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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람 휘 Sep 10. 2023

대화에서 시작된 그림책 만들기

독후활동 기록의 시작 - 좋은 엄마이고 싶은 나의 마음

제가 아이의 독후활동을 기록할 수 있었던 건 성장 앨범 만들기가 시작이라고 볼 수 있어요.

아이 태어나서부터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사진을 많이 찍었거든요.

자연스럽게 앨범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앨범을 만들 때 아이가 그린 그림, 만들기 했던 작품들도 함께 넣어서 기록하니 추억도 되고, 아이도 좋아했어요. 활동 사진을 넣으면 일반 인화로 했을 때 부피가 커질 것 같아서 사진 크기조절이 가능한 포토북으로 정리를 했어요. 깔끔하게 인화가 되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책처럼 만들어지다 보니 그냥 앨범을 볼 때와는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와 그림책도 만들었어요.

참 낭만적일 것 같으나.. 사실 엄마인 저에게는 초라한 기억입니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기록하고 싶었던 제 열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둘째를 낳고 갑자기 약해진 체력으로 '오늘만 버티자'로 모든 게 바뀌었어요. 육아로 지치고 반복되는 일상은  쉽지 않았어요.

이 날도 여유 없는 마음과 고갈된 체력에 힘들어했었고, 그런 저는 아이의 투정을 너그러이 받아주지 못하고 혼을 냈어요.


우는 아이는 뒤로하고 '에라 모르겠다' 나도 좀 살자 하며 소파에 누워있었어요. 어느새 아이는 잠이 들었죠.


울다 지쳐 잠든 아이를 보니 내가 너무 못났더라고요. 내일은 엄마가 미안하다고 사과할게..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해 줄게. 하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죠. 눈물이 났어요.


다음날.


아이에게 엄마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구구절절하게 설명을 하는 데 아이가 이게 뭔 소리야 하는 표정으로 그냥 멍하니 있더라고요.


아직 어린아이에게 내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변명하는 모습이  참 어리석어 보였어요. 

아이 눈높이에서 설명해 주자..


옛날에 나쁜 마법사가 있었는데~ 행복한 족을 보고 질투가 났데. 그래서 우울보석을 숨겨뒀어. 그 보석옆에만 가면 누구든 화가 났다 슬펐다 하면서 마음이 우울하게 돼. 엄마 옆에도 그런 보석이 있었나 봐.

우울보석이 옆에 있으면 사람들이 우울해진다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아이에게 해주었어요.


이야기를 듣던 아이가

 "그 마법사는 왜 그런 거야?"

"우울 보석은 어떻게 없애?"

"마법은 풀리는 거야?"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하면서 질문을 했어요.


제가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진행되었죠.

"글세.. 엄마도 잘 모르겠는데.. 너라면 보석이 어떻게 없어지면 좋을 거 같아?"

"어린이집에서 모기퇴치제 만들었잖아~그거 냄새가 아주 독해~그걸 뿌리면 없어지게 하자"



아이는 어린이집 에피소드를  쫑알쫑알 이야기를 하며 제 이야기 상황에 맞는 상상력을 더해서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었어요.


아이는 이야기를 만들 때 상상하면서 떠올랐던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는데요.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니 그림책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두 페이지 되는 그림을 뚝딱 그려주었어요. 즐겁게 그리는 모습을 보며 '이야 이렇게 하면 그림책이 금방 만들어지겠구나~'했는데 웬걸요.  처음 두장만 잘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진척이 없었어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그릴 생각을 안하더라고요.


나와 아이의 안 좋았던 기억을 승화시키고 싶은 욕심에  그림책을 완성하고 싶었어요. 내가 그리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아이에게 그림을 더 그려줄 수 있을지 말했더니 아이는  다른 놀이를 한다며 쳐다보지 않더라고요.


내 욕심에 괜한 걸 하고 있나.. 하지 말까.. 괜스레 아이에게 생각지도 않은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에 바로 멈췄어요.


그러다 한 일주일 후에 만들었던 그림을 다시 꺼내보게 되었는데 '그래도 재밌는데 시작한 김에 마무리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죠. 그러다 도리질 치고 급할 거 없다. 아이랑 또 이야기 나눌 날이 오겠지 하며 기다렸어요.

