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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지혜 Mar 25. 2024

내 아이의 첫 학원을 알아보면서

  나는 반성한다. 그동안 동네에는 마음에 드는 학원이 없다며 다른 동네 학원까지 라이딩을 하는 엄마들을 보며 유난이라고 은근슬쩍 마음으로 핀잔주던 나를(나도 동네에 셔틀버스 오는 유치원이 없어 옆동네 셔틀버스 보내주는 유치원까지 보냈으면서). 동네에 이렇게 수 백 개의 학원이 있는데 내 아이 보낼 마땅한 학원이 없다는 맘카페 글들을 보며 까다로운 엄마라고 생각했던 나를(정말 내 아이의 수준에 맞으면서도 안전하면서도 비용이 합리적인 그런 평범한 학원이 없단 말이다...). 저녁 먹을 시간에 학원을 다니느라 상가 1층 편의점에서 대충 저녁을 때우는 아이들을 보며 저렇게 늦게까지 애들 학원을 돌린다고  마음으로 한탄했던 나를(학원 수업이 5시부터 7시까지인 수업밖에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첫째 딸 봄이가 올해 여덟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초등학교에 가는 것을 불안해하는 봄이를 위해 한 학기 육아휴직을 냈다. 2학기 때는 복직해야 하기에 천천히 내 퇴근 시간까지 학원 세팅을 해야 한다.

  초등 입학에 관련된 책을 세 권 정도 읽었다. 기본적인 생활 습관을 잘 잡아줘서 독립적이고 주도적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하라는 말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히는 게 초등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 다음이었다. 그다음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초등학생이라면 할 줄 알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알려주었다. 스스로 우유팩을 열 수 있어야 하고, 집주소와 부모 핸드폰 번호는 외우게 해야 하는 등등.


  하지만 돌봄과 학원에 대한 이야기들은 책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지인들 가운데 먼저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낸 선배 엄마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친구들 중에는 내가 제일 먼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그 지인의 범위조차도 소수였다. 어찌어찌해서 돌봄을 신청했고 다행히 당첨되었다. 돌봄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언제까지 있을 수 있는지 명확한 정보를 초등학교에서 듣지 못했지만 일단 경쟁이 치열하다니 신청부터 하고 봤다. 그동안 학교 교사의 입장으로만 살 때는 학부모들의 요구 사항이 과하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는데, 막상 학부모 입장으로 학교를 대하니 학교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졌다. 더욱 친절한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동시에 아이 초등학교를 더 너그럽게 이해해야겠다는 마음도 먹었다.

  돌봄을 신청하고 나니 영어 학원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섯 살 때부터 주위 친구들이 영어 학원 다니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말하는 봄이에게 여덟 살이 되면 보내주겠노라 약속했기 때문이다. 엄마표로 파닉스를 떼 보려고 했으나 일 년 전 당근으로 산 <스마트 파닉스> 교재를 일 년째 1단계밖에 나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나는 일하면서 엄마표 공부 시키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영어학원을 보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무작정 미뤘다. 계속 미루고 있는데 봄이 친구 엄마가 3월부터 보낼 영어학원은 2월부터 상담을 다니고 예약을 해야 보낼 수 있다며 같이 알아보자고 했다. 더는 미룰 수 없을 것 같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할 때 내 생각은 이랬다.


돈이 없지, 학원이 없냐?


     그렇다. 나는 완전 착각하고 있었다. 돈을 내는 내가 갑이고 학원이 을인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학원들에 전화를 돌렸을 때 돌아오는 답변들은 '영어 파닉스도 모르는 학생은 받을 수 없다', '대기 학생이 많아서 언제 신규 반이 오픈될지 모른다', '아이가 수준이 얼마나 되는지 먼저 레벨테스트를 통해 확인 후 등록이 가능하다'와 같은 말들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돈도 없는데 갈 수 있는 학원도 없구나.' 그제야 초등학교 입학 후에 영어 학원에 처음 보내려 했더니 갈 수 있는 학원이 없어 고생했다던 학교 선배 선생님들의 하소연들이 떠올랐다. 정신이 조금 드는 것 같았다. 지금 야무지게 알아보지 않으면 아이가 이 학원 저 학원 옮겨 다니며 고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를 켜고, 구글 시트를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조건들을 탭으로 만들었다.

