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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Jan 02. 2025

비밀

1분소설

  서른 살 소묘씨는 매달 자신에게 그림책 백 권과 오렌지색 라넌큘러스를 선물한다. 간혹 그림책이 지니고 있는 심상을 좋아하는 어른들이 있는데, 소묘씨가 그 부류에 속한다. 오렌지색 라넌큘러스의 꽃말은 '비밀'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소묘씨에게는 큰 비밀이 없어. 소묘씨도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나는 나는 큰 비밀을 만들지 않아. 거기에다 소묘씨는 남의 말에 대해 누설하지도 않는다.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은 미움을 받는다. 그렇다면 큰 비밀을 만들지 않는 소묘씨는 사랑받을까. 그림책을 자주 읽는 소묘씨도 그에 대한 마땅한 답은 찾지 못했다. 오히려 질문이 얹어지거나 오래 머문 질문들은 자연스레 휘발됐다. 

  

  소묘씨가 참석하지 않아도 마을 회의는 진행된다. 작은 컨테이너에서 안건에 대해 논의가 끝나고 하나둘씩 자리를 빠져나가던 찰나에 소묘씨 이야기가 나왔다. 그중 소묘씨와 간단히 인사 정도만 나누던 두 사람이 말했다.

  - 소묘씨는 자기와 관련된 큰 비밀을 만들지 않아요. 입도 무겁고.

  - 그러게요. 소묘씨는 정말 미워하기 힘든 사람인 것 같아요.

  모두들 소묘씨를 칭찬했다. 그때 소묘씨와 왕래가 잦고 바로 옆집에 사는 한 주민이 말했다.

  -  아뇨, 큰 비밀이야 없지만 작은 비밀은 아주 많아요. 여러분 혹시 소묘씨가 매달 그림책 백 권이랑 꽃다발을 자기 집으로 주문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사람들은 모두 아니오.라는 말과 함께 놀라기라도 한 듯 입가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작은 컨테이너 안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났다. 마을 사람들은 늘 그래왔듯 소묘씨를 웃으며 반겨주었다. 소묘씨의 실루엣이 멀어져 희미해질 때쯤 수군대기 시작했다. 길고 장황하게 소묘씨를 힐난했지만 요지는 이거였다. 역시 비밀이 없는 사람은 없어. 


  마을 사람들은 큰 비밀을 만들지 않는 소묘씨에 친밀감과 신뢰감을 느꼈다. 반대로 작은 일은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소묘씨에게 실망했다. 소묘씨와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떠들지만 소묘씨가 사라진 이후에 웅성임은 소묘씨에게 비밀로 남는다. 소묘씨가 그림책과 꽃을 사지 않았더라도, 혹은 그 사실에 관해 말을 했더라도. 어떻게든 비밀은 만들어졌을 것이다.






나흘 전 뉴스를 접하고 하루종일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기사만 계속해서 확인했습니다.

버스타고 집오면서 눈물이 났는데, 눈물 흘리는 것조차 죄송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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