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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May 09. 2024

닮음을 사랑한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기계들이 모여사는 도시에 산다.


별다른 목적 없이 집을 나선 나는 다른 이들의 부지런함을 엿본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가게의 문을 다시금 여는 사람들, 그 보다 빨리 회사로 출근하여 사회의 톱니바퀴가 되는 사람들, 그보다도 빠른 해조차 제대로 일어나기 전의 새벽에 움직이기 시작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열심히 시간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동질감은 무섭다.


그들은 나를 소속되게 만들어 준다.


아무것도 하고 지내지 않아도 남들보다 뒤처지거나 시간에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닌,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곤 한다.


또한 같은 시간을 공유함에 따라 더욱더 많은 공통 관심사와 일상을 공유하게 된다.


그 시간이 비록 짧을지라도 예전부터 오래 알고 지내던 이가 멀리 가서 이따금 연락을 하는 것보다 가까이서 같음을 공유하는 이와 더욱 가깝게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시간만 그러한가, 나는 이 주제를 생각하며 일전의 경험들이 떠오른다.


아이들을 볼 때에 모두 귀여운 아이들이지만 특히나 더욱 챙겨주고 싶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개중에 특출 나게 귀엽다거나 나한테 하는 행동이 다른 이들보다 호감적이어서 같은 이유도 있겠다만 근본적인 것은 따로 있었다.


아이들의 행동에서 한 번씩 내가 보였다.


말하는 것을 참 좋아해서 어릴 때에 수다쟁이였던 나는, 나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있었던 일들을 다 얘기하려는 아이들을 귀담아 들어주고 반응해 주었다.


그런 단순한 행동만으로 말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이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안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많이 안아주었다.


어른이 나를 안아주는 것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나 또한 경험했기에.


그렇게 나와 닮은 아이들을 고의는 아니더라도 자연스레 조금씩 더 챙겨주었다.


사랑은 어떠했는가.


물론 외관상 보기 좋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눈이 가기 마련, 예쁘고 몸매 좋은 이들을 좋아했다.


그러다 조금씩 이상형이 생기기 시작한다.


처음에야 교과서적인 이상형들이 대부분, 누구를 닮았다거나 성격이 어떻다거나 하는.


점점 바라는 이상형이 구체화되기 시작할 때에는 내가 스스로 원하는 모습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게 됐다.


내가 꿈꾸는 이상을 이미 가지고 있는 이들이 이상형이 되었다.


예쁜 사람보다 더더욱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런 만큼 그런 모습들이 얼핏 보이는 사람들에게 순식간에 마음이 뺏겨버리곤 한다.


아무런 이유와 대가 없이 타인에게 스스럼없이 호의를 건네고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것을 굳건히 지킬 줄 알며 항시 예의와 배려, 존중을 중요시 생각하는 이들, 멋지지 않은가.


나는 이런 모습이 당연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하는 덕목들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에 만나온 이들 중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런 모습을 가진 이들을 사랑하게 됐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누구에게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 이를 깨달았을 때 내 생각의 기준은 다시 세워졌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스스로를 지독히 객관적으로 보면서도 안 좋은 부분에 관대함이 새어 나온다.


가끔 내가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이들에게 마음을 가질 때면 조심히 주의 깊게 그들을 알려한다.


지금의 내가 가장 닮고 싶어 하는, 가장 배우고 싶어 하는 모습을 가진 이들일 테니.


물론 이 모든 것이 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마음이 뺏겼을 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닮아 있는 모습에 동질감을 느껴버리는 것일까.


그래,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와 닮은 이를 그곳에서 꺼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버린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그런 이들을 모른 체하지 않고 안아 올려주는 모습이기에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나로 인해서 내가 바라는 모습에 가까워지게, 사회의 올바른 구성원이 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는 이가 될 수 있게 한다면 그 기쁨이 절대 작을 리 없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가 보다.


한없이 가깝고 쉬우며 웃음을 주는 이가 되면서도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며 구해주는 영웅이.


이 삭막한 기계회된 사회에서 나라도 그들에게 따스함을 베풀 수 있는 가까운 영웅이 되고 싶은가 보다.


아, 나는 과거의 나와 닮은 이들을 사랑하고 지금의 나와 닮은 이들을 사랑하고 미래의 나와 닮은 이들을 사랑한다.


정말 지독한 나르시시즘이다.


이마저도 사랑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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