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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y 14. 2020

왜 사랑하지 못할까, 나는

엄마가 아닌 아빠의 아내도, 아빠의 아내가 아닌 나의 엄마도

시골 외가에 와 하루 종일 신나게 바깥을 뛰놀던 아이가 불쑥 들어오더니 들꽃 한 줌을 슬쩍 건넨다. 친정에 왔으나 자연스레 마음을 놓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던 나는 아이가 선물한 꽃 한 줌을 받아 들고 그제야 방 한구석에 가만히 앉을 수 있었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아이가 저 멀리서 머뭇거린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손을 뒤로 감춘다. 

“뒤에 그거 뭐야?"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쭈뼛거린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몇 발자국 다가오더니,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바닥에 던져놓고 뛰쳐나갔다. 



아이가 건네지 못한 들꽃 한 줌


아이가 떠난 뒤 바닥에는 들꽃 한 줌이 뒹굴고 있었다. 그 한 줌 꽃의 주인은 내가 아니란 걸 안다. 아이는 할머니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다 내 눈에 띄자,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꽃을 뒤로 감춘 것이다. 한 줌 들꽃마저 맘 편히 전하지 못하고 뛰쳐나간 아이. 


아이는 더 이상 “왜 외할머니가 두 개야?”하고 묻지 않는다. 이제는 묻지 않아도 아는 것이다. 바닥에 나뒹구는 들꽃 한 줌을 집어 드는데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하다.
  

겨우 일곱 살 된 아이는 엄마의 엄마가 아닌 할머니도 사랑할 줄 아는데.

왜 사랑하지 못할까, 나는. 

엄마가 아닌 아빠의 아내도, 아빠의 아내가 아닌 나의 엄마도. 

여전히 아빠 딸인 나 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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