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저녁 5시, 가을

해질 무렵 가라앉은 마음

by 정다훈

벌써 노을이 진다. 고작해야 5시, 얼마 전까지는 7-8시에도 떠있던 해가 갑자기 빠르게 이별을 전한다. 붉게 물든 하늘,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전에 일상의 끝을 고한다.


아름답게 물든 하늘은 알 수 없는 쓸쓸함을 선사한다.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이 합쳐져서 마치 온 하늘이 도금이 된 것 같은 느낌. 나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시간이다. 이 뜨거운 빛은 금방 사라진다.


한순간 가장 뜨겁게 빛나다가 금방 흩어져 어두워지는, 이 쓸쓸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도 가라앉는다. 순식간에 전재산을 탕진한 기분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바라보는 것뿐.


가을의 하늘은 그런 무력감을 선사하고 빛을 없애 어둠으로 덮인, 하루의 끝을 일찍 불러와 남아있는 시간을 강제로 빼앗기는 기분이다. 많은 것을 빼앗아가는 이른 어둠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가벼이 있을 수 있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냥 그렇지 하는 생각을 가지며 공허를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우리가 바라던 가을의 감성 아닐까. 붉게 물든 하늘아래 힘없이 떨어진 낙엽들, 사각사각 바스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여유로운 공기를 즐길 수 있는 하루.


매일같이 전쟁 속에 살아가는 일상에서 잠시동안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가을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 어떤 계절보다 가장 여유롭기에 가장 감성적일 수 있는 계절.


빠르게 지는 해가 알리듯이 우리의 가을은 사라지고 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8화오후 1시, 가을