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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훌리 Oct 12. 2020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종례시간 읽어주는 담임의 편지 

자해. 자기에게 스스로 해를 입히는 행동을 말해. 자해를 해 본 적이 있니? 생각보다 꽤 많은 학생들이 경험을 해보았더구나. 난 너희들이 마음이 이렇게까지 곪아가고 있는지 몰랐어. 너희가 얼마나 힘들고 아픈지 다른 어른들은 알까? 세상에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야.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아파하고 있어요." 말해주고 싶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아이들이 마음을 다쳐 정기적으로 상담을 받고 있고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는 걸 선생님은 보호자 분들에게 조차 말씀드릴 수가 없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굉장히 조심스럽고 고민이 된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보다 너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게 닫혀있는 너희의 마음을 열기가 쉽지는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아. 그래서 우선은 선생님은 선생님의 마음을 열고 너희에게 전하기로 했어. 


자기 자신을 해칠 정도로 미워하는 그 마음을 잘 알아 선생님 마음이 아파.


마음이 너무 괴로울 때  다른 고통으로 잊기 위해 하는 경우도 있고 자해하는 이유는 다양해. 그 기저에는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뿌리 깊게 박혀 있지. 우리는 어떤 이유로 자신을 미워하기 시작했을까. 친구에게 들은 모욕적인 말이 시작이었을까, 아니면 계속되는 실패에 어느 것 하나 해내지 못하는 내 모습이 시작이었을까. 어떤 이유에서든 나를 상처 입히는 행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건 옳지 않고 이해받아서는 안 되는 행동이야.  그런데 어쩌지. 나는 자꾸 너희 마음이 공감이 돼. 

선생님도 다 알아. 마음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 그리고 그 생각들은 내가 싫은 이유를 합리화시키며 만들어 내. 오늘 미웠던 나는 당연히 하루를 잘 살아내지 못하고 그런 나에게 또다시 실망하는 날이 계속 돼. 차라리 내가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나를 해치려 시도하겠지. 너희에게 '늘 행복해라.',  '자신을 사랑해라.' 말하는 선생님도 한 때는 나 자신을 미치도록 미워했었단다. 그래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 자신이 싫어지는 너희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 


생각의 끈을 잘라내야 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조금씩 변해가야 해. 인생을 살기로 결정했다면 혹은 살아야 하는 거라고 받아들였다면 말이야. 오늘부터 우리는 나에게 작은 칭찬을 해주기로 약속하자.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나를 격려해주고, 실습실에서 한 실수를 떠올리기보다 맛있게 구워낸 빵을 만든 나를 칭찬하고, 친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준 나를 칭찬하자. 칭찬이 하나씩 쌓이다 보면 어느 날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인데?'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올 거야.    

그리고 다른 고통으로 마음의 고통을 잊으려 하지 말자. 고통을 잊기 위해 자신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는 건 옳지 않아.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고통을 마주하자. 눈물이 나니? 마음의 고통을 견딜 수 없니? 그렇다 하더라도 너희의 손으로 너희를 상처주지는 말아. 차라리 울어. 너희의 아픔을 표현해. 그게 더 건강하고 바른 방법이야. 너희가 아프다고 말할 때 너희 곁에 반드시 누군가가 있어 줄 거야. 그 사람과 함께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어. 


사랑하는 아이들아. 너무 마음이 아픈 날엔 선생님을 찾아오렴. 혼자 버티기 위해 처절한 시간을 보내지 말고 선생님과 함께 이겨내 보자. 너희는 결코 혼자가 아니란다. 오늘이 버텨야 하는 날은 아니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수고했어. 안녕.


2020.10.12. 선생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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