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 심심한 맛이 그리울 때
겨울 농한기 찬바람 속 창밖 풍경은 기대할 것 없이 그저 황량했다.
나라의 난데없는 변고에 더해 한밤중 느닷없는 지진굉음이 잠을 깨우더니 이곳저곳의 삼월 산불 피해로 어수선한 산하에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꽃이 피고 진다. 이제 눈은 한가하고 싶지만 몸은 더 바빠지고 낮은 길어지지만 하루는 짧아진다. 어느덧 분꽃나무의 하얀 꽃이 활짝 피어 분(粉)내에 취하게 하더니 장미의 계절 오월이 눈앞에 있다.
지난해 가을, 햇볕 좋던 날 바람결에 반짝이며 빛나는 감잎과 잎사이로 무수히 달린 감이 노랗게 익어가는 것을 보며 복상골에서 살아가는 얘기를 산문으로 써 볼까? 했을 때가 엊그제 같다. 심심하면서도 들으면 미소 지을만하거나 몰라도 그만이지만 알아도 손해 될 것 없는 생활 속의 얘깃거리를 틈틈이 짧게 적어보자 단순하게 시작했다. 일상에 마주치는 온갖 사물과 식물과 동물, 풀 뽑다가 돌 캐다가, 동네 분들과 차를 마시며 떠올리던 상념까지 다 글감이 됐다.
‘연재한다’라는 약속은 자발적이지만 분명 행위적 속박이기도 하다. 일주일이 왜 이리 빨리 지나가는지, 화요일에서 토요일이 이렇게나 휙 지나가는지 새삼스러웠다. 한편으로는 내가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게 ‘연재’라는 무형의 괴물이 쿵쿵 지축을 울리며 쫓아오는 느낌을 맛보기도 했다. 즐겁게 시간에 쫓기다 보면 어느 순간 거꾸로 시간을 쫓는 듯한 추진력이 생긴다. ‘바쁠수록 시간 난다’는 나에게는 실증된 진리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라는 걸 실감한다.
거의 다 써놓고 버리고 주제를 바꿔 부랴부랴 다시 쓴 글도 있다. 그럴 때마다 문득 연꽃 씨앗 뻥튀기 같은 심심한 맛이, 몇 알 집어 먹으면 이내 질리는 팝콘맛이 돼 가는 것을 스스로 느낄 때도 있었다. 그래도 쓰다 보면 써진다는 게 신기하다. 잔소리를 듣든 말든 관찰하고 구경하고 해찰하다 멍 때리는 자유로운 시간 부자의 영지엔 심심한 얘깃거리는 널려있다.
누군가 물어오셨다. 연꽃씨 뻥튀기가 있냐고? 어떤 맛이냐고?
연꽃씨 뻥튀기 있다. 맛은 글쎄? 뭔 맛이 있어야 달콤이든 매콤이든 쓰다 시다 할 것인데 난감한 질문이다. 아무 맛이 없는 맛이라는 형용 모순인 맛이라고 해야겠다.
인도의 하숙집 여주인이 우연히 퍼다 준 연꽃씨 뻥튀기를 한주먹씩 움켜쥐고 한 알씩 먹다 보니 큰 바가지에 가득 든 뻥튀기가 앉은자리에서 내입으로 다 들어왔다. 그것도 거나하게 한 끼를 먹은 뒤에 후식처럼 맛본 게 그렇게 된 거다. 잘 먹어서 반가웠는지 다음날 큰 베개만 한 크기의 비닐봉지에 가득 든 연꽃씨 뻥튀기를 내 방에 넣어주었다. 책을 읽을 때도 노트북을 켜고 뭔가를 할 때도 왼손이 끊임없이 뻥튀기 알을 집어서 입으로 넣고 입은 하염없이 받아먹는다. 이 반사적인 연결 동작에 나의 의지는 없다.
심심한데 계속 손이 가는~ 새우깡 광고는 진정 고전이 된 명작 광고다 ~ 그런 맛처럼 들으면 계속 들어도 질리지 않을 심심한 이야기꾼이고 싶다. 연꽃씨 뻥튀기는 중독성이 있지만 또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미덕이 함께하는 심심풀이 간식이다. 눈앞에 없으면 이내 잊는다. 그러다가도 문득 그 심심한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다른 주제의 연꽃씨 뻥튀기 같은 심심한 이야기를 적고 싶다.
우연하게 인연이 닿은 이곳 앙성 복상골에서 심심한 이야기를 산문으로 풀어내며 나는 뻥튀기를 입에 넣을 때의 그런 기분이었지만 읽는 분들도 그런 맛으로 읽으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동안 심심한 글 시간 내어 읽어주시고 좋아해 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뱀다리: 연꽃씨 뻥튀기 같은 심심한 얘기를 더 읽고 싶은 분께 책 한 권 소개합니다. 맛없어도 하염없이 읽었다는 분들이 몇 분 계십니다. 서점에 꽂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렴하게 두껍지만 많이 팔린 책이 아니니 출판사 창고에 그득 할 것입니다.
제목 ‘아밤에서 사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