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맛도 없는 것 같지만 오래 남는 것들
12월의 마지막 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평양냉면을 먹으러 갔다.
평양냉면은 하도 맛없다는 소문이 많아 그동안 일부러 피해왔던 음식이었다.
동네에서 평양냉면 맛집을 찾아 평양냉면과 수육을 시켰다.
그리고 별 기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냉면 한 젓가락을 들었다.
살얼음 하나 없이 맑은 육수 속으로 메밀면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조심스레 그릇을 들어 국물을 마시니, 차갑고 깨끗한 육향이 목을 타고 잔잔하게 넘어갔다.
아, 이 슴슴한 맛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 맛도 없는 것 같은데, 국물을 한 모금 들이키니 시원하고 담백하다.
도대체 이 묘한 맛은 무엇일까.
평양냉면을 먹고 나면 다른 음식들이 조금 시끄럽게 느껴진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먹으면서 생각했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슴슴하지만 담백한 글, 아무 맛도 없는 것 같지만 오래 남는 글,
달지 않지만 시원하고 절제된 품위가 있는 글을.
힘들고 어려울 때 문득 떠올라, 마음속에서 자꾸 생각나는 그런 글을.
죽기 전에 평양냉면 같은 글 한 자락이라도 써낼 수 있다면 좋겠다.
아마 그러기 위해서는 내 일상부터도 그런 슴슴함을 품어야 할 것이다.
조미료를 덜어내고 달지도 짜지도 않게. 담백한 맛을 찾으며.
이 슴슴한 마음으로 가슴을 벌려 새해를 크게 안아본다.
오라 슴슴함이여!
오라 2026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