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 거리, 성토마스 교회, 바흐 박물관
라이프치히_1
인스타그램이 이상하다.
계속되는 로그인 오류. 실시간으로 막히는 보조 로그인 방법들. 확신이 서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해킹을 당한 것 같았다. 여행 이후 오픈 와이파이를 계속 사용하는 게 계속 찜찜했는데 결국 걱정하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불안함이 밀려왔다. 개인정보, 사진,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누가 대체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아... 집에 가고 싶다...''
불안은 금세 짜증이 되었다.
사실 굉장한 집순이인 나는 여행을 떠나는 날부터 집에 돌아갈 날을 기다렸다. 엄마 못지않은 집순이 2세인 딸도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집에 가고 싶다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으려 서로가 참고 있던 여행 5일 차에, 첫 번째 위기를 만난 것이다.
망연자실했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가만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리저리 검색하며 공부를 한 후 보안 어플을 깔았다. 유료버전까지 결제하고 나니 겨우 한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엄마, 그런데 우리 나가야 하지 않을까?”
고요한 폭풍이 한바탕 지나갈 동안 옆에서 가만히 나를 기다리던 아이가 말했다. 맘 같아선 침대에 누워 저녁을 맞이하고 싶었다. 어릴 때 보았던 쥐잡이 끈끈이처럼 불안함이 나를 침대에 붙여 놓은 것만 같았다.
'그래, 나가야지. 다 털려도 어쩌겠니. 지금은 독일, 라이프치히. 오랜만에 날씨도 좋은데. 나가야지! 그렇고 말고!'
맘을 세게 다잡고, 최대한 잽싸게 엉덩이를 들고일어나 옷을 입었다. 두꺼운 점퍼, 모자, 목도리, 장갑, 가방.
알 유 레디?
예스. 아임 레디!
우린 씩씩하게 방문을 열고 다시 길 위로 나왔다.
점심때가 훌쩍 지나 배가 고팠다. 숙소에서 얼마 걷지 않아 부어스트를 파는 작은 노점이 눈에 들어왔다. 현지인들이 제법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분명히 맛있는 곳일 것 같았다.
"엄마, 저것 봐. 그랜드 피아노가 길 위에 있네."
아이가 말했다. 내가 후다닥 줄을 서는 사이 아이는 몇 걸음 더 걸어 어느 버스커 앞에 멈춰 섰다.
거리 한복판, 누군가의 오래된 꿈처럼 하얀 그랜드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하얀 모자 아래로 갈색 머리칼이 보이는 숙녀는 건반을 연주하고 있었고, 그 곁엔 동년배의 신사가 트럼펫을 불고 있었다.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두 사람의 연주는 한치의 떨림 없이 흘러나왔다. 건반과 금관이 숨을 쉬듯 자연스레 연주를 주고받았고, 그 선율은 막 구운 부어스트의 짭짤한 향기와 섞여 거리를 부드럽게 감쌌다.
토요일,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 한가운데서 그들의 음악은 거리 위에 무대를 만들어냈다. 스치는 이들도, 줄을 서 있는 사람들도 모두 잠시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피아노와 트럼펫, 숙녀와 신사, 고요와 북적임, 뜨거운 소시지와 차가운 바람. 음악은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것들을 뜻밖에 어울리는 것들로 만들어냈다.
여섯 살, 피아노를 처음 접한 이후로 아이는 슬플 때도 기쁠 때도 늘 피아노 앞에 앉았다. 여행 중 가장 힘든 일이 피아노를 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을 만큼 피아노를 좋아하는 아이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버스커를 뒤로 하고 좀 더 걷다가 우리는 성 토마스 교회를 보러 갔다. 교회 앞에는 또 다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무슨 줄인 지도 모르고 일단 줄에 합류했다. 긴 줄 옆에서 아담한 체구의 할아버지가 피리를 불고 있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맑고 또렷하던지 할아버지의 모습이 꼭 동화 속 요정 같았다.
