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밤 9시, 가을

알 수 없는 쓸쓸함의 무게

by 정다훈

진짜 밤이 됐다. 일상의 끝을 고한 뒤에 다시 찾아오는 이별의 시간. 이제 오늘의 하루와 이별할 시간이다. 거리에 켜진 불빛들은 아직까지도 일상을 붙잡으려 하지만 떠나가는 시간을 머무르게 할 순 없다.


사람들의 모습도 달라진다. 각 시간대별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유형이 바뀐다. 이 시간대의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하루를 만들기 위해 떠나는 사람들, 그 외에는 전부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적막함이 만들어낸 고요는 색다르다.


특별한 이유도 없고 떠오르는 사건도 없지만 이 시간에 무거운 마음은 영문을 모르겠다. 평소에 피곤한 하루의 끝을 맞이한다는 시원함과 다르게 가을의 밤은 짙은 어둠을 불러온다.


가을은 이미 끝나간 시간에 미련을 갖지 말라는 듯이 미리 겨울을 불러온다. 차가운 바람이 나를 덮치며 빨리 들어가라고 외친다. 이제 점점 밖에 머무를 생각을 하지 말라는 듯이. 더 이상은 코트나 얇은 외투로 나기에 어려운 시간이 찾아온다.


해가 짧아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멀어졌나 보다. 멀어진 것들을 보며 느끼는 후회와 공허함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은 이제는 보내줘야 할 가을날에 나를 붙잡는 것을 이런 감정뿐인 거다. 밤 9시에 찾아온 찬바람과 정적이 만들어낸 것은 내 옆에 가지런하게 고요히 늘여놓아 진다.


이 쓸쓸함이 가을의 끝자락에서 나에게 남겨지는 유일한 선물일 것이다. 겨울로 가기 위한 준비단계, 이 허전함과 쓸쓸함을 미리 느끼고 나서야 겨울날에 찾아온 매서운 추위에 견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추위에서 소중한 것들을 찾는다.


밤 9시의 가을, 다가오는 겨울의 두려움에, 가을이 알려주는 쓸쓸함에, 내 안의 작은 빛을 찾으며.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9화저녁 5시,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