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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freeze 그림책 Jul 29. 2022

너의 사춘기 나의 그림책2_거절감

맙소사, 악어가 오딜을 삼켰대!


아이의 사춘기 증상 중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바로 '방문 잠그기'였다. 처음에는 학교 줌 수업이 이유였다. 방문을 열어 놓으면 방해가 된다는 아이의 말에 나는 단번에 방문 잠그는 것을 허락했다. 아이와 소통이 필요할 때마다 방문을 두드리고 열어줄 때까지 서서 기다리는 일이 번거롭고 귀찮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아이의 상황은 엄마의 어떤 수고보다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그런데 어느 날 방문이 잠긴 채 안에서 게임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수업시간인데 아이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나는 흥분한 상태로 방문을 세게 두드리며 아이를 불렀다.


지금 수업 시간 아니니? 근데 왜 게임을 하고 있어?

수업이 일찍 끝나서 지금 쉬는 시간이야.


아이는 급하게 방문을 닫고 잠근 후 다시 게임에 열중했다. 학교 선생님들이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는 걸 알게 되면서 나는 아이의 방 안에서 나는 소리에 더욱 예민해졌다. 벌써 수업이 끝났나, 점심은 언제 먹으라고 해야 하나, 수업이 끝났으면 문 좀 열어놓고 나오면 안 되나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무래도 이렇게 닫힌 문을 두고는 아이를 잘 살펴볼 수가 없었다. 나는 결국 남편과 함께 아이에게 방문을 잠그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로 했다. 그 약속으로 인해 다가올 파장을 미처 예상하지 못한 채.


아이는 단번에 거절했다. 논리적으로 설득도 해보고 좋게 구슬려보기도 하고 화도 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이는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부모의 뜻을 이런 식으로 거부한 적이 없던 아이였기에 나와 남편은 당혹스러웠다. 며칠 동안의 날 선 대치 끝에 남편은 결국 아이의 의사를 인정해주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이의 선택은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망가질 게 뻔했다. 종일 게임만 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나의 생각은 확고해졌다. 나는 지지 않기로 했고 계속해서 방문을 세게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정말이지 방문을 부숴버리고 싶었다.







그림책의 제목 '맙소사, 악어가 오딜을 삼켰대!'와 표지의 그림을 보고 내용을 대강 짐작해 보았다. 아마도 위험에 빠진 아이를 어른들이 구해주는 내용일 것 같았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 그 뒷감당은 늘 어른의 몫이니까. 나의 무의식은 자연스레 이런 생각들로 이어졌다. 과연 내 짐작은 맞았을까?


오딜의 부모님은 방학을 맞이한 오딜과 함께 동물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가족 모두가 좋은 시간이 될 거라는 부모님의 기대와는 달리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진 오딜은 마지못해 툴툴거리며 따라나선다. 정말이지 오딜의 기분을 이해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불만이 가득한 상태로 박물관에 도착한 오딜은 커다란 악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장난 삼아 악어의 입을 살짝 건드린 순간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악어가 입을 벌려 오딜을 삼켜버린 것이다. 오딜은 무사할 수 있을까.



충격과 슬픔에 휩싸인 채 어쩔 줄 몰라하는 어른들을 뒤로하고 태평하게 누워있는 오딜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유쾌한 반전이었다.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는 곳에 머무는 것을 선택한 오딜의 당돌함이 나름 괜찮다고 느껴졌다. 사실 그런 곳이 있다면 나도 한동안 살아보고 싶다. 그럼에도 결국 나는 어른들에게 더 마음이 기운다. (비록 작가가 우스꽝스럽게 표현했지만) 아이를 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른들의 시도는 눈물겹고, 악어 앞에서 하염없이 오딜을 기다리는 부모는 안쓰럽다.


결국 모든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오딜의 부모님은 악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오딜을 삼킨 악어를 오딜처럼 여기며 함께 생활하려 애쓰지만 부모님은 점점 지쳐간다. 자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부모의 끈질긴 노력을 오딜은 알았을까? 부모가 오딜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처럼 아마 오딜도 부모의 심정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느 날 오딜은 마지막 오이피클을 다 먹고 난 뒤 갑자기 부모님을 다시 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 사로잡힌다. 하필이면 먹을 게 다 떨어진 후에 그런 마음이 들다니. 필요한 게 있을 때만 방문을 열고 먼저 다가오던 아이의 모습이 오딜과 겹쳐지면서 문득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오딜이 나오자 기뻐하는 부모님을 보며 자신이 받은 상처(거절감)에 매여있지 않고 넉넉히 수용하는 부모님의 위대한 사랑을 느낀다. 나에게도 그런 기쁨의 순간이 올까.


여하튼 오딜은 다시 하마 앞에 서 있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아이는 여전히 방문을 잠근다. 그래도 가끔씩 필요한 게 있어 나왔다가 거실에 앉아 짧은 대화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아이가 허락한 만큼의 거리를 받아들이며 아이의 독립을 지켜본다. 아이의 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궁금하기도 하고 염려될 때도 있지만 아이가 편안해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을 존중하려 애쓰고 있다. 방문을 사이에 두고 벌어졌던 번거롭고 신경질적이었던 소통은 다행히도 카톡과 전화를 사용하면서 줄어들고 있다. 많은 대화 대신 애정이 담긴 말 한마디의 힘을 믿으며 오늘도 나는 닫힌 방문을 견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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