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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l 29. 2020

공포는 그렇게 잉태되었다

딸을 험한 세상에서 지켜보겠다는 아빠의 사랑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6학년 때였는지 중학교 1, 2학년 때였는지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저녁의 충격만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아빠가 딸 셋 중 큰딸인 나만 불러 방 안으로 데리고 갔다.


학교 다닐 때, 이걸 꼭 갖고 다녀라.


아빠가 조심스레 건넨 물건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총처럼 시커먼 것이었지만 기역자가 아니라 잡으면 한 손으로 두툼하게 잡힐 네모난 상자 모양. 단지 한쪽 끝에 뾰족한 못 같은 게 두 개 솟아 있었다. 신기한 새 장난감을 받은 듯 두 손에 그것을 넣고 이리저리 만져 보았다.

조심해야 돼. 아무 때나 누르면 안 돼.

그제야 버튼 같은 게 보인다. 물건을 얼른 내 손에서 뺏은 아빠는 조심스레 한 손으로 그것을 들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물건의 버튼을 꾹 눌렀다.


실제 내가 받았던 건 조금 더 투박한 모습이었던 듯_사진 출처 네이버 검색


순간 못처럼 보였던 뾰족한 두 금속 사이로 번쩍하는 빛이 쏟아졌다. 빛과 함께 모든 걸 삼키고, 태우고, 녹여낼 듯한 끔찍한 소리가 났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항상 가방에 지니고 있으라고 했지만, 도저히 그걸 건네받을 수 없었다. 온몸이 덜덜 떨리도록 무서웠다.

그 후 그건 늘 내 책가방 주머니 안에 들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들어있는 주머니의 지퍼조차 열지 못했다. 그 주머니를 만지기는커녕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못했다. 그게 절실히 필요한 급박한 순간이 왔어도 아마 그걸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딸을 셋이나 둔 아빠가 오랜 고민 끝에 사 온 물건. 큰딸이 이제 달거리를 시작해 제법 처녀티가 나니, 산부인과 의사는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산부인과라는 곳이 매일 축복 속에서 아기들이 태어나는 곳만은 아니란 걸 그때는 몰랐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찾아오는 환자들 중에 내 또래의 어린 여자애들이 있었다는 것도. 어린 환자들을 접할 때마다 아빠는 걱정을 넘어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전기충격기를 큰딸에게 건네주고 조금은 마음이 놓였을까? 아빠의 두려움이 조금 가셨을지 모르는 그 순간, 두려움과 공포는 고스란히 내게 전가되었다. 어렸던 나는 내가 성폭력이나 강간 등 무시무시한 폭력의 잠재적 피해자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전기충격기에서 충격적인 빛과 소리가 터져 나오던 그 순간, 그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겁 없이 흥얼거리며 걸어 다니던 등하굣길이 무서운 길이 되었다. 세상의 모든 남자가 잠재적 가해자 또는 범죄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30년도 더 지난 일이고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아직도 해가 지면 혼자 바깥을 다니지 못한다. 어쩌다 그래야 할 때가 오면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며 쏜살같이 집을 향해 달려온다.


어둠에 예민하다. 어둠이 시작되면 모든 생활을 중단하고 침대로 도망간다. 전기자극에 예민하다. 한의원에서 침 맞을 때 전기자극을 주는 전침치료나,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할 때 전기자극을 주는 치료를 받지 못한다. 스킨십에 예민하다. 사람이 많은 거리, 만원 전철이나 버스 등에서 어쩔 수 없이 몸을 부대껴야 하는 상황도 잘 견디지 못한다. 남자에 예민하다. 상대는 나를 전혀 여자로 보지 않을 상황에서도 남자와 단둘이 있는 걸 견디지 못한다. 


이 모든 공포는 전기충격기 버튼을 누른 그 순간 시작되었다. 세상의 늑대들로부터 딸을 지켜내고 싶었던 아빠의 사랑에서부터. 사랑하는 딸을 험한 세상에서 지켜보겠다는 마음으로 전기충격기를 선물했겠지만, 딸이 건네받은 건 충격과 공포였다. 정말 공포가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걸까?



30여 년이 지난 후, 공포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가:

https://brunch.co.kr/@yoonsohee0316/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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