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사는 곳은 외딴섬처럼 단절된 동네이다. 오늘도 자신의 아내에게 가져다 줄 약을 위해 삼십 분을 걸어 종점에 도착했고, 힘겹게 버스에 올라탔다. 가는 길이 지겹지 않은 이유는 병원 옆에 노인의 단골 추어탕집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추어탕을 싸 올 생각에 신이 나서 지겨움도 잊어버린 모양이다.
- 추어탕 하나 주소.
- 할아버지, 또 오셨네요~ 9번째 도장이네요.
노인은 제피 냄새를 풀풀 풍기며 버스에 탔다. 한 손에는 약봉지, 한 손에는 추어탕을 쥐고서.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이 노인이 추어탕을 좋아한다는 사실에 대해. 무관한 사람들끼리 무관심한 건 당연한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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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점점 거동이 불편해졌다. 그를 대신해 그의 아들이 제엄마의 약을 타러 갔다. 노인은 아들에게 잊지 말고 추어탕도 사 오라 부탁한다. 아들은 약을 타서 추어탕집으로 갔다.
- 추어탕 하나 주십시오.
- 오늘은 아드님이 오셨네. 오늘 또 10번째 도장이에요. 다음에 오실 때 추어탕 무료예요!
- 감사합니다.
아들이 엄마에게 약을 건넸다. 그리고 노인에겐 추어탕을 건넸다. 노인은 숟갈로 탕을 허겁지겁 떠먹었다. 가래 섞인 기침이 계속 이는데도 쉬지 않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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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손녀가 아픈 남자친구에게 사다 주려고 몰래 노인의 쿠폰을 가져와 길을 나섰다. 추어탕집에 다다를 때까지 손녀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 추어탕 이걸로 하나 주세요.
- 예나 왔니? 할아버지 가져다 드리려고 하는구나. 아유 착해, 할머니는 괜찮으셔? 할아버지도 편찮으신데 매번 할머니 약 타러 오시고.
그날따라 아주머니는 말이 많았다. 손녀는 추어탕을 받아서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게로 들어왔다. 주머니 속에 있던 꾸깃한 자신의 지폐를 건네며 다시 쿠폰을 달라고 부탁했다. 아주머니는 의아했다. 결국 손녀는 쿠폰을 본래 있던 자리에 넣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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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죽었다. 노인의 아내도, 아들도, 손녀도 그 누구도 추어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10번째 도장이 찍힌 쿠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노인의 아내도 죽었다. 이제 추어탕집 근처에 갈 일은 더더욱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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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손녀가 차를 타고 병원 옆 추어탕집에 가는 길이다. 아들도 손녀도 그 누구도 추어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10번 찍힌 도장이 아직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