'학원 이름, 위치, 수업 요일, 비용, 셔틀 가능 여부 및 셔틀 이용 비용, 수업 형태(원어민 교사 여부), 수업 최대 인원, 기타 참고 사항'


  1차적으로는 맘카페에 '초1 영어 학원'을 검색해서 입소문이 난 영어학원들을 먼저 적었다. 그리고 동네 아는 엄마들에게 연락을 해서 추천을 받았다. 순서대로 학원에 전화를 해서 위의 조건들을 확인했다. 맞벌이기 때문에 셔틀은 필수 요소였다. 그런데 막상 셔틀이 가능한 학원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세 곳을 후보로 두고 그중 처음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을 위한 신규반이 있다는 영어 학원 두 곳을 아이와 함께 방문했다.

  첫 번째 영어학원은 아이가 체험수업을 즐거워하고, 원어민 선생님이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듯했다. 그리고 원장님이 직접 가르치며 동네에서 입소문이 나서 빠르게 인원이 늘고 있는 학원이었다. 그러나 너무 큰 상가에 있어 초1 아이가 다니기에 다소 위험해 보였고, 너무 많은 학생들이 관리가 안 되는 듯 정신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예약 전화를 두 번이나 확인했는데 당일 체험학습 예약을 모르고 있었다). 아이가 학원에 가지 않고 중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았다.

  두 번째 영어학원은 경력이 많은 원장님과 실장님이 야무지게 운영하는 안정적인 느낌의 학원이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 앞 작은 상가에 있어서 치이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이곳은 원어민이 없어 영어를 배우다가도 원어민 앞에서는 낯설어 얼어붙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월수금반 자리가 없어 화목반에 들어가야 했다. 무엇보다 제일 걱정인 부분은 버스 보조 선생님이 없어 아이 혼자 차에서 내려 학원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둘 다 이제 학교에 처음 입학하는 딸을 보내기에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딸 친구 엄마도 같은 생각이었다. 결국 처음 영어를 배우는 아이들은 받아주기 어렵다는 대형어학원에 레벨테스트를 신청하기로 했다. 문득 전문직 부부인 내 친구가 얼마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 회사에 전문직 부부들이 결국 다 대치동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맞벌이 부부는 퇴근 전까지 학원을 통해 자녀 돌봄을 할 수밖에 없기에 집에서 걷는 거리에 학원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영어학원 하나 등록하는데도 이렇게 진을 빼는데 아이 둘 대입까지 이렇게 애쓸 생각을 하니 벌써 지친다. 이제 막 유치원을 졸업한 딸아이라서 지금 더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내가 걱정과 불안이 많은 엄마인 걸까. 나 자신의 일이 아닌 내 자식의 일에 어디까지 노력해야 하는 걸까.

  내가 경험해 봐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예비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고서야 다시 한번 절실히 느낀다. 그동안 우리 반 고3 학생들 학부모님들을 쉽게 내 마음대로 판단했는데 19년 동안 자녀를 키워낸 그분들이 새삼 대단하고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밤이다. 역시 딸 봄이 와 아들 가을이는 나를 가장 겸손하게 만드는 존재들이다.


  결과적으로 두 번째 방문했던 영어학원에서 적극적으로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원 버스에서 내려 학원까지 오도록 동반해 주신다고 연락을 주셔서 그곳으로 등록을 했다. 이제 한 달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엄마와 공부할 때보다 더 의욕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는 봄이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앞으로 봄이를 키우며 얼마나 많은 선택들을 하게 될까. 그 모든 순간 내 선택들이 최고의 선택은 아니어도 아이를 생각하는 지혜와 사랑이 담겨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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