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물건들로 채워진 공간을 좋아한다. 언젠가는 각자의 공간에서 제 할 일을 다하고 있었을 물건들이 누군가의 손길로 인해 한 장소에 모여든다. 그렇게 하나의 풍경으로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말없이 시간을 버텨온 내공이 적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살아낸 흔적을 가리지 않는 마음으로 물건들은 낡아질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누구와 더불어 지내다 여기에 이르렀는지 묻는 이에게, 저마다의 여유로운 손짓으로 상상의 문을 툭 열어재낀다. 혼자 왔냐 묻길래 그렇다고 했다. 동행이 있다 해도 서로 게으치 않으니 혼자 온 거나 진배없다 했다.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낡음 들을 보는 것에 익숙해졌다. 비교적 가까운 옛날의 물건들이 있는 공간은 잠깐이나마 나를 과거의 시간 속으로 끌고 간다. 당시의 나라는 사람이 빠져 지낸 이야기 속으로 말이다. 내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더 오랜 옛날의 물건들이 있는 공간은 나를 상상의 시간 속으로 끌고 간다. 특정할 수 없는 이들의 일상을 떠올린다. 특정할 수 없는 이들이 물건을 만지던 때의 촉감과 마음을 떠 올린다.
낡음 들을 보는 것이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은 나 또한 삶에서 조용히 낡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낡아지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다. 광이 나는 새 물건이 이야기를 가졌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손 떼 묻은 물건이 이야기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건, 수많은 시간이 미세먼지처럼 물건에 내려앉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려앉은 것을 그대로 둔 채 그 공간에 놓인 것 자체가 누군가의 의도를 함축한다. 나이가 들수록 단지 오랜 시간을 놓아둔 것이라는 그 자체 때문에 물건을 쉽게 버리기 힘들어진다. 삶의 작은 부스러기라도 묻어 있을 것들, 그 흔적들에 대한 연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