피리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교회로 들어갔다. 특이하게 입장료를 3유로씩 받았다. 교회는 대부분 입장료를 받지 않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앞 뒤 사람에 밀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일단 빈자리를 찾아 앉아서 고개를 두 리번 거고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곧 어디선가 천상의 소리 같은 합창이 울려 퍼졌다. 무대도 없었고 성가대도 보이지 않았다. 노래는 마치 천장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넓은 예배당 안을 퍼져나갔다.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 중 가장 맑을 것 같은 목소리는 한 사람의 목소리 같기도, 여럿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겹겹이 쌓인 화음을 들으니 잘 모르긴 하지만 이게 보통 합창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았었다.
아이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엄마, 이거 지금 '예배'인가 봐. 이거 봐봐.”
아이는 번역해서 보여주는 종이는 예배 순서지였다. 손에 쥔 다른 종이를 다시 번역 어플로 들여다보았다.
성 토마스 합창단(Thomanerchor)
1212년에 창단된 독일 라이프치히의 소년 합창단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합창단 중 하나이다. 1723년부터 1750년까지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이 성가대와 교회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800년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합창단은 교회를 중심으로 두고, 세계 곳곳에서 공연을 한다. 중세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합창곡을 부르며 특히 바흐 작품을 뛰어나게 해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합창은 계속되고 중간중간 사회자의 멘트가 곁들여졌다. 우리는 웃지 못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웃음으로 보아선 아마 꽤 위트가 있는 사회자인 듯했다. 목사님의 짧은 설교가 있고 다시 합창단의 노랫소리가 예배당에 가득 퍼져 나갔다. 오랜만에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무대도, 조명도, 공연이라는 이름도 없이 800년간 이곳에서 불려졌을 성가. 그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신도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을 그 맑은 목소리가 그 시간, 우리의 지친 마음도 잔잔하게 위로해 주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내가 여기 있단다. 네 옆에, 네 뒤에, 네 앞에, 그 어디든지!'
신이 내 어깨를 톡톡 치면서 말하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서 고개를 숙이고 혼자 씩 웃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한국의 다이소처럼 생긴 잡화점이 눈에 띄었다. 우린 소화도 시키고, 아이쇼핑도 할 겸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갑자기 내 손을 당겨 조용히 한 곳으로 데려갔다.
“엄마엄마, 이것 봐봐.”
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그 자리엔 결혼 케이크 위를 장식하는 미니 피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턱시도를 입은 신랑, 그리고 그 곁에 신부와 신부, 신랑과 신랑도 나란히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우와, 역시 유럽 쩐다. 친구들한테 보내줘야지.”
아이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감탄하더니 사진을 찍어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올렸다.
나도 직접 그런 피겨를 본 일이 처음이라 신기했다. 아직 한국에선 찾기 힘든 피겨지만, 아이와 친구들은 그 모습을 ‘쩐다’라고 말했다. 그 모습에 한국도 머지않아 이런 피겨가 아무렇지 않아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쁜 짓'이라 배웠던 일이 아이에겐 '쩌는 일'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뭐라 딱 잘라 정리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지만, 세상의 다양함을 무겁지 않게 받아들이는 아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며 뜨거운 물줄기 아래에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뒷목에 뜨끈한 기운이 감돌자 뒤통수부터 기분 좋은 소름이 온몸에 퍼졌다. 그 순간, 낮에 들었던 성토마스 합창단의 찬양소리가 생각났다.
참 신기한 하루였다. 해킹 사건으로 불안함에 휩싸여 하루를 시작할 때, 그 하루 중 뜻밖의 선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신은 언제나 엉뚱하다. 장난꾸러기인지, 아니면 기막힌 각본가인지....
누구에게도 ‘완벽한 하루’를 허락하거나 '완전히 망한 하루'를 떠안기는 법이 없다. 그는 엉망으로 시작해 버린 하루 속에도 군침 도는 핫도그의 위트나, 길 위에 하얀 그랜드 피아노의 낭만, 예상치 못한 800년 묵은 성가의 감동 같은 걸 끼워 넣는 법을 안다.
'뭐 이따위인가' 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발을 질질 끌고 걷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곳에 가 있다. 위트가 있고, 낭만이 있고, 땡큐도 있는 나를 위한 그 자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