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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freeze 그림책 Aug 05. 2022

너의 사춘기 나의 그림책 6_상실

L부인과의 인터뷰


사춘기 아이는 부모에서 친구로 관계의 무게중심이 옮겨 갔다. 가족과 함께 하는 걸 좋아했던 아이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아이의 우선순위는 친구들이다. 주말의 가족 외식에도 따라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가끔 아이가 같이 나가준다고 하면 우리 부부는 고마운 마음까지 든다. 아이에게 억지로 요구해봤자 돌아오는 건 후회와 상처뿐이라는 걸 깨달은 우리 부부는 그렇게 아이에게 길들여졌다. 가족과의 시간을 지루하고 귀찮게 여기는 아이의 하루는 친구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아이는 먼 길을 떠났고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림책 <L부인의 인터뷰>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하루를 보여주는 인터뷰에 관한 내용이다. 오늘은 어떤 부인의 이야기를 들으러 왔다. 남편의 출근과 아이의 등교 후 조용해진 집에서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이름은 알 수 없는, 그저 L 부인으로 불리기 원하는 그녀는 결혼 전에 잘 나가는 사냥꾼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옷장 안에는 숲이 우거져 있고 하얀 보름달이 떠 있다. 먼지를 털어내고 있는 선반에는 활이 부착된 상패도 놓여 있다. 그리고 거울 속에는 늑대가 아닌 평범한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가 있다. 숲과 도시, 사냥꾼과 주부의 모습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 공간 속 그녀가 어쩐지 불안하게 느껴진다.


선택의 순간 나도 모르게 신랑의 상황과 아이들의 필요를 먼저 살핀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인가가 더 중요하다. 나로 인해 신랑과 아이들이 불편하다면 내 일정은 언제든 취소될 수 있다. 내 필요는 미뤄져도 괜찮은 나는 그들보다 덜 중요한 사람이 되어 간다. 나의 욕구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건 늘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면 좋겠다고 말하며 그녀는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간다. 뒤에 남겨진 물건들은 그녀보다 한참은 커 보이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뱀으로 변한 양말들, 실과 바늘, 낙서로 가득한 바닥, 사냥꾼 시절의 사진액자 등에 둘러싸여 있던 그녀의 시간들을 어땠을까. 그녀는 여전히 매일매일 해야 하는 집안일이 힘들다고 말한다. 사방에서 한꺼번에 터지는 집안일에 그녀는 맥을 못 춘다.


집안일은 시지프스의 돌이다. 힘들게 올려놓지만 곧 다시 내려오고 만다. 그렇다고 올려놓는 걸 그만둘 수는 없다. 카뮈는 그 반복적 행위에 창조성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실존하라고 했지만 끈기와 재능이 부족한 나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다.  알아주는 이도 없는 무의미해 보이는 일에 갇힌 나의 서사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버릴 것 같다.


 



다시 숲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마다 그녀는 꿈속에서 숲을 뛰어다닌다. 억압했던 무의식이 꿈을 통해 펼쳐진다. 하지만 꿈을 깨고 다시 현실이 되면 그녀의 곁에는 아이와 신랑이 있다. 무의식과 의식 사이에서 그녀는 무언가를 찾고 있다. 뭘 찾고 있는지 모르면서 계속해서 찾아다닌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그것을 찾았고 다시 거울 앞에 섰다. 멍하게 헤매던 L부인과 숲에서 잘 나가던 사냥꾼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거울 속 자신을 향해 활을 당기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결연함이 느껴진다.


무엇을 잃은 것인지 모른 채 그 무엇을 찾으려는 나름의 시도를 해왔다. 그리고 얼마 가지 못한 채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오곤 했다.  나의 상실보다는 아이들의 필요를 선택하며 상황에 순응했다. 아직 나는 거울 앞에 설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아이의 사춘기는 엄마와의 심리적 탯줄을 자르는 과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엄마는 절대 그 탯줄을 자를 수가 없기에 사춘기 아이가 먼저 잘라버리는 거라고. 아물지 않은 그 상처가 아직은 따갑다. 아이의 빈자리가 여전히 쓸쓸하다. 더 이상 내가 잃어버린 것을 아이로 덮어 둘 수가 없다. 나를 찾는 일에 소홀하며 아이를 핑계 삼을 수 없게 되었다. 오롯이 내 몫의 시간이 오고 있다.



사춘기

정오의 해변
목이 마르다며
바다를 떠나
사막을 향해 헤엄쳐가는
어린 물고기를 바라본다

몰래 감춰온 지느러미가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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