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골 마을이라면 영원히 살고 싶다
"이 동네에 집이 없어요. 대기자도 열명이 넘는걸요."
아직 홍동에 산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도 벌써 이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부동산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살 수 있는 집이 없다는 말뿐이었다. 나는 유기농법을 배울 수 있는 '풀무학교 전공부'에 딸려 있는 기숙사에 살고 있다. 그곳을 중심으로 두면 걸어서 10분 거리에 모든 게 다 있다. 편의점부터 마트, 병원, 은행, 유치원, 학교 등 삶에 필요한 것들이 기본적인 것들부터 마을 활력소, 도서관, 헬스장, 전시장, 술집처럼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들까지. 딱 하나, 영화관은 없었지만 밝맑도서관이나 학교에서 영화 상영회를 자주 했기 때문에 새로 나온 영화를 보러 가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면 동네를 크게 벗어날 일이 없었다.
"홍동 유명하잖아요. 서울에서 귀촌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으로 오고 싶어 해요."
동네 청년 삐가 나에게 홍성의 명성이 얼마나 자자한지 알려주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지만, 살아보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사람들도 홍동이 유명해져서 비싸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알음알음 입소문으로만 전해지고 있는 것이겠지. 내 글이 엄청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지는 않겠지만 온라인에 이런 정보를 적는 것만으로 홍동이 더 유명해질지도 모르니 미리 사과의 말을 올린다.
최근 몇 년간 정부에서는 수도권 인구 과부하 문제 때문에 청년을 지방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고 있다. 하지만 그 정책이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매년 서울에 올라오는 지방러들은 늘고, 지방 인구는 줄고 있다. 그렇다면 홍동은 어떤 매력이 있길래 집이 모자란데도 청년들이 오고 싶어 하는 걸까?
고구마순 자르기 수업을 하다가 선생님이 우리를 데려간 곳은 이장님 집이었다. 마당에 있는 큰 나무 아래 밑에 앉으니 땀에 절여진 몸에 시원한 바람이 후두둑 떨어졌다. 나무 식탁 위에는 이장님이 준비해 준 찐 고구마와 쑥가래떡이 준비되어 있었다.
"집이 필요해? 여기 정착하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빈 농가가 생기면 알려줄 테니까!"
이장님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을에 정착하고 싶은 청년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계셨다. 지금은 농부와 이장으로 살고 계시지만 예전에는 풀무학교 전공부 선생님으로도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셨다. 농사일을 하다가 오셨는지 일복을 입고 있으셨다. 그에게 동네가 너무 좋다고 살고 싶다고 말하니 돌아오는 대답은 정말 다정했다. 우리의 대화는 이어졌다. 이장님은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경청할 줄도 알고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말할 줄도 아는 분이셨다. 이장님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대화를 하다 보니 그에게 반해버렸다. 요즘 청년(?)인 내가 원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놈의 축산업은 아주 다 없애야 해! 환경오염을 너무 시켜."
이장님은 고기도 드시지 않았고, 탄소배출 절감을 위해 비행기도 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이셨다. 64세 남성에게 27살 여자가 공감할 수 있다니. 변화하는 시대에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으시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계신 것이 정말 멋져 보였다. 게다가 이분이 마을 이장이라니! 환경 문제에 공감하는 수많은 젊은 이들은 이 동네에 살고 싶어 하리라.
홍동에는 홀로 온 청년도 많지만 그보다 신혼부부나 아이가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이사를 온다. 아이와 같이 살기도 좋은 동네이기 때문이다. 나를 이 동네에 소개해준 너울은 초등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그 대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동네 사람이 한 명씩 와서 무언가를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월요일에는 영어, 화요일에는 농사, 수요일에는 수영.. '한 아이를 키우리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들어보긴 했지만 홍동은 현대 사회에 그것을 실천하는 얼마 안 되는 마을이 아닐까? 사람들이 마음을 합쳐 아이를 키워내는, 마을의 공동 육아를 직접 목도하니 이런 곳이라면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마을에는 그런 식으로 홈스쿨링을 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고, 덕분에 그 방식을 아동복지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 혹은 자율 학습을 하고 싶은 아이들은 아동복지센터에 가서 다양한 활동을 지원받을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삐약거리며 논에 들어간다. 발이 푹푹 빠지는 게 어색한지 울먹이는 아이도 있는 반면 흙물을 다 묻히고 꺄르륵 웃는 아이도 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를 한 움큼 집어 들고 논에 심는다. 아직 초등학생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모내기를 하다니! 작년에도 했다고 하니까 나보다 선배다. 이렇게 자연을 만지고 느끼고 큰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될까? 나는 이미 이 동네 토박이인 너울을 보며 많이 느낀다. 길을 걷다가도 애기똥풀을 꺾어서 내 손에 그림을 그려준다. 그러면서도 꽃을 너무 많이 꺾으면 안 된다고 하며 딱 하나의 꽃의 마지막 노란즙까지 남김없이 사용한다. 아스팔트에 발라당 뒤집혀 있는 매미를 그늘로 옮겨준다. 밭일을 하며 협력을 배우고 농산물을 수확하며 나눔이 무엇인지 배우며 자란 그녀와 함께 있다 보면, 경쟁과 이기심이 가득한 곳에서 자란 내가 더 어린 느낌이다. 그녀보다 나이가 7살이나 더 많지만, 이곳에서는 아직 3개월이 된 아기다. 그런 나를 마을 사람들은 돌봐주고 채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