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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집안일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100일 챌린지_Day 22

by 윤소희

나는 평생 집안일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특히 부엌은 나와 가장 먼 세계였다. 만 며느리로 시집살이를 혹독하게 겪었던 엄마는 늘 내 손을 막았다.

배우면 꼭 써먹게 된다. 절대 배우지 마라.


엄마의 예언은 적중했다. 결혼 후에도 부엌에서 내가 맡은 일은 간단한 설거지와 시어머니 음식을 맛있게 먹으며 감탄하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중국에서 산 긴 세월 동안 값싼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집안일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졌다.


2.png 내가 ‘허드렛일’이라 불렀던 것들의 얼굴이 다시 보였다


며칠 전, 도우미가 어머니 병환으로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며 일을 그만두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수라장이 되었겠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고요했다. 나는 세탁기를 돌리고, 마른빨래를 개어 옷장에 넣었다. 싱크대를 닦고, 방마다 모아진 쓰레기를 들고 여러 번 오갔다. 칼질은 여전히 서툴렀지만 굵직하게 썬 채소 위에 고기를 올려 양념했고, 된장국도 끓였다. 뜻밖에도, 그 모든 과정 속에서 묘한 만족이 차올랐다.


그때 문득, 내가 ‘허드렛일’이라 불렀던 것들의 얼굴이 다시 보였다. 허름하다는 수식어는 애초에 누군가의 평가였다. 가족의 입에 들어갈 음식을 만들고, 그들이 입을 옷을 정리하는 일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일보다 정말 하찮은가. 나는 세상이 매겨준 점수 말고, 내 기준으로 가치를 다시 매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글쓰기와 집안일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빨래를 개는 반복적인 손동작, 설거지할 때의 물소리, 쓰레기를 버리며 오가는 발걸음. 이는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고쳐 쓰는 과정과 닮아 있었다. 둘 다 결과는 늘 사라진다. 깨끗이 치운 부엌은 곧 다시 어질러지고, 고쳐 쓴 문장도 다시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바로 그 사라짐을 견디며 반복할 때, 비로소 나만의 단단한 리듬이 생겨난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3.png 하찮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이 삶을 떠받친다


젊었을 때는 이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더 반짝이는 것을 손에 넣고 싶었으니까. 이제야 조금씩 보인다. 하찮고 무의미해 보이는 일들이 삶을 떠받친다. 글쓰기 역시 특별한 영감의 순간에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루함과 반복, 끝없는 사소함을 견디는 힘 위에 쌓인다.


글쓰기야말로 진정한 허드렛일이다.

하찮고 무의미함을 애정하며 쌓아 올린 것만이 결국 내 것이 된다.




WechatIMG9838.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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