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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freeze 그림책 Aug 03. 2022

너의 사춘기 나의 그림책 5_자책감

고함쟁이 엄마&이유가 있어요

평소에 육아 프로그램을 챙겨 보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만나게 되는 감정이 있다. 억울함의 반대편에 서 있는 '자책감'이다. 아이의 문제 대부분은 부모에게 원인이 있다는 전문가의 진단은 불편하지만 반박할 수가 없다. 내가 저지른 수많은 잘못이 아이에게 남아 있다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내가 준 상처들이 어쩌면 끊임없이 아이를 괴롭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왜 그렇게 무지하고 미성숙했을까. 스스로가 한심하다. 모든 것이 내 탓이 되는순간 나는 가장 못난 엄마가 된다.





엄마가 소리를 지른다. 아이의 몸이 이리저리 흩어져 날아간다. 머리는 우주로 몸은 바다로 날개는 밀림으로 부리는 산 꼭대기로. 엄마는 조각난 아이의 몸을 다시 모아 꿰매 주며 말한다. 미안해.   


<고함쟁이 엄마>는 제목에서 일단 멈칫하게 되고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리며 책을 덮은 후에는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오는 그림책이다. 작고 간결한 그림책이 담고 있는 힘이 묵직하고 날카롭다. 소리 지르며 화내던 일상이,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던 그 순간이 다시 재구성되기 시작한다. 내 아이는 얼마나 많은 부서짐을 경험했을까. 알아차리지 못해 놓쳐버린 순간이 가슴 저리도록 미안하다. 제대로 꿰매 주지도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럽다. 모자란 나를 참아준 아이가 고맙다.





<이유가 있어요>는 아이들이라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이다. 늘 아이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기발하고 유쾌한 상상력은 그만의 탁월한 재능인 것 같다. 그는 이 그림책을 통해 아이의 행동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며 아이를 대변한다. 코를 파거나 밥을 흘리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오는 일 같은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아이가 생각한 이유들은 허무맹랑하지만 나름대로 남을 위한 선의를 담고 있는 귀여운 상상이다. 이렇게 떳떳한(?) 이유에도 엄마가 시큰둥하자 아이는 역지사지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며 승부를 건다.


그런데요. 어른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만'해 버리는 일 없어요?


더럽고 위험하고 예의 없는 행동을 하는 아이를 혼내는 건 당연한 일이고 나의 화는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은 부족했고 잘못을 지적하는 건 빈번했다. 내 불안으로 아이를 과하게 다그치며 몰아세웠다. 내 실수는 숨기고 변명하면서 아이의 실수는 짚고 넘어가려 했다. 나는 아이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 무심한 엄마였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바람은 아무래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아이의 극심한 사춘기가 내 잘못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이의 마음을 민감하게 읽어주지 못하고 상처를 잘 만져주지도 못한 것 같다. 내 감정이 우선시되어 아이에게 이유를 제대로 묻지 못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나로 인해 아이가 느꼈을 두려움과 억울함이 쌓여 사춘기를 통해 적대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내가 아닌 좀 더 성숙한 엄마를 만났다면 아이는 덜 힘들지 않았을까.


내가 자책감을 토로할 때마다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정도면 잘하고 있는 거라고. 계속 노력하는 괜찮은 엄마라고. 나의 실상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 생각하면서도 왠지 힘이 된다.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아이의 수많은 이유들에 마음을 열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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