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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ve me truth Apr 14. 2020

그렇게 일상이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산티아고 순례길, 아이러니하지만 시작과 끝이 있다. 그래서 인지 결국 이 길을 따라 걷는 일은 일상이 된다. 평균적으로 30~32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 말도 사실 웃픈이야기다. 순례라는 길을 또 수치화 시켜서 떠나기 전의 시간과 비용을 계산을 해버린다. 뭐 그치만 수치화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설명할때 가장 빠르고 직관적으로 할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왠지 이 여정에 대한 글을 첫째날 둘째날처럼 구분 지어 차례대로 쓰지 않으려고 한다.

 약 한달의 시간이 걸리는 이 길을 걷다보면 그 길이 일상이 되어 버린다. 낯선 풍경과 어색한 잠자리 뜨거운 햇빛 혹은 추운 날씨 등 결국 내가 맞서면서 이어 간다. 내 인생에서도 그랬듯이 말이다. 새로운 만남과 환경, 새로운 일... 그 것들이 더 이상 새롭지 않고 일상이 되듯이 말이다. 낯선 메뉴판에서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찾아 내고,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정도의 말은 자동으로 나오는 일상이 되어 버린다.

 


 내가 과연 이 길을 완주할 수 있을까? , 나는 무엇을 깨닫고 다시 돌아갈까? 하는 등의 고민들은 일상이 되어 버린 어느 순간 후에는 오늘 저녁은 뭐 먹지, 오늘 숙소는 좋으면 좋겠다. 정도의 고민들로 대체되어 가버린다. 그렇다고 물론 먹고 자고 걷고 하다가 끝나는 여정은 아니다. 만약 누군가가 하루 하루가 어땠었냐고 묻는다면, 한 주를 기준으로 월요일은 너무 더웠어, 화요일은 비가 내렸어. 수요일은 숙소가 진짜 안좋았어. 목요일은 너무 춥더라. 금요일은 걷기 괜히 싫더라. 토요일 점심은 진짜 맛잇었어. 일요일은 스페인 식당과 슈퍼가 문닫는 날이야. 라고 대답할 것 같다.

 뭐 한국의 일주일에서도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근데 말이야...햇빛이 그렇게 뜨거운 날에 걷고 수돗가에서 씻는데 내가 아주 어릴때 여름의 학교 운동장이 떠오르더라. 날씨 보다 더 뜨워서 뛰어 다닐 수 밖에 없던 그 시절이 말이야. 들판을 걸어 가는데 갑자기 비가 오더라고, 그렇게 우산없이 비를 맞아 본게 언제였는지 갑자기 생각나더라. 그리고 그 순간 바람과 비의 촉감이 내 오감에서 느껴졌어. 비와 바람이 그토록 생생하게 느껴진게 처음이였어. 자연이 느껴지니깐 내 심장소리도 느껴지더라. 정말로 살아 있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

 숙소가 정말 안좋았는데 부엌은 좋더라고 덕분에 다른 순례자들과 같이 저녁을 먹고 와인을 마셨는데 그 날보다 개운하게 잤던 숙소는 없었어. 덕분에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겼지. 그러다가 괜히 걷기 싫고 오늘은 그만 하고 싶은 날이 있더라구. 괜히 살면서 포기했던 일들이 떠오르는데 이 순간에도 그런 순간을 떠올리는게 살짝 싫으면서도 왜 그동안 왜 하기 싫은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더라고, 생각해보면 애초에 내가 하고 싶던 것도 아니였는데 말이야.

 맛있는 음식을 먹을때 떠오르는 사람이 정말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라고 하잖아. 옆에 앞에 앉은 친구들한테 음식을 권하게 되더라. 그리고 엄마 아빠가 생각나더라. 엄마 음식이 생각났는지는 몰라도 말이야. 이 나라도 일요일엔 상점들도 문을 닫고 길거리가 평화로운걸 보니 사람 사는게 다 똑같구나 싶더라. 이렇게 구구절절 이야기 해 줄것 같다.

 

순례자들의 신발
빨래

 내가 생각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가장 좋은 점은 그 길이 일상이 되어 버리고 그 일상 속에서 예전의 나의 일상들을 느끼게 해주는게 가장큰 장점인것 같다. 그리고 몰랐지만 나를 스쳐가는 사람들과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처럼, 이 길에도 나를 스쳐가는 수 많은 인연들과 응원해 주는 일들이 바로 옆에서 같은 여정을 함께 한다는 것이 가장큰 매력인 것 같다.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각자의 길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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