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활동 그리고..
"두릅, 두릅~"
4월의 중순이 되니 나는 두릅이 먹고 싶어졌다. 할머니는 봄마다 두릅을 삶아 투박한 손으로 두릅을 휘휘 감아 초장에 찍어 입에 넣어주셨다. 홍동에 와서 농사를 지으니 제철음식이 더 당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릅을 따러갈 시간은 없었다. 우리는 염수선을 하며 쌀에 싹을 틔울 준비와 다른 농사일로 바빴다. 그나마 김 메기를 할 때에는 냉이가 잡초여서 냉이 향을 한가득 먹게 되어 냉이에 대한 욕망은 없었다. 하지만 두릅! 삶아 말랑해졌지만 여전히 뾰족한 가시가 여린 입술과 입안을 지나갈 때 꼭꼭 씹어 목구멍으로 삼키면 입안에 감도는 씁쓸한 맛이 이상한 성취감을 준다. '아, 두릅이 정말 먹고 싶다!'라고 말하며 수요 채식밥상에 간다. 수요 채식 밥상은 말 그대로 수요일마다 비건식을 먹는 모임이다. 매주 모임을 할 때마다 하나씩, 마을에 어떤 모임이 있는지도 소개를 시켜준다. 원래 나는 전공부(농사학교)에서 점심을 먹는데, 수요일만 급식을 거부하고 채식 밥상 모임에 간다.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하나씩 음식을 만들어서 오는데, 사람이 많이 올수록 더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는 매주 수요일에 비건 뷔페를 공짜로 갈 수 있다는 거지! 게다가 사람들이 가져오는 음식은 자신들이 직접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채소로 만들기 때문에 먹고 나면 더 든든하다. 그중에는 요리가 취미인 사람도 있어서, 새로운 레시피로 만들어진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도 신나는 지점 중 하나다. 최근 읽고 있는 일본의 만화책, [만들고 싶은 여자와 먹고 싶은 여자]가 있는데 나는 단연 '먹고 싶은 여자' 쪽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어 주면 아주 맛있게 잘 먹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채식밥상에 참여하려면 물론 나도 음식을 하나 가져가야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농사 수업이 끝나고 나면 나는 시간이 없어 부랴부랴 수업에서 지은 상추를 뜯어 씻어 달려간다. 오늘은 학교 동기, 솔라와 처음으로 같이 채식밥상에 가는 날이다. 덕분에 상추에 레디쉬무와 소스를 추가해서 샐러드를 만들었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음식다운 음식을 만들어가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솔라와 함께 채식밥상에 오니 마법처럼 두릅이 두 가지 종류로 놓여 있었다! 마을 사람 중에 두 사람이나 내 마음을 읽다니..! 역시 홍동은 마법 같은 마을이군, 속으로 외치며 사람들이 가져온 음식을 주욱 둘러봤다. 두부와 냉이 그리고 직접 만든 된장이 들어간 냉이 된장국, 작년에 담근 비건 김치, 호박고지와 쑥이 들어간 현미밥, 꼬들꼬들 고추장이 묻은 매실 장아찌, 새콤달콤한 무무침, 노란색 꽃이 들어간 샐러드와 우리가 가져간 레디쉬무가 들어간 샐러드, 엄나무순, 망초 대나물, 그리고 내 최애 두릅까지! 차와 견과류를 준비해 온 사람도 있었다. 오늘 소개할 모임은 '풀모임'이었기에 사람들은 각자 다양한 풀들을 가져왔다. 풀모임 친구들은 개망초, 꽃마리, 돌나물, 달래, 미나리, 파드득나물, 긴병 꽃 풀, 소리쟁이 등 내가 처음 들어보는 풀도 잔뜩 가져와서 소개해주었다. 풀모임이라니! 도시에 살 때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풀이 눈에 들어오는 요즘이었다. 풀모임은 한 달에 한 번 꾸준히 모여서, 풀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큰일이군.. 내 일주일은 이미 다 가득 차버렸는데.. 그래도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며 진지하게 모임에 들어가는 것을 고민했다.
우리는 돌아가며 가져온 음식을 소개하고 제일 좋아하는 풀에 대해 말했다.
"저는 밥을 했어요. 아침에 부랴부랴 캔 쑥을 넣었어요. 쑥이 좀 크다고 느껴지면 으깨듯이 박박 문질러서 씻어보세요. 그럼 뻣뻣한 게 부드러워져요. 소리쟁이를 방금 먹었는데 너무 쓰네요. 그래도 풀을 통해 다양한 자극을 느끼는 게 재미있어요. 요즘 제가 좋아하는 풀은 이끼예요. 주변을 보며 이끼를 찾고 있어요. 벽 사이사이, 돌 사이사이의 이끼를 보는 게 요즘 취미랍니다!"
"요즘은 자주 광대나물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요즘 곳곳에 많아서 그걸 어떻게 해먹을지 고민하게 된다니까요."
"민들레가 정말 많잖아요. 저는 민들레꽃으로 젤리를 만든 기억이 있거든요. 나중에 같이 해봤으면 좋겠어요. 활짝 핀 꽃을 한가득 모아 노란 꽃잎만 뽑아서 설탕과 한천을 넣고 끓인 다음 꽃을 건져내면 완성이에요!"
채식 밥상은 내가 몰랐던 세계, 하지만 알고 싶은 세계를 활짝 열어주는 곳이었다. 뷔페에 간 것처럼 다양한 음식을 먹으면서 그 음식을 만든 재료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몸속으로 들어온다.
채식밥상 모임이 끝나고 솔라와 동네 마실을 나갔다. 마실이라기에는 그냥 간단한 산책이었다. 밝맑도서관을 따라 주욱 예쁜 집이 늘어져 있는 그 길은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그 길 따라 핀 꽃은 마치 자신이 속해 있는 집이 제일 아름다워야 한다는 듯 한껏 진해진 색깔을 뽐내고 있었다.
"유하, 계절을 온전히 느끼려면 꼭 세 가지를 해야 해. 첫 번째로는 요리! 제철 요리라는 단어가 있는 것처럼 아무래도 그때 나온 채소를 먹어보는 게 중요하겠지.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 계절을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거야. 여름에는 물놀이를 하고 겨울에는 눈놀이를 하는 것처럼! 마지막 세 번째는.. 그 계절에만 피는 식물을 보는 거야."
솔라는 길을 둘러싸고 있는 꽃과 풀들을 보며, 마치 학교에서 처음 배운 것을 엄마에게 말하는 아이처럼 나에게 '이 풀은 00이고 저 나무는 &&야. 그리고 저 꽃은 **야. '하고 신이 나서 설명해 주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하루 종일 설레서 말해주는 사람, 근데 좋아하는 것이 풀인 사람이라니. 나는 배움에 게으른 사람이라 이런 사람이 필요했다. 매일 솔라 옆에서 걷고 싶다. 하루 종일 내 귀에 종알종알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유독 햇빛이 따뜻한 오후였다. 하늘은 파랗고 풀은 푸르렀다. 그 순간 나는, 계절을 온전히 살아낸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하고 마음 깊이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