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길을 나섰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이 새벽 1시에 출발하지만, 남아 있는 가족들의 다음 날 일정을 고려해 조금 일찍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빠빠이! 엄마, 잘 갔다 와!”
아홉 살 막내아들이 건네는 인사가 경쾌했다.
열셋, 아홉, 그리고 마흔셋. 둘째와 셋째, 남편까지 세 식구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버스 터미널로 들어섰다.
아이의 새 캐리어 바퀴가 버스터미널 바닥을 유연하게 굴러갔다.
새로 사지 않은 나의 캐리어 바퀴는 조금 뻣뻣하게 굴러갔다.
한 달이라니. 여행치고는 꽤 긴 시간이었다. 독일 한 겨울 매서움을 맛보고 올 터였다. 이제 겨우 겨울의 초입에 들어선 한국에서 과도하게 따뜻한 옷을 입고 출발하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열다섯 아이는 중학교 1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치른 뒤, 학교를 그만둔 상태였다. 서른아홉 나는 서른이 넘어서야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여전히 그 문 앞을 서성이고 있는 중이였다.
늦은 밤, 지방의 버스터미널은 텅 비어 있었다. 설렘과 불안함이 뒤섞인 오묘한 공기가 나란히 앉아있는 둘 주변을 살포시 누르고 있었다. 기분 좋은 무거움이었다.
조용히 둘만 앉아 있으니 자연스레 서연이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하던 때가 떠올랐다.
홈스쿨링.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아이가 원한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난감했다. 고민을 하고, 주변에 조언을 구하던 몇 개월간도 이런 공기가 둘을 감싸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을까? 이게 과연 최선일까?’
숱하게 떠오르는 같은 질문의 반복. 그 어디에도 답이 없다는 것을 미영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발자국을 남긴 길만이 답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에 옆자리에 앉은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아이는 곧장 잠에 들었다. 이제 겨우 비행기를 탔을 뿐이었지만, 집을 나선 지는 벌써 12시간이 지나 있었다.
불편한 좌석에 몸을 기댄 채 잠든 서연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는 너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책임질 수 없을 아이의 미래에 낯선 바람을 불어넣는 이 여정이 옳은지. 열다섯의 딸에게 엄마로서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 모험이 맞는 건지.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던 문제를 다시 떠올려 보았다. 여전히 답은 저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장거리 비행은 힘들어. 좋은 목베개가 필요해."
비행기에 오르기 전 아이에게 좋은 목베개 하나를 사 주었다.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가 최선이라 생각하며 눈을 붙였다.
한 번의 경유를 포함한 15시간의 여행 끝에 독일에 도착했다. 오후 5시. 해가 빨리 진다는 소문처럼, 독일 하늘은 벌써 어스름하게 저물고 있었다.
짐을 찾은 둘은 인터넷으로 수십 번 학습한 길을 따라서 공항 지하철을 타러 갔다. 가는 길에 고장 난 자판기에 아까운 4유로를 날렸지만, 다행히 지하철은 문제없이 탈 수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독일 풍경에 설렘과 안도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삶은 결코 학습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되새겨야만 했던지, 둘은 얼마 가지 않아 길을 일었다.
잘 터지지 않는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지하철역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다. 트램 환승 정류장으로 가야 하는데 게이트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하에서는 구글 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일단 지상으로 나가야 했다.
"헉...... 헉헉......"
한 달 치의 짐이 담긴 28인치 캐리어를 두 팔로 들고 낑낑대며 긴 계단을 올라가는 둘의 숨소리가 텅 빈 지하 공간에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다. 마침내 올라온 지상에서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컴컴한 주택가 골목뿐이었다. 순간 무서웠다. 다시 내려가서 다른 게이트를 찾을까 잠시 망설였지만 올라온 계단을 내려다보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여기선 인터넷이 잘 터졌다. 낯선 외국의 밤거리였지만, 용기를 내야 했다.
“괜찮아. 여기는 주택가잖아. 독일은 한국이랑 치안이 거의 비슷하대. 그러니까 괜찮을 거야.”
분명 무섭다는 생각이 뒷골을 스치고 있는데, 입에선 전혀 다른 말이 나오고 있었다. 오래된 습관 같은 것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
아이의 말에 방향을 가리켰다.
"드르륵."
아이가 묵묵히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뒤를 따르는 나는 조금 전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자신의 말 때문에 생각이 많아졌다.
'너무 무섭다. 나도 무섭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어 본 지 얼마나 되었을까?
스물다섯에 첫 아이를 낳았다. 엄마가 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던 나는 아이가 자라는 모든 순간이 낯설기만 했다.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어깨너머로도 한번 본 적 없었던 미숙한 엄마는 아이가 뱃속에 찾아온 이후 매일이 두렵고 힘들었다. 그러나 설렘과 벅참은 그와는 별게의 감정이었다. 낯선 존재에게 처음으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겠다'는 감정을 느끼며, 두렵고 힘들어도 이 아이에게만큼은 말도 안 되게 튼튼하고 안전한 집이 되어 주고 싶었다.
"드륵, 드르르륵."
울퉁불퉁한 돌길 위를 굴러가는 아의의 캐리어 바퀴 소리가 어두운 골목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왠지 내 어깨를 도닥여 주는 것만 같았다.
아이의 뒷모습에 미영은 배꼽 아래에서 뜨끈하고 몰캉몰캉한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기 좀 무섭지만 너무 예쁘지 않니? 가로등이며 낙엽이며. 유럽은 유럽이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프랑크푸르트의 밤 골목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비가 내렸던지, 골목 곳곳에 떨어진 낙엽들이 가로등 불빛 아래서 촉촉하게 반짝였다.
“그러게. 춥고, 어두운데 왜 이게 예쁘지? 가로등이 따뜻한가?”
아이도 잠시 멈춰 서서 길을 바라보았다.
막막하고 두려웠지만, 또 충분히 아름다웠다.
아이가 찾아온 뒤, 나의 모든 날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