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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freeze 그림책 Jul 29. 2022

너의 사춘기 나의 그림책1_ 혼란

바다에서M

큰 아이의 중학교 생활은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수업으로 시작되었다. 예상치 못한 균열이 발생한 시공간 속에서 나와 아이는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찌 됐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불행이었고 나는 비관적이 되지 않으려 애썼다. 낯선 시간의 틈을 채울 책과 조립식 건축물 따위의 것들을 사다 놓고서는 곧 괜찮아질 거라고 나 자신과 아이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의 일상은 무질서해졌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이가 학교를 다시 가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하루를 버티는 것이었다. 매일의 확진자와 방역 소식에 주위를 기울이느라 나는 닫힌 아이의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렇게 아이는 중2가 되었다.


어느 날 아이가 학교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시간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는 핸드폰과 게임을 제외한 일상에서 무기력해져 갔다. 코로나로 인한 후유증일 거라고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라고 여겼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어갔다. 방문은 점점 더 잠겨가고 학원은 자느라 빠지는 날이 더 많았다. 매사에 반항하는 눈빛으로 송곳처럼 날카롭게 반응하며 짜증이 심해졌다. 나를 만만히 여기다 못해 무시하며 함부로 하는 아이의 태도를 보며 깨달았다.


사춘기가 왔구나.







<바다에서 M> 은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책으로 역시나 그녀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담겨 있다. 빛바랜 풍경은 쓸쓸하면서도 낭만적이고 투박하면서도 신비롭다. 그리고 자연을 통해 회복하고 성장해가는 우리의 삶을 상징적이고 우아하게 그려낸다.  특히 이 그림책은 그림 작가가 바뀌는 바람에 결국은 자신이 그림까지 그렸다고 하니 그녀의 내밀한 특성이 더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만 같다.


소년M이 있다. M은 빛바랜 사진으로 남겨진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고 모래와 나뭇가지를 가지고 노는 자신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사뭇 진지해 보인다. 해 질 녘 해변을 신나게 뛰어다닌 일은 그림자와 함께 남아있다.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아주 오래된 일처럼 기억이 희미하다. 그래도 할아버지와 푸른 유리알만큼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난 이제 어린애가 아니야!


바다를 바라보며 M이 소리친다. M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M의 외침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어른들로 인해 답답하고 억울할 때마다 혼자 삼켰던 말은 아니었을까. 외로움이 번져 창백해진 뒷모습은 바다 건너 저편에 자신과 비슷한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그 아이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지만 제일 궁금한 건 '걔네 엄마는 그 아이를 사랑할까...'이다. M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다. 손을 흔드는 엄마의 사진 옆에 'LOVE'라는 글자가 있다. 원래 저렇게 작았던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내 불안이 검푸른 파도처럼 출렁이고 상념은 계속된다.





M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바다에 잠겨 현실을 외면하면 편안해질까, 아니면 움츠린 채 머물다 보면 누군가 다가와 안아주지 않을까. M은 자신을 바다에 서 있는 처량한 당나귀처럼 느낀다. 길을 잃은 것인지 버려진 것인지 아니면 모든 걸 포기한 것인지 모를 당나귀. M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가는 길을 잊어버린, 아직은 어린애 인지도 모른다.





상담 공부를 하며 나름 사춘기에 대한 이해와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었다. 누군가의 사춘기 자녀에 대한 고민을 들으면 어렵지 않게 조언이 떠올랐다. 그런데 막상 내 아이의 사춘기를 맞닥뜨리자, 이론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나는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고 ‘왜 그래?’라는 말로 계속해서 아이에게 따졌다. 엄마로서 아이의 잘못을 바로잡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이고 버릇없는 아이를 향한 나의 분노는 정당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나와 아이는 감정적으로 격해지면서 서로에게 비난을 쏟아냈다.


그림책 <바다에서 M>을 보면서 성장통을 겪고 있는 아이의 입장을 헤아려보게 되었다. 감당하기 벅찬 변화들 속에서 나름의 고민과 아픔이 있을 것이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외로움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채워갈 수도 있고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의존하고 싶은 마음으로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엄마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괴로워할 수도 있다. 그렇게 뒤죽박죽인 자신의 마음속에서 길을 찾지 못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짙푸른 바다 같은 아이를 바라본다. 물결은 반짝이고 파도소리는 힘 있다. 두려울 때도 있고 아름다울 때도 있다. 내가 이 혼란의 바다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아직은 어렵다. 지금은 그저 거친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중심을 잘 잡으며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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