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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긋따 May 09. 2024

안 좋은 일 옆엔 또 안 좋은 일

K-직장인 생존발악 리얼수기

나는 자존감이 그리 높은 사람이 아니다.

평소 나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커서, 내가 처한 현실의 어두운 면만 크게 부각하려고 애를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얼마 전 회사 정기인사 시즌이 되어 나는 사전에 일 편하고, 인적구성이 좋다는 한 부서와 운 좋게 협의가 되어 그곳에 가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실제 인사발령 공고문의 내 이름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생뚱맞은 부서와 매칭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가야 할 자리에는 질병휴직 복직자가 배치되었다.

보통 사전에 협의된 경우 큰 이변이 없는 한 서로 매칭한 대로 발령이 나는 것이 우리 회사의 통상적인 룰이다. 주변 선배들 또한 일대일 매칭일 경우에는 별일 없으면, 그대로 발령이 날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의 지나친 기우를 나무랐다. 하지만 역시나 이 정도의 낮은 확률의 불운 또한 나는 피해 가지 못한 것이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일이 너무 순조로웠어'

나는 아직 이동할 자리를 찾지 못한 다른 동료들과 비교하며 잠시나마 속으로 혼자 우월감을 느꼈던 나 자신을 자책하고 자학하였다.

새로 이동한 부서는 신생부서라서 어수선하고, 체계도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일이 많은...간단히 말해 기피부서였다.

그리고 항상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했던가.

나의 새로운 팀장 또한 일명 마녀라고 불리는 이미 회사 내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오로지 본인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 팀원들을 갈아 넣는 무서운 워커홀릭으로, 인사발령 전 잠깐 팀 인사를 갔는데, 팀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시들다 금방이라도 꺾일 듯한 마른 나뭇가지 같았다.

아직 실제로 겪지는 않았지만, 아마 앞으로 겪게 될 이곳에서의 나날들이 나의 7년 간의 직장생활 중 가장 큰 시련이 될 수도 있겠다는 무서운 직감이 들었다.

나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나의 인생에서 어두웠던 장면들만 모아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 상황에서 격무와 시달리면서도 낯선 나를 반겨주고, 배려를 해주는 부서 직원들의 따뜻한 호의는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또한 좋은 부서로 발령 난 동기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에만 오롯이 골몰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무기력한 시간을 보냈다.

@geut__ta 직장공감툰·일러스트

그렇게 한 달을 보내던 어느 날, 끊임없이 나 자신을 벼랑으로 몰고만 가는 모습이 불쌍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똑같은 조건에서도 부단히 버텨내고 있는 다른 직원들의 모습이 나의 시선에 담겼다.

'왜 나만 이 상황을 불행하다고 생각해서 매일매일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걸까.'

이런다고 내일이 달라지지도 않는데 말이야

 원치 않았던 부서에 원치 않았던 자리였지만, 이 또한 내 인생에서 내가 겪어야 하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어쩌면 이 일이 내게 일어난 이유가 있을 거야'

의식이 바뀐 그날 이후, 나는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밥 먹듯이 하는 야근으로 나는 야근수당을 두둑이 챙길 수 있었고, 저축도 그만큼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야근으로 인해 직장에 매어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아닌 나의 진짜 미래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다. 직장에 다니는 한, 어느 부서를 가냐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10년 후, 20년 후에도 나의 모습은 지금과 같을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하니, 직장에 기대지 않고 나 스스로의 경쟁력을 키워야겠다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과 편한 일을 하며 큰 불편 없는 직장생활을 하였다면, 절대 지금과 같은 고민을 진지하게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만 별이 보이듯이 사람은 불편함을 느껴야 변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이 현재 나의 삶의 방향을 바꿔야만 내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암시를 해주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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