는 얼떨결에 퀴즈쇼 참가자가 된 듯, 숫자를 불러댔다.

“300?”
“아니야, 250쯤?”
“요즘 부업한다더니, 혹시 400?”

수수는 팔짱을 낀 채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대답을 미루었다. 방 안 공기가 점점 고조되다가, 마침내 수수가 입을 열었다.

“흠… 매달 다르긴 한데, 많을 땐 오백도 넘는 것 같아.”

우리는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시골에서?

수수는 우리 얼굴을 보며 더욱 신나게 말을 이어갔다.

"생각해 봐. 서울에 가면 매일 밥 사 먹고, 모임 가려고 하면 항상 돈을 써야 하잖아. 우리가 지금 마시고 있는 이 수제 막걸리? 술집에 가면 한 병에 3만 원 정도는 할 테고 안주도 만오천 원 정도부터 시작하니까.. 지금 식탁에 있는 안주가 7개고 막걸리도 5병이니까 이미 20만 원 정도는 굳은 거지! 서울에서는 꽃도 사잖아. 시골은 지천에 널려 있는데 말이야."


수수의 말은 농담 같으면서도 진지했다. 나는 얼마 전 영의 결혼식을 떠올렸다. 야외 결혼식을 하려고 꽃 장식 업체에 물어보니, 공원 한쪽을 장식하는 데만 무려 1,500만 원을 부른 것이다. 결국 영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직접 꽃을 구하기로 했다. 전공부 선생님들과 마을 친구들이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야생화를 꺾어 모았고, 영은 수많은 화분에 직접 씨앗을 뿌려 키운 꽃으로 장식을 완성했다. 결혼식 당일, 들꽃으로 가득한 길을 걸어 들어가는 신부의 모습은 업체가 만든 화려한 세트장보다 훨씬 감동적이었다. 그 일을 도와준 마을 사람 몇몇이 정말 많이 고생했지만 덕분에 그 일은 '영의 결혼식'이 아닌 '그 결혼식'으로 마을 사람 모두가 회상하며 좋은 추억으로 마음에 간직할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유기농법 실습을 배울 때도 거기에서 나는 꽃을 딴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감자꽃을, 당근꽃을 보았다. 일반 감자에서는 흰 꽃이 피고, 자주감자에서는 보라 꽃이 핀다. 감자밭 김메기를 하고 꽃을 똑, 똑 딴다. 재활용 유리병에 꽃을 꽂아 놓고 준비한 참을 꺼내 먹는다. 우리는 그렇게 돈 없이 마음을 향기롭게 하는 법을 안다.


지난 편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의 일주일은 홍동에 온 뒤로 온갖 모임들로 꽉 차있다. 만약 내가 서울에서 살았다면, 그것을 위해 나는 얼마나 더 일을 해서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더 벌어야 했을까? 마음으로 만든 모임과 돈을 벌기 위한 모임은 얻어가는 것도 확실히 다르다. 수수말대로 나는 이 마을에 살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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