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 하우스, 라이프치히 전망대, 파우스트의 술집
라이프치히_2
"엄마, 일어나. 얼른."
아이가 먼저 나를 깨웠다. 보통은 내가 더 일찍 일어났지만 이날은 아이가 먼저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조금 더 자고 싶은 마음을 떨치고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아이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빨랐다. 길 안내도 척척 하면서 내게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콘서트 시간 다 됐단 말이야."
맨델스존 하우스(박물관)에서 일요일 오전마다 하우스 콘서트가 열리는데 아이는 그 콘서트를 꼭 보고 싶어 했다. 열 다섯 사춘기 아이에게 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싶어 맺히는 콧물을 훌쩍이며 나도 바삐 발을 움직였다.
다행히 콘서트 시간에 늦지 않고 도착했다. 티켓을 사서 올라간 이층의 작은 홀엔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우아하고 늠름한 원목 그랜드 피아노가 서 있었다. 우아한 회색 천이 씌워진 의자에 어림잡아 서른 명 정도 되는 관객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입구 곁에 마치 우릴 기다린 듯 비어있던 딱 두 개의 여분 좌석이 비어 있었다.
곧이어 캐주얼한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훤칠한 남성 연주자가 한 손에 비올라를 들고 피아노 반주자와 함께 들어왔다. 몇 마디의 인사를 건넨 후 첫 곡이 시작되었다.
'비올라 소리가 이렇게 좋았었나?'
일순간 우리는 비올라 연주에 빠져들었다. 바이올린보다는 무겁고 첼로보다는 가벼운, 우아하지만 깊이 있는 힘을 가진 비올라 소리가 홀을 가득 채웠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스스로 당황스러우리 만큼 그 소리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음 하나하나가 내 무의식 속 어딘가를 건드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일상을 살아내면서는 차마 가 닿을 수 없었던 감정의 구석, 오래 묵혀둔 생각들, 말없이 지난 후 잊어버린 시간들. 그 모든 것들이 비올라 소리에 진동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꽃봉오리가 터지듯 마음에 피어올랐다.
‘나는 연구자가 되었어야 했구나. 정말 공부를 하고 싶었어….’
공부를 더 했다면, 연구자가 되어 살았다면 내 본연의 모습을 더 잘 살려서 살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가슴속에 떠올랐다. 왜 이런 생각이 비올라 연주를 듣는 지금 떠오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제라도 공부를 해야 할까...?'
매년 하는 고민이긴 했지만 다시 한번 이 화두가 내 마음속 연못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연주를 듣는 내내 마음이 일렁거렸다. 이십 년이 다 되어가는 그 화두가 쉽게 정리될 리 없었다. 어느새 연주가 끝이 났다.
콘서트 홀에서 나온 우리는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벽에 걸린 그림들과 악보, 작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맨델스존의 선율들이 볼거리, 들을 거리를 풍성히 제공해 주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는 구석구석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아이 뒤를 따라 구경을 하면서도 여전히 내 마음은 일렁거리고 있었다.
스물넷에 유학을 앞두고 결혼을 했고 한 달 만에 아이가 생겨 유학을 미루었다. 아이만 낳으면 이전이랑 다시 똑같아질 줄 알았지만 아이가 내게 가져 온 세상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그 뒤를 이어 두 아이를 더 낳았고, 공부와는 점점 더 멀어졌다.
내게 엄마라는 세상을 열어주었던 그 아이는 어느덧 열다섯이 되어 처음 보는 세상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탐험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뒷모습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작고 말랑했던 손이 크고 단단해 진 만큼 아이는 이제 내가 보여주는 세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모든 질문을 엄마에게 던지던 꼬마 아이는 이제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갈 터였다. 이젠 내 답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아이와 박물관에서 나와 햄버거를 먹고 오후엔 라이프치히 대학교로 향했다.
