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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평리이평온 Oct 04. 2022

2-17. 한밤의 해루질

불타버린 마흔중년의 제주섬 치유기

17. 한밤의 해루질       


   

우리가 매주일 예배하던 온평교회는 온평마을 큰 도로에서 한 켠 벗어난 소로에 나직이 앉아 있었다. 일요일 11시가 되면 그리 많지 않은 성도들이 모여 무반주로 찬송을 하고 목사님의 설교로 예배를 드렸다. 예배 후에는 성도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다리를 접었다 펴는 사각상을 나란히 펴고 밥과 국, 몇 개의 반찬을 차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밥을 먹었다. 겨울철 어느 날, 매콤하게 맛있는 문어볶음이 밥상에 올라왔다. 온평리에는 ‘순덕이네’라는 문어볶음 잘하는 도민 맛집이 있는데, 이 집 못지않게 매콤하고 쫄깃해서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목사님. 오늘 밥 맛있게 먹었어요. 문어가 귀하고 비쌀텐데, 준비하시느라 수고하셨겠어요.”     


맛있게 먹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교회 형편이 어려운 걸 빤히 아는데, 문어는 어떻게 구했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집사님. 문어는 직접 잡은 것이에요. 바닷물 빠지는 밤에 나가면 문어를 잡을 수 있어요. 해루질 같이 나가볼래요?”     


목사님의 뜻밖의 제안에 솔깃해졌다. 낚시를 좋아하는 지인들은 멀리 가지 않고도 마음껏 낚싯대를 드리울 수 있다고 해서 나의 제주살이를 부러워했지만, 낚시와 나는 맞지 않았다. 여러 채비를 갖추는 것도 번거로웠고, 미끼를 끼우고 밑밥을 뿌리면서 쉼 없이 챔질하며 보내는 시간이 그리 재미있지 않았다. 그런데 해루질은 달리 흥미가 돋았다. 얕은 바다를 헤쳐가며 문어를 찾는 일, 운이 좋아 큼지막한 문어를 한두 마리라도 잡을 수 있다면, 다음날 가족들 둘러앉은 식탁에 부드럽게 삶아 먹기 좋게 자른 문어숙회를 초장과 함께 내놓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차올랐다. 물고기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도 감칠맛 도는 문어에는 엄지를 척 올리기에 가족의 밥상을 책임지는 멋진 아빠가 될 기회기이도 했다.     


“목사님. 저도 함께 가요!”     


해루질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를 구입했다. 온라인쇼핑몰에서 바다에 들어가도 젖지 않을 가슴장화와 밝은 헤드렌턴을 주문했다. 그리고 투명 아크릴로 만든 해루질 수경과 문어를 낚아 올릴 집게도 샀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날이 왔다. 이른 저녁에 잠을 조금 자두어야 한다고 했지만 설레는 마음에 날을 꼬박 새웠다. 한밤, 보통 7물에서 9물 사이 바닷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간조의 전후 네 시간 정도가 해루질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었다. 자정쯤 되었을까 칠흙 같이 어두운 바다로 나아갔다. 캄캄한 바다가 그르렁댔다. 나이 먹으면서 사라져갔던 겁이 덜컥 났다. 그래도 일행이 있어 다행이었다. 헤드랜턴을 켜니 동그랗게 밝은 세상이 드러났다. 비싼 값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문어를 많이 잡기 위해서는 우선 문어가 많이 사는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사람도 먹을 게 많고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에 터를 잡듯이, 문어 역시 먹잇감인 게와 성게 등이 많고 숨을 곳이 넉넉한 바다에 많다고 했다. 목사님은 낮에 이런 포인트를 물색해 두었고, 무릎 정도 차는 얕은 곳에 투명한 수경을 띄운 채로 문어들을 찾았다. 나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파도로 일렁이는 바다에 큼지막한 수경을 띄우니 랜턴빛에 바닷속이 거짓말처럼 투명하게 보였다. 바위틈에서 작은 물고기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 빛을 따라 은빛 풀치들이 재빠르게 유영하며 다가왔다. 허리를 굽힌 채 낮은 바다 곳곳을 헤쳐가며 문어를 찾았다. 문어는 보호색으로 이리저리 모양을 바꾸는 변신의 귀재라 나 같은 초보의 눈에는 문어가 잘 보일리 없었다. 한참을 뒤져도 문어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동행한 목사님은 신기할 정도로 문어를 쉽게 건져 올리고 있었다. 집게로 문어를 잡아채 수경위로 올려 놓으면 문어는 먹물을 쏴대며 길고 질긴 다리 빨판을 한껏 벌려 달라 붙었다.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만 보다 힘을 내어 수면 위로 수경을 밀며 문어를 찾아다녔다. 허리가 아프고 약간의 현기증도 몰려 왔지만, 처음으로 문어를 찾은 순간, 폭발한 아드레날린에 육신의 고통은 포말처럼 싹 사라져 버렸다.     


문어다. 그것도 엄청 큼지막한 문어였다. 문어는 이 구역의 포식자였는지 바위틈에 숨어있지도 않고 바위를 올라탄 채로 먹잇감들을 노리고 있었다. 물이 무릎 정도 찬 낮은 바다속 검은 바위에서 이놈을 발견했을 때 숨이 멎은 듯 했다. 흥분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게도 필요 없이 손을 뻗어 문어를 낚아챘다. 문어는 다급히 빨판으로 바위에 붙어 보았지만 흥분된 내 완력을 이기지 못하고 수경 위로 내팽겨쳐졌다. 집에 와서 무게를 달아보니 800g이 넘는 대물이었다. 피곤을 잊고 두 시간 동안 바다 위를 헤맸고 첫 해루질날 두 마리를 더 잡을 수 있었다. 나를 이끌었던 목사님은 수고했다면 자신의 망에서 두 마리를 더 내어주셨다. 가족들이 고단하게 잠든 새벽녘, 피곤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손질을 하고 어느 날보다 달콤한 꿀잠에 빠져 들었다. 



팔팔 끓는 큰 솥에 문어를 삶았다. 여덟 개의 다리가 연분홍빛으로 익더니 큼지막한 문어꽃이 피었다. 식탁에 푸짐한 문어숙회를 올렸다. 아빠부터 어린 막둥이까지 배부른 만찬을 즐겼다. 늦은 밤에는 문어라면을 끓였다. 얇게 썬 문어다리 몇 개 올라간 만원 넘게 파는 무늬만 문어라면이 아닌 문어 다리 가득 올라간 진짜 문어라면을 끓였다. 배부르다며 야참은 사양하겠다는 아내도 젓가락을 들고 식탁에 달라 붙었다. 여덟 개 아니 다섯 개의 문어다리 마냥 온 식구가 식탁에 밀착해 젓가락질 속에 오가는 행복을 누렸다.                                   

※ 제주도는 “마을어장에서의 어업조정, 수산자원의 번식 보호 및 건전한 조업질서 도모를 목적으로 2021년도 4월부터 비어업인의 밤에 하는 해루질을 금지했습니다.(제주특별자치도 고시 제2021-83호). 이 글의 소재인 해루질은 제주도 고시 이전의 사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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