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이다. 6월 어느 날 오후 4시 무렵, 조카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기가 아픈 것 같지는 않은데 온종일 안아달라고만 한다, 안고 있으면 괜찮은데 내려놓기만 하면 자지러지게 운다, 그동안 전혀 그러지 않았는데 며칠 전부터 그런다, 그날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해 아기를 안고 어찌어찌 볼일까지 봐야만 했다’라는 하소연이었다.
2월 말 출산한 조카였다. 백일 며칠 후였다. 가족끼리만 밥을 먹는다고 했던 것이 생각나 혹시 외부 손님이 오기도 했나? 물어보니 ”지방에 사시는 어머니 형제들이(여섯 분이) 친척 잔치에 왔다가 집에 들러 밥도 먹고 한나절 가량 있다 가셨다“고 한다.
“아무래도 어른들 여러 명이 한꺼번에 가서 아기가 놀란 것 같다. 아기로선 낯선 사람들이 갑자기 우르르 나타나니 본능적으로 긴장할 수 있겠지. 엄마하고 떼어놓을까 봐 불안했겠고. 어지간한 집안일은 미루고 아기만 꼭 안고 깊이 잠들게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처럼 조언했다. 역시 그랬나 보다. 그로부터 몇 시간 지난 저녁 아홉 시 무렵 메시지가 왔다. “하라는 대로 했더니 아기가 많이 안정되었다”는 것. 그래서 “그래도 아기는 한동안 불안해할지도 모른다. 이삼일 더 아기 곁에만 있는 것이 좋겠다”며 격려했다.
코로나 19 덕분에 거의 없어졌었는데 최근 다시 조금씩 늘고 있는 것이 있다. '누군가의 방문'이다.
유독 외부 사람들 방문이 잦은 집이 있다. 심지어는 산후조리 기간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모두 만나겠다는 계획이라도 세운 것인지 달력에 정리해놓고 이삼일에 한 번꼴로 누군가를 맞이하는 산모도 있었다.
아마도 산욕기를 지나온 사람들은 다들 공감할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막막하고 힘들고, 나만 세상에서 동떨어진 듯한 고립감도 수시로 몰아치고, 아기가 소중하고 사랑스럽긴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뭔가를 포기해야만 하는 데서 오는 상실감, 명쾌하지 못한 것들이 잔뜩 엉켜 있는 그런, 복잡하고 막연히 억울한 그런 산욕기의 감정을.
그래서 ‘한두 명의 친구라면 놀러 오는 것도 괜찮겠다. 기분 전환이 되겠다.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산모의 정신 건강에 좋겠다, 산후회복에 도움 될지도 몰라!’로 생각하는 쪽이었다.
미뤄 짐작, 가까운 곳에 부모가 사는 경우는 수시로 들락거리며 보살펴야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혼자 사신다면 오셔서 함께 밥 먹었으면 좋겠다고 먼저 제안하기도 하고, 내가 퇴근 후 오셔서 육아를 도와주는 경우라면 밥이나 반찬을 좀 더 하는 등으로 독려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이젠 "자주 오가는 가족이라면 몰라도 남이라면 가급 백일 이후 방문"을 권하곤 한다.
손님 접대는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을 산모들 스스로 잘 안다. 그래서 산모가 먹고 싶어 하는 것 위주로 사와 나눠 먹거나, 주문해 먹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어쩌면 친구가 찾아오는 것쯤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산모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솔직히 많이 불편하다.
아기를 돌보며 집안일까지 해주기는 절대 쉽지 않다. 어떤 경우에든 매일 해줘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거의 매일 시간을 쪼개가며 해준다. 그래서 아기가 유독 보채 많이 안아줘야 하는 날엔 동동거리며 일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손님이 오면 매일 그 시간 무렵에 하던 일을 미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산모가 감당해야 하는 일도 일어난다.
그래도 산모가 원하는 일이라 선뜻 뭐라 말하지 못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급 백일 전에는 방문하지 말았으면…….”, 그 이유를 보다 적극적으로 설명하곤 한다. 꼭 봐야 한다면 차라리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고 오는 것이 기분 전환에 더 좋겠다 돌려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백일 전후 무렵까지 방문을 자제했으면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손님이 왔다 간 후 아기의 눈에 띄는 변화 때문이다.
크게 상관없는 아기들이 많다. 그런데 간혹 이유 없이 더욱 안기려 하거나, 평소보다 덜 먹는 등 유독 민감해지는 아기도 있다. 특히 어린 아이가 손님 속에 있는 경우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지기도 한다. 왠지 부산스럽다. 아기들의 이런 변화에 대해 조카의 경우처럼 “불안을 느껴서”라는 전문가도 있고, “설레어서”라는 전문가도 있다.
솔직히 어떤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8개월 무렵부터 낯을 가린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두 달밖에 되지 않는 아기도 낯선 얼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거나(겁먹은 그런), 울음을 터트리는 아기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여하간 조카의 경우처럼 손님이 왔다 간 후 눈에 띄게 유독 더 보채거나 안기려 드는 아기들이 많다. 그걸로 그치지 않고 밤으로까지 이어지거나 다음날까지 여파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아기들만의 문제일까. “한 시간 조금 넘었는데(놀다 갔는데) 생각보다 힘드네요”를 호소하는 산모도 많다. 일주일에 두 번 친구들을 오게 해 만난 후 피로로 잇몸이 들떠 치과 치료를 하러 다닌 산모도 있었다. 손님 방문으로 민감해진 아기 때문에 더욱 힘든 밤을 지내는 산모도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삼칠일 동안 금줄을 쳐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는 옛 풍습을 그야말로 케케묵은 옛날 풍습으로만 생각하는 산모들도 많다. 혹은 그처럼 조심했다는 삼칠일만 지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산모들도 많다. 코로나 이전엔 일상의 감염에 그리 민감한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방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처럼 아기는 물론 산모에게 그다지 좋지 않다. 덧붙이면, 백일 정도 되면 아기들은 모든 면에서 안정적이다. 산책처럼 어떤 변화를 좋아하는 아기도 많다. 산모의 몸도 많이 회복된다. 감염 가능성만 없다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