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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긋따 May 23. 2024

무지성의 갓생은 골로 갑니다.-②

자기부정의 최후

병원에서는 나의 현재 증상을 고려하여 3개월 간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발급해 주었다.

가뜩이나 일이 많은 부서에서 3개월이나 자리를 비우겠다는 이야기를 팀원들에게 하는 것 또한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 역시 다른 이들이 갑자기 떠난 자리의 사정을 이해해 주고 대신 채워주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과거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나를 돌보지 않고 처해진 환경에서 애쓰느라 최선을 다했으니, 잠시 가해자가 되더라도 더 이상 죄스러워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현재 나의 건강과 나의 인생만 집중하기로 독하게 결심했다.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단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침대로부터 빨리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눈을 뜨면 벌어질 모든 세상 일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일단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동안은 머리와 몸이 따로 움직여 좀처럼 우울감에서 헤어 나오기 매우 힘들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우울감은 멈추지 않고 나의 하루하루를 캄캄하게만 조여왔다. 나는 하루아침에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욕심을 버리고 매일 10분씩이라도 시간을 앞당겨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운동을 하러 바로 밖으로 나갔다. 우울증 약보다 운동이 훨씬 우울증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다. 운동을 하고 나면 불안한 기분이 사라지고, 다시 용기를 내봐도 될 것 같은 긍정적인 기운이 온몸을 감돌았다. 그리고 내가 왜 이렇게 아프게 된 것인지에 대한 원인을 찾아봐야겠다는 의지가 생겨났다.


나의 인생은 늘 쉽지 않았다고 생각해 왔다. 또래 친구들은 무난히 통과하는 길도, 나는 수만 가지의 장애물을 극복하고 나서야 겨우 걸어올 수 있었던 적이 매우 많았다. 그 와중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하여 더 큰 고난을 맞닥뜨릴 때면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 빠져 '나는 도대체 왜 항상 이 모양인 걸까'하며 스스로를 비하하고 과도한 자기 비난을 일삼곤 했다. 이제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나는 왜 그토록 불안해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그 결핍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결핍의 실체를 파악하고 나면 적어도 더 이상 두려움에 압도당하지는 않게 될 테니 말이다.


결국 나는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인정은 회사에서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인정이어야만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그것을 원했던 이유는 나와 가장 가까운 동료들이 그러한 인정을 받고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내게도 간절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욕구는 7년간 채워지지 않은 채로 남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상처들이 자주 만들어지면서 무너져버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쉼표를 붙이고, 나 자신에 대하여 집중하고 천천히 알아가기 위해 힘을 조금 빼니, 예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인생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https://www.instagram.com/geut__ta/     직장공감툰•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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