1409년에 세워진,노벨상 수상자를 6명이나 배출했고, 괴테, 메르켈 등 유명한 졸업생이 많은 명문 학교. 대학 건물은 외관 공사가 한창이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전통적인 모습과 현대적이 기술이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는 라이프치히 대학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기로 했다. 프랑크프루트돔 첨탑에 걸어 올라가며 고생을 했던 우리는 엘리베이터부터 찾았다. 다행히 이곳은 전망대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자 흐리던 하늘에 거짓말처럼 해가 나오기 시작했다.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라이프치히 전체 풍경이 막힘 없이 펼쳐졌다. 알록달록한 지붕들, 중간중간에 있는 푸른 공원들, 그 사이사이 보이는 삐죽 솟은 첨탑들. 철로 위로 기차가 천천히 움직이고, 수평선을 향해 내려가고 있는 해의 부드러운 햇살이 도시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시청사, 교회, 각종 관공서와 오페라 하우스 같은 오래된 건물들이 도심의 여기저기에서 에서 자신의 존재를 말없이 드러냈다. 건축물, 길, 공원, 음악, 문화, 역사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현재가 이렇게도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만큼 라이프치히는 그 도시만의 매력이 있었다.
아이와 나란히 서서 한참 동안 풍경을 바라보았다.
“참, 이쁘다 그지?”
“응. 참 이쁘네. 그런데 너무 추워."
아무리 예쁜 풍경이라 해도 매서운 겨울바람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는 서둘러 사진을 찍고 기념 코인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전망대에서 내려왔다.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에 나오는 술집이 라이프 치히에 있다. 그 앞에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동상이 있는데 파우스트의 신발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 때문에 파우스트의 한쪽 신발이 반질반질 광이 났다.
동상을 지나 숙소 근처까지 걸어왔을 때, 하늘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하늘 위로 천천히 날아가는 투명한 구슬들, 비눗방울이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광장 한가운데 모여있는 꽤 많은 사람들과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어린아이들이 보였다.
비눗방울을 잡으려고 팔을 쭉 뻗은 아이, 폴짝폴짝 뛰며 방울을 터트려보려 애쓰는 아이, 아빠의 어깨 위에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아이, 지금은 가기 싫다고 유모차 안에서 떼를 쓰는 아이까지. 그 가운데는 기타 연주를 틀어놓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비눗방울을 날리고 있는 버스커가 있었다. 음악, 어스름한 분위기, 거리의 조명, 하나같이 웃고 있는 사람들. 그 광경은 흡사 천국을 작게 축소시켜 놓은 것 같았다. 나도 함박웃음을 띤 채 그 완벽한 광경 속에 흐르는 음악에 몸을 흔들었다. 그러다 문득 낮에 떠올랐던 가슴 속 파장이 다시 일렁였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아이와 가정을 최우선에 놓기 위해 포기했던 내가 가고 싶었던 길. 나는 왜 지금의 이 길을 선택했을까?
비눗방울 속을 뛰어다니는 천사 같은 아이들은 보고 있자니 그 이유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엄마, 사랑해요!'
내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하던 셀수도 없는 아이들의 사랑 고백, 아이들의 티 없는 그 웃음을 지켜주고 싶었다. 결혼 후, 아무것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릴 때도 뿌리까지 흔들리지 않았던 건 천사처럼 웃는 아이들 덕분이었다.
'음.... 그럼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
그 물음 앞에서, 나는 조용히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직업도 없고, 세상에 남길 업적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었지만 20대의 나와 지금의 나를 나란히 세워본다면 나는 조금 더 깊어졌고, 단단해졌고, 많이 낮아졌다고 말할 수 있었다.
찰나의 순간, 지난 근심의 역사가 주르륵, 필름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잠 못 이루며 지새웠던 수많은 밤들, 선택의 갈림길에서 머뭇거리던 순간들, 아이들을 돌보며 힘에 겨워 울던 시간들까지. 그 모든 결핍과 근심들이 나를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주었음을 부인 할 수 없었다.
‘손해를 본 것 같아?’
스스로 물었다. 그러곤 조용히 혼자 고개를 저었다.
광장에 울려 퍼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반짝이는 작은 보석알처럼 공중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너도 가서 뛰어. 너 비눗방울 엄청 좋아했잖아."
이제 더 이상 비눗방울을 쫓아 뛰지 않는 내 아이의 주머니 속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아이가 씩 웃었다.
비눗방울 하나가 눈앞에서 터졌다. 내가 붙잡았던 수많은 근심들처럼.
주머니 속에 맞잡고 있는 아이의 손이 따뜻해서,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