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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pr 25. 2020

강냉이, 엄마 뱃속에서 나를 키워낸

하나씩 입에 넣고 꼭꼭 삼키는 그리움

엄마 뱃속에서 나를 키워낸 태교음식은 강냉이었다. 그래서인지 길을 가다 뻥튀기 자루를 수북이 무져놓고 파는 가게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이런 것도 튀겨질까’ 하며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기계에 밀어 넣었는지 뻥튀기는 그 종류가 생각보다 많다. 쌀이나 밀쌀을 튀긴 건 알갱이가 너무 작아서 한 주먹씩 입에 털어 넣는데, 그러다 보면 자꾸 흘리게 되어 은근히 번거롭다. 가래떡이나 인절미 등을 튀긴 건 한 입에 쏙 들어가지 않아 조금씩 잘라먹다 보면 괜스레 숨이 차다. 그래서인지 한 개씩 집어 한입에 쏙 넣을 수 있는 강냉이를 가장 좋아한다. 앉은자리에서 먹기 시작하면, 보다 못한 누군가가 곁에서 봉지를 낚아채며 말려주던가, 빈 봉지가 가루만 남기고 속을 드러내야 겨우 멈출 수 있다. 

 

엄마와 마주 앉아 강냉이를 쉬지 않고 집어먹다 보면, 엄마는 어느새 옛이야기를 시작한다. 군 복무하던 아빠를 따라 철원에 살던 신혼 시절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미 수도 없이 들었지만 마치 처음 듣는 듯 귀를 기울인다. 

추워도 너무 추웠지.” 

방안에 자리끼를 떠놓으면 꽁꽁 얼어버렸다고 말할 때 엄마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떤 기억은 기억의 내용보다 추위나 맛, 냄새 같은 감각이 더 선명하게 남는 모양이다. 그 추운 겨울 아빠가 돌아오지 않는 밤이면 엄마는 커다란 강냉이 자루를 몇 개씩 사다 두고 꺼내 먹었다고 한다. 마치 남겨진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하나씩 입에 넣고 씹어 마침내 모두 집어삼켜버리고 말겠다는 듯이. 까슬한 강냉이를 수도 없이 집어먹었으니 입안은 텁텁하고 심지어 군데군데 까지기도 했을 것이다. 턱관절은 또 얼마나 아팠을까.

 

별 맛도 없고 건강에 도움도 되지 않는 강냉이를 씹으며 그리움에 대해 생각한다. 몸이 꽁꽁 어는 추운 겨울밤 태동이 느껴지면 가만히 배를 어루만지며 남편을 기다렸을 엄마의 마음을. 그러다 엄마 사랑 이야기의 슬픈 결말이 떠올라 괜히 강냉이 봉지를 내던졌다. 물기가 싹 날아간 채 부풀어 오른 후 결국 바스러지고 마는 뻥튀기는 긴긴 시간을 죽이는 데는 효용이 있었겠지만, 사랑의 물기를 촉촉이 간직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 듯하다. 그때 엄마가 튀겨낸 강냉이 대신 삶은 옥수수를 먹었다면 이야기의 결말이 달라졌을까. 아빠가 엄마를 떠나는 대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결말이 바뀔 수 있었을까. 억지라는 걸 알면서도 화풀이하듯 내동댕이쳤던 강냉이 봉지를 슬그머니 다시 끌어당겼다. 그래도 엄마가 그리움으로 꼭꼭 씹어 삼킨 강냉이들이 뱃속에서 나를 키워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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