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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훈 Jun 06. 2024

조각나버린 사랑

사랑에 총량은 없다

“사랑 같아.”


다시는 입 밖으로 뱉지 않으리 다짐했던 단어를 결국에 말하고 말았다. 그동안 지켜온 다짐이 무색할 만큼 순간적으로 뱉어버린 말. 나는 이 말이 두려웠다.


모든 것을 사랑했다. 내가 편히 누울 수 있는 침대와 베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파란 하늘과 하얀 뭉게구름으로 뒤덮인 하늘, 푸른 바다와 파릇한 정원, 맛있는 음식과 재밌는 취미, 함께하는 사람들과 가족들,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마치 부처 같다고 말했다. 어떻게 그 모든 순간에서 모든 것을 사랑하고 아낌없이 표현하며 밝게 살아가느냐고.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사랑할 이유가 충분한 것들을 사랑했을 뿐이며 평범한 사람처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것도 존재했고 아프고 슬플 때도 있었다.


내 사랑이 헤픈 것일까-하는 고민을 했다. 그럴 수 있다. 보통 맑은 날에 푸른 하늘을 볼 때면 다들 ‘오늘 날씨 좋다.’ 혹은 ‘하늘 예쁘네.‘ 정도로 표현하곤 하지 ’푸른 하늘을 너무 사랑해.’ 같은 식으로 말하진 않는다. 그럼 나는 보통의 사람들보다 사랑의 기준이 낮은 것일까. 그래서 타인들의 눈에 가식적인 사랑으로 보이는 것일까.


사랑과 호감, 사랑과 긍정, 사랑과 관심- 이 모든 것이 같은 의미일까. 아마 뒤에서 나를 몇 번이고 씹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고작해야 별 것 아닌 단순한 기쁨에도 사랑이란 단어를 남발해 표현하려 애쓰는 관종 같은 놈으로 치부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싫어하는 이들이 그랬을 수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음은 그런 사랑 따위는 언제든지 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표현할 수 있는 만큼 가벼운 사랑이니까.


하지만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사랑이 가벼운 놈.’ 이따위의 말이 뒤에서 돌아다녔다. 자주 사랑을 말해서 별명처럼 이름 앞에 사랑을 붙여 말해주던 친구들의 장난이 그 얘기를 들은 후부터는 그저 장난이 아닌 나를 비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결코 가벼운 사람이 아닌데.


왜 그들에게 사랑은 총량이 정해져 있을까. 그냥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감정인데 왜 정해진 규격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걸까. 그들에게 사랑은 고작해야 백분율이다. 100의 사랑을 군데군데 퍼센티지를 나누어 정해놓을 뿐이다. 내 사랑은 그렇지 않은데.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나에게 베스킨라빈스의 31가지 아이스크림은 각각 10 이상의 사랑을 받고 있을 것이다. 고작해야 좋아하는 음식 하나에 300이 넘는 사랑을 채웠다.


사랑의 정도가 낮으면 그저 긍정적인 것인가? 단순히 좋다 정도로만 끝내야 하는 반응을 굳이 사랑을 덧붙여 말하는 나의 언어습관이 잘못된 것일까.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정도가 있어야 하면 단순히 호감일 뿐이어야 하는가? 단순히 좋은 친구, 사람이다 정도로 끝내야 하는 생각을 굳이 사랑에 빗대여 말하는 나의 사고방식이 잘못된 것일까.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꼭 절대적인 퍼센티지를 가져내지 못했다면 그저 관심일 뿐인가? 단순히 관심이라고 끝내야 하는 행동을 굳이 사랑에 빗대여 행하는 나의 행동거지가 잘못된 것일까. 왜 그들은 나에게도 정해진 통념을 집어넣는가.


적응해야 했다. 그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생각을 줄였다. 정확히는 내 사랑을 줄였다. 나는 이제 맑은 날을 좋아하고 침대와 베개를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에 관심을 가지고 좋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가진다. 그렇게 지낸 지 1년이 흘렀을 무렵, 내 이름 앞에 사랑이 붙여지는 일은 없어졌다.


내 사랑은 조각났다. 작은 사랑 여러 개를 덧붙이던 과거의 나는 없다. 큰 사랑에서 조금씩 떼어내 조각을 나눠주고 있다. 그 작은 조각들은 사랑이라 불리지 못한다. 나의 호감, 긍정, 관심은 그렇게 작아졌다.


그런 나에게 다가온 너는 신선했다. 한눈에 봐도 ‘아, 사랑받고 자랐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세상을 마냥 아름답고 좋은 곳으로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이유 모를 불쾌함이 올라올 때도 있었다. 결국엔 너도 나처럼 조각나겠지-하는 생각으로 너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아니었다. 너는 단단했다. 작아도 굳은 믿음이 있었고 주변의 날파리들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알짱거리지 말고 꺼지라는 태도를 가졌다. 점점 긍정적인 감정이 생겨났다. 나도 저 애처럼 단단했다면, 좀 더 내 사랑에 자신이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를 알고 싶어 져서 조금씩 가까운 태도를 보였다. 내 생각이 호감으로 바뀌었을 무렵, 나는 너에게 사랑을 뱉고 싶었다.


하지만 애써 눌렀다. 내가 지금 내뱉는 사랑 따위는 언제든지 내버려질 사소한 조각에 불과했다. 아마 내가 가진 감정은 단순한 이성에 대한 호감이라기보다는 동경에 가까웠다. 내가 견뎌내지 못한 것을 쉽게 해내는 너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가졌을 터. 그래서 관심을 가졌다. 어떻게 그렇게 커다랗고 단단한 사랑을 지니게 됐을까.


이런 내 모습에 아마 작은 사랑스티커가 조금씩 붙어졌었는지 너는 나를 편하게 여겼다. 쉽게 이런저런 얘기를 떠들다 불쑥 사랑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나는 내 얘기를 한 시간은 떠들었다. 나도 너처럼 그런 마음이 있었다는 둥, 어쩌다 이렇게 변했고 네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며 당당한 것은 좋지만 너무 단단하면 꺾여버리니 조심하라고, 고작해야 5살도 차이 나지 않으면서 꼰대 같은 말들을 내뱉었다.


너는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내 말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 이건 무슨 감정이에요?“


내 조각들이 다시금 모여들었다. 떨어졌다 붙은 만큼 전처럼 단단하지는 못해도 모든 것을 수용할 만큼 넓어졌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사랑을 참을 수 있는가. 나는 말했다.


“사랑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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