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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Mar 18. 2024

싱숭생숭한 초등학교 입학 예비소집일

  오늘은 첫째 딸 봄이의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이다. 어젯밤에는 잠이 잘 오지 않고 싱숭생숭했다. 내 딸이 벌써 초등학생이라니! 아직 내 친구들의 절반도 결혼하지 않았는데 내가 학부모라니! 모든 것이 낯설고 긴장된다. 새로운 육아 세계가 펼쳐지는 것에 대한 설렘과 기대도 살짝 있지만 미지의 세계에 들어서며 뭔가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이제 그냥 부모가 아닌 '학'부모라서 그런가 보다. 

  봄이도 여덟 살이 되어 마음이 훌쩍 자랐는지 사준 지 일 년 넘은 자기 침대에서 자기 시작한다. 잠든 봄이를 보며 지난 칠 년간 내가 봄이를 잘 키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아이를 가질 때는 교육학 전공 수업 때 들었던 '무조건적 수용과 절대적 지지'를 마음에 새기며 아이에게 '괜찮아, 잘하고 있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제일 많이 들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지난 7년간 내가 봄이에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은 '안돼, 하지 마, 엄마가 몇 번 말했니'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이제 봄이를 키웠던 지난 칠 년 같은 시간이 두 번 반복되면 봄이가 성인이 되어 내 품을 떠나는 어른이 된다. 사랑한다는 말, 내가 너를 있는 힘껏 응원한다는 말, 정말 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더 애써 많이 들려주며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침대로 돌아와 눈을 감았는데 별별 걱정이 다 들기 시작했다. 내일 취학통지서만 가져가면 되나? 혹시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거 떼가야 하는데 내일 나만 준비 안 해가는 거 아니겠지? 봄이 돌봄을 넣어야 하나? 1학기만 휴직하고 2학기에 복직하니 그게 맞겠지? 1학기라도 일찍 끝나고 엄마 손 잡고 집에 가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싶었는데... 영어학원은 언제 알아봐야 하나? 핸드폰은 언제 사주지? 이제 용돈도 줘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펼쳐졌다. 하... 막막하다. 매일같이 아기의 모든 것에 대해 검색해 보던 신생아 육아 시절로 돌아간 기분. 그러나 신생아 때는 닭고기 이유식을 먹이든 소고기 이유식을 먹이든 큰 문제가 아닐 거 같았는데 지금 처음 학교에 입학하는 내 아이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인생 전체가 어그러질 것만 같은 압박감이 들어 조금 괴롭다.

  간신히 잠들고 결국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허둥지둥 준비를 하고 같은 초등학교에 배정된 단지 내 봄이 친구들과 엄마들과 만나서 초등학교에 갔다. 이십여 년만에 초등학교 건물에 들어선다. 알록달록하고 아기자기한 학교의 첫인상이 좋았다. 맞이해 주시는 선생님들도 친절하게 맞아주셔서 마음이 편안했다. 취학통지서를 제출하고 돌봄 신청서를 받아 교문을 나섰다. 아이들을 키즈카페에 들여보내놓고서 엄마들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결국은 다 아이들 교육과 학원 이야기로 이어졌다. 봄이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유치원만 다니며 이제 막 구몬 학습지 하나 시작했는데 친구들은 이제 구몬은 떼고 국영수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단다. 비교하려는 건 아니지만 마음이 조급해지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집에 돌아왔는데 시어머니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 주말부터 우리 부부가 독감으로 고생한 터라 안부차 전화하셨다고 한다. 어머님께 이제 컨디션은 괜찮다고 말씀드리며 봄이의 초등학교 예비소집일에 다녀와 심란한 마음을 말씀드렸다. 어머님은 웃으시며 첫 아이 초등학교 입학 때가 원래 긴장되는 법이라며 막상 닥치면 다 어떻게든 해내게 되어있으니 너무 앞서 걱정 말라고 하셨다. 친정 엄마도 비슷한 말로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찬찬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그래도 내가 교사 엄마인데 내 딸 학교 생활은 문제없도록 잘 적응시켜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압박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내 딸 봄이는 지금껏 그래왔듯 이번에도 학교에서 자기 몫을 잘해나갈 것이다. 나는 그 옆에서 있어주기만 하면 된다. 초등 1학년 공부 뭐 대단하겠는가. 학교에서는 고3 우리 반 아이들 공부도 매일 옆에서 봐주는데. 봄이가 하나씩 자기만의 공부 습관과 생활 방식을 잘 만들어갈 수 있도록 나는 옆에서 함께할 뿐이다. 그 사이 나도 건강한 몸 만들고 쓰고 싶던 글 실컷 쓰면 된다. 

  내가 내 아이의 인생을 만들어간다는 마음 내려놓자. 그저 아이와 동행하며 내가 나눠줄 수 있는 것들을 나눌 뿐이다. 먼저 그 길 가본 인생 선배로서, 누구보다 내 아이를 응원하는 엄마로서, 그저 옆에서 함께할 뿐!

  이제 학부모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매년 교사로 수많은 학부모를 만나면서 내가 닮고 싶었던 학부모의 모습을 떠올리자. 아이를 믿고 지지해 주고,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앞에서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뒤에서 밀어주고, 무엇보다 아이와 많이 대화하는 그런 부모!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도종환 시 구절)' 흔들리며 꽃 피워나갈 내 아이 봄이의 학창 시절도, 내 학부모 시절도 모두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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