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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freeze 그림책 Aug 02. 2022

너의 사춘기 나의 그림책 4_억울함

엄마도감

사춘기 아이에게 가장 빈번하게 느끼는 감정은 '억울함'이다. 누군가는 모성애를 신의 사랑과 견주어 얘기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 거룩함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저 나약한 엄마다. 내가 준 만큼 받고 싶고 내가 희생한 만큼 보상받고 싶은 보통의 인간이다.


아이가 두 눈을 부릅뜨고 반항하면서 대놓고 나를 무시할 때마다 억울함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온다. 남편은 엄마가 편해서 그런 거라고 위로하지만 무너진 자존심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나름대로 어설프지만 좋은 엄마가 되려고 아등바등했던 내 모습들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내 사랑의 빈곤함에 자책하며 모성애를 쥐어짜 내던 지난 시절도 의미를 상실한다. 나는 지금까지 뭘 한 걸까. 고작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나의 젊음을 제쳐두고 살아온 걸까.





<엄마도감>은 이제 막 태어난 아이의 시선으로 엄마를 관찰해가는 그림책이다. 아이는 갓 태어난 엄마의 생김새를 하나씩 살피며 생각한다. 상상과는 다른 퉁퉁 부은 얼굴,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엄마는 괜찮은 걸까? 아이는 엄마의 상태를 걱정하지만 정작 그 초췌함의 이유는 알지 못한다.


스물여덟 살의 나는 갓 태어난 첫째 아이와 산후조리원에 있었다. 당시 그 조리원은 모유수유를 적극 권장하던 곳이어서 새벽에도 2시간마다 수유실에서 호출 전화를 받았었다. 비몽사몽인 채로 앉아서 아이에게 젖을 물렸고 유축이 힘들어 젖몸살을 앓기도 했다. 모유수유와의 긴 전투에 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던 시절이었다.

생후 6개월쯤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아이의 몸무게가 늘지 않으니 모유 대신 분유를 먹이라고. 몇 달 동안 나는 빈 젖을 아이에게 물린 채 바보처럼 알 수 없는 통증을 참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는 계속 엄마를 탐구한다. 신기하게도 엄마의 몸은 아이의 필요에 맞춰 다양하게 변신한다. 아이는 만족스러운 엄마의 몸을 앞으로도 계속 이용할 생각이다. 그런데 엄마가 시도 때도 없이 잠에 든다. 아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엄마를 깨워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엄마를 그냥 내버려 두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는 종종 엄마와 같이 화장실에 가야 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육아전문가의 책을 임신 중에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책의 설명 대로만 하면 육아가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운다고 무조건 안아주지 말아야지, 울음의 의미를 잘 알아차려야지, 수면교육을 잘 해야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모든 각오는 실패로 끝났다. 책과 현실은 만날 수 없는 수평선이 되었다. 아이가 울 때마다 나는 아이를 안아주었고, 아이가 왜 우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밤이면 옆으로 누워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 잠이 들거나 남편이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몇 바퀴씩 돌며 아이를 재우기도 했다. 화장실에서조차 편할 수 없던 나는 방광염에 걸리기도 했다. 그렇게 일상은 늘 어지러웠다.




아이는 가끔 엄마의 낯선 모습들을 목격한다. 그중 하나는 엄마가 몸을 움츠린  얼굴을 감추고 있는 모습이다. 아이는 엄마의 팔에 청진기를 갖다 대며 엄마의 기분이 전해지길 기다린다. 엄마는 많이 아픈 상태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낯선 모습은 엄마가 식탁에 앉아서 천천히 밥을 먹는 것이다. 엄마의 엄마가 오면   있는 모습이다.  엄마는 나를 등에 업고 서서 밥을 먹는  좋아하는  알았는데 그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진짜 정체는 뭘까.


아이가 두 살 무렵 더 늦기 전에 나 자신을 돌보고 싶어 상담대학원에 입학했었다. 그리고 한 학기 만에 그만두었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었고 가족 중 누구도 내 공부가 아이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길고 긴 육아의 터널에 갇혀버렸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 나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엄마로 태어나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돌아본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버거운 시간들을 지나왔다. 아이가 있어 기쁜 날도 많았지만 나 자신을 포기하며 아프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만 잘 자라준다면 그 모든 희생이 헛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처럼.


나름의 자부심이었던 엄마로서의 내가 흔들린다. 내 사랑이 잊힐까 억울하다. 내 존재가 물거품처럼 꺼지는 것 같아 분하다. 모성애는 당연한 거라는 누군가의 헛소리는 이제 지겹다. 나는 되돌려 받고 싶다. 당연하지 않아서 더 치열했던 내 사랑에 대한 보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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