언젠가는 완성하겠지.


이주정도 뒤에 갑자기 또 한 장을 그렸어요.

그 후에 A4반 정도 그리고


한 장 그리는데 이틀이 걸린 것도 있고

일주일도 걸린 것도 있었어요.


버리지 않고 그냥 제 책상 한편에 꽂아두었더니 잊지 않고 가끔 들춰보더니 마무리까지 하더라고요.


중간 중간에 적어놓은 이야기를 읽어달라고 해서 자주 읽어주긴 했어요.


어쨌든 완성!!(한 달이 넘은 듯 싶어요)



그래서 만들 게 된 첫 그림책  '우울 보석을 찾아라!!!'입니다.


'우울보석을 찾아라' 줄거리는 평소 숨은 그림 찾기를 잘하는 주인공이 나쁜 마법사가 숨겨놓은 우울 보석을 찾아서 마을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내용이 되었어요.


이렇게 클리어파일로 처음에 만들어줬는데

이왕이면 종이들만 엮는 것보단, 포토북 형식으로 하면 완성도가 더 높아질 것 같아서 그동안 갈고 닦았던 포토북으로 다시 인화했습니다. 진짜 그림책 같아 보이니 아이도 더 좋아했어요.




좀 시간이 들긴 했지만
아이가 좋아하니  그 자체로 저도 기뻤어요.


책 속에 등장하는 어린이집 친구들과 장소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는 재미가 있을 거란 생각에 어린이집에도 가져가 친구들과 함께 읽었어요. 선생님께서 책 등장인물이 어린이집 친구들이다 보니 아이들이 재미있어했다며 또 만들면 보내달라고 하시기도 했답니다.


아이는 무척 만족해하며그림책을 만들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어요. 앞으로 더 만들겠다며 그림책 작가가 되야겠다고도 했지요. ㅎㅎㅎ 그 후로 패션 디자이너, 유치원 선생님, 발레리나로 바뀌긴 했지만요.


완성된 책을 받아 들고 들었던 생각은


부족한 부모의 미안한 마음과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아이가
언젠가는 알아줄까..?

사실 알아주길 바라고 하는 건 아니긴 하지.
나 또한  내 부모님의 마음 알지 못하니 그건 너무 바라는 거지.


그래도 좋은 엄마로 기억되고 싶다..


좋은 엄마로 기억되고 싶었습니다.


그런 저의 바람은

그림책 '우울보석을 찾아라'가 시작이 되어 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기록해 두고

장면에 맞는 그림을 아이가 표현해 볼 수 있도록 했어요.


문장마다 그림을 그리면 처음 만들었던 '우울보석을 찾아라'때처럼 아이의 작업량이 많아져서 질릴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싶다는 그림만 그릴 수 있도록 했어요. 대신 한 번 그린 그림에 다른 이미지를 넣어 콜라주 형식으로 변형시켜 사용했어요. 아이의 작업량은 줄이고 컷은 많아졌죠.


또 다른 방법으로는 평소 어린이집 활동 작품이나 심심해서 만들었던 것들을 사진 찍어서 모아두고, 문장에 어울릴만한 작품을 골라서 끼워넣기했어요.



그래서 완성된 다음 작품이 바로 '아이스크림이라며 좋겠어~!'입니다.

첫 작품 이후 약 6개월 후에 만들었어요.



토마토를 싫어하는 아이가, 토마토가 아이스크림이라면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것들도 아이스크림으로 바꿔보는 상상으로 이어졌어요.



난 토마토가 싫어! 맛이 이상해
찡~ 찌끼찌끼~ 찡~ 이렇거든



토마토가 아이스크림이라면 좋겠어~!
그러면 1개만 먹으라고 그래도
2개~3개 자꾸자꾸 먹을 수 있을 텐데



난 치약이 싫어!
하나는 맛이 너무 꺽꺽하고
하나는 맛이 너무 없고
하나는 맛이 너무 써



치약이 아이스크림이라면 좋겠어~!
그러면 치카치카가 매일매일 하고 싶을 텐데



토마토가 아이스크림이라면, 치약이 아이스크림이라면, 계단이 아이스크림이라면, 우리 집이 아이스크림이라면이라는 생각이 '아이스크림이라면 좋겠어'라는 그림책으로 탄생했어요.


