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가장 많은 교육을 받은 개념은 세 가지, 배려, 경청, 정직이었다. 항시 생각과 행동, 책임을 동선에 두고 고민하되 제일 우선시되어야 할 개념이 이 세 가지였다. 이것들이 도덕적으로 너무 중요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부분임은 알지만 의외로 모두 지키고 살기 힘들다.
최대한 모든 상황에서 지키려고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라진 것이 있다. 욕심. 만약 단체 중 누군가 손해를 봐야 하거나 양보를 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내가 포기하고 말지 뭐.’하는 마음이 크다. 이러다 보니 특정한 상황에서도 일정치까지 달성을 하면 만족하고 그 이상의 노력을 안 해버리는 경우가 컸다. 이 정도만 해도 되잖아, 굳이 여기서 더 할 필요 없잖아 하는 마음. 승부욕이 없다기보다는 목표가 평균치였다. 게임을 좋아해도 적당히 할 줄 아는 정도까지, 다른 일을 해도 A급, S급이 목표가 아닌 적당히 B+정도, 튀지 않고 그저 무난한 사람. 여기서 더 한다면 다른 부분에서 놓치는 게 생길까 봐-이런 마음으로 모든 것을 적당히. 지나와 생각하면 모든 부분에서 그러고 싶어 했던 것이 오히려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개중 특출 난 한 부분이 없다는 사실이 손해가 되었다. 글, 그림, 공부 전부 적당히만 해오다 보니 몸이 적응해 버려서 그 이상을 시도하려 하면 거부반응이 일 지경이다. 내가 해야 돼해야 돼해봤자 내 몸은 ‘이 정도 했는데 왜?’라는 말을 해버리고 수긍해 버린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런저런 분야에 도전을 해본 데에는 목적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거 해봐야지, 저거 만들어봐야지, 이렇게 해보고 싶다 같은 행동의 이유가 끝없이 생겨났었고 도전의식이 생겨났기에 시도할 수 있었다. 특히 도전하는 데에 큰 망설임을 두지 않았던 성격도 한몫 거들었다. 하지만 목표로 하는 부분은 없었다. 남들이 이루어낸 것이나 특별한 보상심리를 바라고 했던 것이 아니다. 보상이라고 한다면 그저 자기만족. 이런 성격 탓에 내가 만들어내는 것들엔 나의 개성은 들어있어도 큰 경쟁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나의 정처 없는 단순한 목적성은 어떤 일이던 시작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동기부여책이었다.
그런 와중에 몇 가지 목적을 달성했고 생각나는 것이 사라지고 도전보다 안전성을 찾게 됐다. 그러다 끝내 다다른 목적지는 취직. 그동안 꿈꿔서 이뤘고, 아직 이뤄나가는 중인 목적들과는 좀 달리 내가 원치 않아도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이 있고 다른 어떤 것보다 추상적이었다. 예술이라고 말하기 부끄럽지만 글, 그림 같은 창작물을 만들어나가다가 정형화되어 있고 점수가 있는 시스템에서 도전하는데 왜 더 추상적이냐는 말이 나오느냐-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바라는 것과 바라지 않는 것. 이 차이는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가고 싶은 회사, 직무 등 바라는 것 즉, 목표가 명확해야 하는 취준생활은 그동안 목표를 딱히 정해두지 않고 달리던 나에게 큰 짐이었다.
대충 정해둔 내 목표는 마치 빚과 같았다. 해야 하는 일을 매일, 매시간, 매분마다 미루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압박감. 하지만 그 꿈을 위해 나아가던 중 만난 벽들을 하나하나 넘으면서 쌓여가는 피로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기대감보다는 '아직도'라는 허탈함을 불렀고 딱히 한 것도 크게 없는데 번아웃이 오듯이 기력이 빠져나가곤 했다. 이 사실은 점점 더 나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느낌. 욕심이 없었던 나는 그런 눈에 보이는 큰 경쟁에 뛰어들어 나아갈 용기를 갖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처음에 말하고자 했던 바를 계속 이어오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러 다닌 것은 아마 지금 내 심경이 반영된 것이다. 지금의 나는 때때로 휘둘리더라도 결국에 하고자 했던 일을 시도해 보고 부딪힐 도전정신이 있었던 때와 달리 특별한 목표도 목적도 없이 그냥 막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학창 시절부터 이런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던 나에게 갑작스레 해야 하니까 하라고 명령하자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분. 그럼에도 어쩌겠는가. 두리뭉실한 목적에서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어떠한 형식으로든 결과물을 내야만 한다.
사회에 나온 이들에게 가장 큰 고민이 되는 부분일 것이다. '자유'라는 달콤한 말은 생각보다 많은 책임을 동반하는 것을 서서히 깨닫다가 직접 몸으로 느끼게 되는 시점. 이 아픔이 성장의 발판이 될지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지는 마음먹기에 달렸을 것인데, 그 마음이 참 잡기 힘들다. 정해진 기준이 있어 살아온 시간과 달리 스스로 그 기준을 정하고 목표를 세워야 하는 현실에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누군가는 지나온 시간에 쌓은 것이 아쉬워서 새로움을 도전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현실에 만족하는 법을 몰라 무리하게 뛰어든다. 어느 것이 정답이고 오답이다라고 표현할 수 없기에 각각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기준을 내린다. 거기서 본인이 정답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그 기준에 올라설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점이 욕심이 없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