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감정
묘한 계절 가을. 밝고 뜨거운 햇빛아래에서 시원한 공기가 몸을 덮어준다. 추위와 더위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애매한 날에 나는 요동친다. 평범한 하루지만 가을이란 이유만으로 나의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가을은 원래 이런 계절이다. 별 거 아닌 노랫말 한 줄에 울컥하고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웃는, 영문모를 불안과 뜻밖의 설렘,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까지.
빛깔 좋게 익어가는 나무에 매달린 과실들 마냥 갖가지 감정이 익어간다. 견뎌온 수많은 날씨들을 입증해 주듯이 묵직한 과일이다. 자신만의 확고한 색과 맛을 가지게 됐다. 짙고 단단한 과일의 무게를 견뎌내지 못한 나무가 하나 둘 떨어트린다.
오후 1시의 가을 하늘은 그런 과일들을 직접 마주 보게 만든다. 더 이상 숨길 곳이 없는 감정들이 피어오른다. 차오른 눈물을 흘리고 단전에서부터 큰 웃음을 터트린다. 뜨거운 화와 차가운 외로움이 공존하는, 감정을 수확하는 시기.
나에게 감정을 강요한다. 어떻게든 외로움이 느껴지게 만들고 슬픔에 잠기게 한다. 그러다가도 따스함을 느끼게 하고 기쁨을 즐기게 한다. 모든 과일이 익어가는 가을, 나는 감정이란 이름의 과수원에 살고 있다.
가을은 감성의 계절이다. 이 감성을 가장 절실히 느끼게 하는 것은 잘 익은 감정의 열매다. 이 열매로 가득 찬 나의 가을날에 오후 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