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가 있어 길이 나 있다는 건 마음을 허락한다는 것.
시커멓게 그을린 사내의 기풍같이
우직하게 버티고 서 있는 제주의 돌담엔
여린 숨구멍이 나 있다.
사내는 차마 먼저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작은 숨구멍을 내어두고 다른 이들의 숨결을 넌지시 허락한다.
그 숨구멍은 길이다.
소리와 숨과 마음과 그리움이 그 틈새의 길을 따라 저 너머로 흘러간다.
빈틈없이 채워진 담 앞에선 슬며시 불어 보낸 마음이 부딪혀 튕겨 나와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모든 건 나 있는 길을 통해 흐른다.
단단하고 무심한 모습 안에도 틈이 있는 사람에겐
마음이 흘러 들어간다.
이러한 길이 나 있지 않다면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야 하는 마음이
허공에서 갈길을 잃고 이내 사그라든다.
그러니까 제주에선 슬쩍 흘린 마음이
교묘하게 마련해둔 너의 틈을 비집고
시작을 알 수 없는 날숨처럼
하염없이 그리고 고요하게 스며 들어간다.
사진출처 : 핀터레스트 @dohan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