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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하 공항에서 멘붕이 되다

기가 완전히 죽다

by Bora

9주간 바쁜 한국 일정을 마치고 새벽 0시 35분에 상륙하는 카타르 비행기를 타고 10시간 만에 도하에 도착을 했다. 비행기 안에서 친절한 승무원이 준 생수를 잔뜩 모아 주섬주섬 가방에 담았다. 우리 가족 한 사람에 물병 2개씩을 챙기니 10병은 족히 넘었다. 물론 환승장 입구에는 물을 쓰레기 통에 버려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내 앞에 서있던 백인 아가씨가 1리터짜리 물이 반통이나 남은 걸 한순간에 다 마셔 버렸지만 나는 `밑져야 본전이지`라는 마음으로 물병이 든 가방이 통관 스탠드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실눈으로 쳐다보았다. 무사통과를 바랐건만 역시나 '삐익'하는 경보음이 울렸다. 검은 얼굴의 직원이 나를 따로 불러 세웠다. 그가 가방을 열어 보라고 말하자 나는 민망했지 만 투덜거리면 가방을 열었다.

"나는 도하 공항에서 케냐를 가기 위해서 13시간을 기다려야 해요."

"어디로 가기 위해서요?"

"케냐..."

"제 고향이 케냐입니다."

그는 반가우면서도 안타까운 표정으로 가방에서 물은 꺼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돈 같은 물을 쓰레기통에 버려야 만 했다. 물병을 버릴 때마다 두 손이 바르르 떨렸다.

케냐에서 온 직원은 용역회사를 통해서 온 사람 일 것이다. 도대체 카타르에서 일을 하면 월급을 얼마나 받을까? 나이로비에서는 대학을 나와도 신입사원 월급은 한화 300,000원쯤 될 텐데, 이 나라에서는 족히 세배 이상은 받을 것이다. 그가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케냐에 조심히 들어가라며, 마지막 물병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공항에서 13시간을 기다리면서 밥을 두 끼나 먹어야 했다. 물가가 꽤나 비싼 곳이라서 나름 괜찮다는 카페나 식당은 가기 힘들었다. 비행기에서 아예 밥을 먹지 않은 아이들은 식사로 햄버거를 선택했다. 속이 더부룩한 나는 샐러드를 시켰다. 공항 안은 에어컨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오래 있다 보면 으슬으슬 춥기까지 하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가족 숫자대로 담요 5개를 챙긴 게 다행이다 싶었다. 아이들은 공항에 놓여 있는 의자에 누워 인터넷을 켜고는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었다.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비행기표에 적혀있는 번호를 적어야 했고 그것도 중간중간에 다시 입력을 하지 않으면 끊겼다. 13시간 동안 누구는 호텔을 잡는다고는 하지만 우리 가족 한 사람에 200달러씩 계산하면 1,000달러가 된다.

양치질을 하기 위해 화장실에 갔다. 30대 초반쯤 돼 보이는 흑인 여자분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얼뜻 그녀의 손을 보니 나와 똑같은 케냐 팔찌를 끼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살며시 그녀의 손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녀는 나의 얼굴과 팔목을 번갈아가며 보면서 반가운 듯 물었다.

"당신, 케냐에서 왔어요?"

"나는 케냐에 사는데 한국 갔다가 다시 케냐로 들어가는 중입니다."

조금 전에 보았던 남자 직원과 같이 그녀의 고향도 케냐였다.

도하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순수한 카타르인은 찾아보기 드물다. 영어를 사용하는 필리핀계 또는 아프리카에서도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곳에서 온 케냐인이 많았다. 서부 아프리카는 불어를 쓰고 동부 아프리카 중에는 케냐가 가장 영어를 잘하는 곳이다 보니 내 눈에 유난히 케냐인이 들어왔는지 모른다. 나는 도하 공항 안에서 나의 제2의 고향인 케냐인을 만난 것이 괜히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안했다.


나는 두 번째 식사를 하기 위해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푸드코너에 갔다. 남편과 셋째는 짐을 지키기 위해 우리 다음으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워낙 한국음식에 길들여진 나는 국물이 들어간 음식이 당겼다. 푸드코너에서 피자나 파스타나 고기음식보다는 아무래도 짭짤한 타이음식을 먹고 싶었다. 나는 피곤에 지쳐있는 직원에게 치킨 누들을 주문했다. 그녀는 분명히 나의 영어를 알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뭐라, 뭐라 다시 이야기를 하며 딴짓을 했다.

나는 기분이 상해서 아들에게 대신 주문을 해 달라고 했다. 음식은 제대로 나왔지만 멘붕이 되어서 아이들과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 아~내 영어를 아줌마가 못 달아 듣네. 지금, 영어 못한 다고 무시한 거야?'

영어권 나라인 케냐에서 조차 이런 모멸감을 못 느꼈는데 자존심이 확 상해 버렸다. 다른 때 같으면 '이럴 수도 있지!' 라며 지나갔을 일이었지만 목에 뭐가 꽉 막힌 듯 치욕스러움이 부글부글 올라왔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어느 분이 물었다.

"케냐에서 사시니 영어를 잘하시겠어요?"

"영어가 안돼서 스왈리어로 말해요."

몇 시간 전까지 만 해도 영어를 못 해도 당당히 어깨를 폈던 나였다. 한국이든 케냐이든 누구 앞에서든 나름 씩씩하던 내가,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시켰다는 것에 기가 팍 죽었다.

생뚱맞게도 영어라는 공포심이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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