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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May 23. 2024

소속이란 사랑

마치 회사와 같은 연애

탁!


일어나자마자 불을 켰다. 시계는 7시 30분을 가리킨다.


일을 그만둔 지 한 달이 지났음에도 항상 이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처음에야 이제는 일도 안 가니 늦게까지 놀고 해가 중천을 넘어가서야 일어나려고 애를 썼지만 지쳐버린 몸뚱이가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노는 것에 지쳐 신데렐라 마냥 12시가 되면 힘을 잃었다. 그래서 그냥 건강한 삶을 택해봤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나의 하루를 길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처음 회사를 그만둘 때에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똑같은 활동을 하면서 하루의 절반이상을 날려버린다는 생각에 쳇바퀴를 탈출하고 싶단 욕구가 강했지만 정작 그만두고 나서는 오히려 할 게 없어서 당황스럽다.


아무렴 편한 것은 당연하다. 나에게 말도 안 되는 딴지를 걸며 스트레스를 주는 상사들도 없고 괜히 눈치 보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친한 척해야 하는 동료들도 없다. 사람이 싫어진 이유는 지독하게 서로를 흉보지 못해 안달 난 이들과 함께 지낸 시간들 때문일 것이다.


고작해야 3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경험했던 사회생활은 나에게 자유를 꿈꾸게 만들었다. 학창 시절에 조금 상상만 했었던 꿈을 이제 와서야 한 번 이뤄보고 죽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으로 말도 안 되는 도전을 시작했다. 아무런 준비도 목표도 없지만 일단은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짧은 일탈들을 뒤로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 이후에는 나의 목표를 만들기 위해 안달이었다. 관련된 서적을 무작정 다 읽고 온갖 커뮤니티에서 관련된 얘기를 모두 찾아 듣고 보았다.


하지만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만 가던 사람이 이제 와서 자신만의 목표를 세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나 보다. 또다시 누군가를 따라 하려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 이리저리 알아보다가 우연히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을 알게 됐다.


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커뮤니티에서 여러 정보를 교환하고 자신의 목표를 설명하고 현재까지 이뤄낸 것을 말하면서 조금씩 구체화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나도 이들과 함께 목표에 대해 더욱 많이 말하게 된다면 좀 더 깊이 있게 빠질 수 있지 않을까,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라면 서로를 위해 더욱 마음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지게 된 소속감에 빠져들었다.


나는 진심이었다. 이들이 가진 고민을 주의 깊게 듣고 같이 깊은 고민을 해줬다. 진심을 담아 공감했고 함께 해주려 노력했다. 어쩌다 기쁜 소식이 들려올 때면 직접 축하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내 진심이 느껴지길 바랐다. 그리고 이들도 나처럼 서로를 대하는 마음이 진심이라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생긴 현실 정모의 시간에 나는 설레는 마음을 가졌다. 학창 시절에 꾸던 꿈을 어른이 되어서야 남들과 공유하고 신나게 떠들 수 있다는 생각에 마치 수학여행을 기다리는 학생이 된 것처럼 잠을 설쳤다. 하지만 그 마음은 정모를 시작한 지 단 5분 만에 퇴사를 꿈꾸던 사회인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짙은 가식-이 제일 어울리는 모임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이를 숨길 생각조차 보이지 않았다. 분명 악의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뛰어나고 앞서있어야 한다는 욕망으로 자리에 있는 이들 위에 서있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남들을 위로하는 손짓을 하지만 그들보다 위에 서있단 눈이 보였고 남의 행복과 행운을 칭찬하는 말을 내뱉는 입이지만 뒤로 돌아 곱씹어 흉봤다.


그리워졌다. 이 사실을 알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랬다면 나는 언젠가 나의 목표에 분명한 결실이 생길 때까지 이들이 해주는 가증 섞인 위로와 응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체 행복한 소속감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해야 회사라는 틀에 묶인 이들과 가졌던 얕은 소속감이 더 끈끈해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그 이후에 이 커뮤니티에서 더 이상 활동하지 않았다. 지겨웠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이런 말도 안 되는 관계를 더 유지하는 데에 쓰고 싶지 않았다.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다. 그때 이후로 새로운 목표를 세우지도 않았고 뭔가를 이뤄내지도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수중에 가진 건 줄었으며 함께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이 사회에서 나만 동떨어져 있는 부적응자 같이 느껴진다. 밖을 지나가는 사람이 일을 하러 가는지, 친구를 만나러 가는지, 혼자 어느 곳을 향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러움을 넘어서 시기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다들 걷는다. 방향이 존재한다. 목적지도 있을 것이다. 한없이 뒤처져있다. 나의 시간과 걸음은 고작해야 이 좁은 방 안에 갇혀 있다.


그리워진다. 구속이라 느껴졌던 소속과 주변에서 나를 감시한다고 느껴졌던 눈빛들, 매시간 똑같이 출퇴근을 하게 되는 강제적인 규칙성, 그리고 그에 대한 정확한 수치의 보상들이 나에게 의미 없는 것이라 느껴졌던 시간이 그리워진다.


재능과 뒷배 없이는 함부로 얄팍한 가진 것을 믿고 뛰어들어서는 안 됐다. 세상에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말라는 소리들을 들을 때 미친 소리라고 생각했음에도 굳이 한 번 믿어보며 뛰어들었던 내 탓이다. 나에게 한계가 없을지라도 나의 생활엔 분명히 존재했다.


나는 퇴사 후에 잃어버린 것만 늘었다. 내 커리어는 끊겼고 안정적인 수입과 직장도 사라졌으며 사회적 관계도 소실되어 가는 중이다. 아마 이 사회에서 내 존재자체가 지워지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이미 나라에서는 나를 잊었다. 매일같이 뜯어가던 세금에 대한 고지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 가진 것이 없다.


보고 싶어 져서 괜히 과거를 뒤적거린다. 이미 나를 잊고 제대로 돌아가고 있을 회사일 텐데. 뛰쳐 나간이를 신경 쓸 틈이 없을 테지만 뛰쳐나온 이는 남아도는 것이 그럴 시간이다. 아마 이 그리움을 평생 전하지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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