다음 작품은 '날개가 있다면 좋겠어'입니다.


만드는 방식은 이 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와 제가 했던 말을 기록하고, 처음 한 장면은 아이에게 떠오르는 대로 그려보게 했어요.

나머지 문장은 평소 만들어놨던 작품이나, 미술학원 작품을 끼워넣기하기도 하고, 아이가 더 추가로 그리기도 했답니다.







페이지 마지막엔 아이가 활동하던 순간을 포착해서 넣으니 당시 기억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어요.

그림책이자 나만의 추억앨범이 된 샘이죠.


대화에서 시작된 그림책 만들기는 더 나아가  아이가 스스로 만든 포토북이 되었는데요.


어느 날 아이가 자기는 동생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며 동생에 대한 생각을 저에게 말해주었어요.

그 마음이 예뻐서 그대로 기록을 해 두었더니, 아이가 책 만들기 했던 것처럼 사진을 넣어서 동생 앨범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만든 책이 '동생아! 넌 뭘 해도 귀여워!'입니다. 그림 대신 사진이 들어갔기에 포토북이 되었지요.





동생아 넌 뭘 해도 귀여워!
언제든지 언니가 네 곁에 있어
넌 웃어도, 울어도 귀여워
매일매일 귀염둥이라고 하고 싶어
넌 너무 사랑스러워
동생아! 넌 내 물건을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괜찮아
이미 나에겐 큰 선물이 있거든
그건 바로 너야
네가 우리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줘서 고마워
네가 내 동생이어서 너무 좋아!



아이가 직접 한 말이다 보니 더 애착이 갔나 봅니다. 그동안 제가 찍어놨던 사진들을 보며 앨범에 어울릴만한 이미지를 골라주고, 함께 포토북 작업을 했어요. 완성되어 온 포토북을 보더니 동생보다 더 좋아하는 첫째 아이였답니다.


그런 첫째 아이가 기특해서 첫째 아이만을 위한 포토북도 만들어 주었어요.



귀염둥!
넌 뭘 해도 사랑스러워!
언니가 된 후 많이 의젓해졌지만
엄마 눈엔 아직도 아기 같아
매일매일 사랑둥이라고 하고 싶어
귀염둥, 사랑둥, 건강둥, 행복둥, 엄마사랑 우리 첫째
네가 가끔 집을 어지르기도 하지만,,, 괜찮아
넌 창의력 뿜뿜 넘치는 사랑둥이니까
네가 엄마 아빠한테 와줘서 고마워
네가 엄마 아빠 딸이어서 너무 좋아!
동생도 언니가 우리 언니어서 너무 좋데!
넌 뭘 해도 사랑스러워!


대화에서 이어져 그림책, 그리고 포토북까지 만들었던 경험이 아이가 독후활동을 했던 것들을 기록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제 생각에는 아이가 독후활동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재미로 했던 그림 그리기, 만들기, 놀이 등 모든 것이 아이에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일 것 같아요.




아이를 위해 했던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어요.


지금도 매일 저와의 싸움을 합니다. 다 내려놓고 좀 늘어져있고 싶은 나와 아이들을 더 챙겨줘야 한다는 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어느 쪽이 되었든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요.


그래서 제가 찾은 방법은 내가 잘하는 거,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아이들도 적당히 챙기자입니다.


남편도 그런 저를 응원하고 많이 도와줍니다.



사진 속 이 책들은 우리 집 최애 도서들이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책이 만들어질지 궁금합니다.


아이들도  놀이가 쌓여 즐거운 추억이 되고, 그 추억이 쌓여 풍부한 감성을 지닌 사람으로 자라길 바랍니다. 어떤 어른이 될지 궁금합니다.


간장종지만한 저의 그릇도 아이들을 키우며 조금은 더 깊어지고 넓어지기도 합니다. 금이 가기도 하고 깨질 때도 있지만 앞으로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합니다.


이 시간들이 쌓여서 저도 아이들도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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